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부활하신 밤, 파스카 성야

신학 칼럼

주님께서 부활하신 밤, 파스카 성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주님 부활 대축일의 첫 번째 미사

주님께서 부활하신 이 밤은 빛의 예식으로 시작합니다. 죄와 죽음을 나타내는 캄캄한 어둠, 생명과 부활을 나타내는 찬란한 빛의 강렬한 대비가 성야 예식의 기본 구도입니다.

 

파스카 성야는 흔한 토요일 저녁 미사가 아니라 주님 부활 대축일의 첫 번째 미사이며, 푸르스름한 오후의 빛이나 황혼 녘의 금빛 노을이 아니라 완전한 어둠 속에서 거행되어야 하는 미사입니다.

 

빛의 예식을 이루는 세 요소, 곧 불의 축복과 파스카 초의 마련, 성당으로 들어가는 행렬이 참된 표지가 되려면 바로 이 칠흑 같은 어둠이 먼저 내려앉아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 만찬 미사를 실제 최후의 만찬이 있었던 저녁에, 주님 수난 예식을 실제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잠드신 오후 3시경에, 파스카 성야를 밤에 시작함으로써, 하느님의 피조물인 시간 또한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를 드러내는 중요한 표지로 삼습니다. 누구도 목격하지 못했던 주님 부활의 현장을 밤의 어둠만이 그 시와 때를알았다고 파스카 찬송은 노래합니다.

 

파스카 성야의 제2부를 구성하는 말씀 전례에서는 구약에서 일곱, 신약에서 둘(서간과 복음), 모두 아홉 독서를 봉독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으면 어느 곳에서나 밤샘 전례의 특성을 살려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모든 독서를 봉독해야합니다(《로마 미사 경본》, 파스카 성야 20).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당신 백성을 위하여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묵상하려면, 이러한 사건들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세와 모든 예언자에게서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담긴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총의 원천, 구원 역사의 정점

이 구원 역사의 정점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고, 파스카 신비를 본격적으로 또 고유하고 성대하게 기념하는 이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세례성사가 빠질 수 없습니다. 《로마 미사 경본》에 세례 전례가 파스카 성야의 제3부로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는 까닭입니다. 4세기 예루살렘의 주교 치릴로 성인은 파스카 성야에 세례받은 새 신자들에게 이런 말로 세례 예식의 의미를 풀이했습니다.

 

이 얼마나 기이하고 놀라운 상황입니까? 우리는 실제로 죽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묻히지도 않았고 실제로 십자가에 매달렸다가 다시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다만 상징적으로 모방하였지만 구원은 실제로 받은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묻히시고 다시 살아나신 분은 그리스도이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은총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것을 상징적으로 모방하여 구원을 실제로 얻게 되었습니다(《성무일도》,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독서기도 제2독서).

 

마귀를 끊어버리고 신앙을 고백하여 축복받은 물로 세례를 받은 새 신자들은 사제요 예언자이시며 임금이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다는 뜻으로 이마에 축성 성유를 받고, 그리스도를 입었다는 뜻으로 흰옷을 받아 입으며, 마지막 날까지 빛의 자녀로 살아가라는 뜻으로 두 손에 촛불을 받아 듭니다. 세례받을 사람이 없더라도 모든 신자는 세례의 이런 서약과 예식을 되새기며 세례 서약 갱신을 할 만큼 세례는 성야 예식의 한 축을 이루는 특성입니다.

 

파스카 성야의 제4부이자 마지막 요소는 성찬 전례입니다. 세례 전례로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 백성의 사제단에 속하게 된 신자들은 성찬의 식탁에 모입니다. 재의 수요일에 먼지에서 와서 먼지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면서 시작한 파스카 여정이 하느님의 자녀들이 둘러앉은 어린양의 잔칫상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재의 수요일에 우리 이마에 바른 재는 50일 동안 이어지는 주님 부활의 마지막 날인 성령 강림 대축일에 우리 머리 위에 불꽃 모양의 혀들”(사도 2,3)로 내려앉으실 성령으로 변모할 것입니다.

 

재에서 새로 태어난다는 불사조의 전설은 파스카 신비를 통과하여 재에서 성령의 불꽃으로 다시 태어나는 우리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예부터 마련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Profile
제주교구 사제. 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에 재직 중입니다.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0,20)이라는 성구를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없이 간명하게 표현되어 있어 매우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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