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는 ‘파스카 성삼일’의 시작입니다. 성삼일은 사실 여러 단계로 펼쳐지는 단일한 파스카 전례입니다. 그래서 이 ‘삼일’, 곧 목요일 저녁부터 금요일 저녁까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토요일 저녁부터 주일 저녁까지 날들을 하나로 묶어 파스카 성삼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성삼일 전례의 선봉에 오는 주님 만찬 미사의 입당송은 이 거룩한 삼일을 하나로 묶어주는 파스카 신비를 선포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리라. 주님은 우리 구원이요 생명이며 부활이시니,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구원과 자유를 얻었네”(갈라 6,14 참조).
성목요일을 열면서 교회의 전례는 이미 성금요일(“십자가를 자랑하리라”)과 파스카 성야(“구원이요 생명이며 부활이시니”)를 내다보는 것입니다.
성삼일 전례의 통합성은 실제 예식의 흐름에도 드러납니다. 주님 만찬 미사는 사제의 영성체 후 기도와 신자들의 “아멘.”으로 끝납니다. 미사 때마다 일반적으로 듣는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와 같은 파견사는 없습니다. 대신 신자들은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를 수난 감실로 모셔가는 행렬을 합니다.
다음 날, 곧 성금요일 전례는 어떻게 시작될까요? 사제는 제대 앞에 잠시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주례석으로 갑니다. 이때 사제는 십자성호도, “기도합시다.”라는 익숙한 권고도 없이 곧바로 그날 전례의 시작 기도를 바칩니다. 성금요일 전례의 마침 또한 파견사 없이 이루어집니다. 침묵 속에 잠겼던 성호경과 파견사는 새로운 전례 시기, 곧 파스카 성야로 시작되는 부활 시기에 가서야 다시 우리 입에 담을 수 있게 됩니다.
이 독특한 끝과 시작은 성삼일 전례를 하나로 묶어 주는 표지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겸손한 섬김은 성목요일에 기념하는 성체성사 제정으로 구체화되고, 성체성사의 제정은 성금요일의 십자가를 내다보며, 십자가는 부활의 밤으로 가는 길을 밝혀 줍니다.
성목요일의 신비: 성체성사와 사제직의 제정, 형제 사랑의 계명
이 단일한 파스카 전례의 세 단계 중 첫 번째인 주님 만찬 미사는 성체성사의 제정, 사제직의 제정, 형제 사랑의 계명이라는 세 가지 상호 연관된 신앙의 신비들을 기념합니다. 제1독서(탈출 12,1-8.11-14)는 구약의 하느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던 날 밤에 이집트 땅에서 거행된 최초의 파스카 만찬을 들려줍니다. 이 파스카 만찬 규정은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거행하신 파스카 만찬으로 완성되기에, 우리는 제2독서(1코린 11,23-26)에서 바오로 사도가 전해 준 가장 오래된 최후의 만찬 기록을 듣습니다. 이 두 독서가 함께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첫 번째 파스카 만찬은 두 번째 파스카 만찬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성체성사는 구약의 파스카 만찬을 완성으로 끌어올립니다. 이제 우리는 이집트 탈출이라는 역사의 한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밝히 드러난 구원 역사의 신비 전체를 기억합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은 이 구원의 신비를 사제들의 손에 맡겼습니다. 따라서 성체성사와 사제직은 태생부터 한 몸이며, 하나 없이 다른 하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날의 복음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일어난 또 다른 사건을 들려줍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겸손의 행위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사제들과 우리 모두에게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돌보라고 부르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5). 이 특별한 부르심은 주님 만찬 미사를 특별히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발 씻김 예식으로 이어집니다.
발 씻김 예식
성목요일의 발 씻김 예식은 과거 오랫동안 여러 가지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주교좌성당, 수도원, 그밖에 몇몇 성당에서 주교, 수도원장, 신부는 성직자, 수도승 또는 가난한 사람들의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이 예식은 그 바탕에 있는 실제 역사를 극적으로 연출하거나 재현하는 일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겸손한 사랑과 섬김의 몸짓을 성사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발 씻김 예식에 대한 현행 지침에 따르면, “목자들은 모든 하느님 백성의 다양성과 일치를 보여 주는 소수의 신자들을 선발하는데, 여기에는 남자와 여자, 청년과 노인, 건강한 이와 병든 이, 그리고 성직자와 봉헌된 이와 평신도들을 두루 포함할 수 있습니다”(발 씻김 예식에 관한 2016년 경신성사성 교령).
이 행위의 의미를 밝혀 주는 복음 본문은 발 씻김 예식 중에 부르는 여러 따름 노래의 노랫말로 재탄생합니다. 발을 씻어 주는 사제의 겸손한 실천과 발 씻김 받는 이들의 겸손한 수용이 따름 노래의 선율에 실린 복음 구절들과 더불어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신”(요한 13,1) 예수님을 지금 이 자리에 현존하게 합니다.
참사랑이 있는 곳에
모든 미사에서는 성찬 전례를 시작하면서 예물과 제대를 준비하는데, 여기에는 빵과 포도주, 가난한 사람들이나 교회를 위해 바치는 금전이나 다른 예물을 가져오는 행렬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주님 만찬 미사에서는 예물 준비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교회는 이 미사의 예규에서 분명히 밝힙니다. “신자들은 성찬 전례를 시작할 때에 빵과 포도주와 함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예물을 바치는 행렬을 할 수 있다”(《로마 미사 경본》, 주님 만찬 성목요일 14항).
이 특별한 지침은 다른 어떤 미사에서도 찾을 수 없고, 오로지 교회가 “이를 행하여라.”,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강조하는 이날의 미사에만 나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돌아올 빵과 포도주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있지 않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다른 지체들, 특히 약하고 고통받는 지체들을 위한 예물도 바치도록 부름받습니다. 《로마 미사 경본》은, 이번에도 여느 때와는 달리, 예물 행렬에 부르면 좋을 노래를 적극 권장합니다. 바로 ‘참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 계시네’입니다.
◎ 참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 계시네.
○ 그리스도의 사랑 우리들을 한데 모았네. 그리스도와 함께 춤을 추며 기뻐하세.
살아 계신 하느님을 경외하세.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하세.
◎ 참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 계시네.
○ 우리 모두 함께 모여 하나 되네. 우리 마음 갈라질까 조심하세.
이웃의 허물 탓하여 다투지 마세. 하느님이신 그리스도 우리 안에 계시네.
◎ 참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 계시네.
○ 복된 성인들과 함께 하느님 뵈오리. 하느님이신 그리스도, 빛나는 얼굴.
한없이 참된 기쁨 여기에 있네. 이 기쁨 영원무궁히 이어지리. 아멘.
이 미사 끝에 이어지는, 성체를 수난 감실에 옮겨 모시는 행렬과 성체 조배에도 이 사랑의 정신이 고스란히 스며들어야 함은 물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