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요일 전례는 미사가 아닙니다. 이날에 교회는 오로지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십자가를 경배하며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간구할 따름입니다. 미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신 바로 그 제사를 재현합니다. 이 최초의 사건 없이 또 이 최초의 사건에 앞서는 미사란 없기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미사의 참된 근거가 세워지기 전 이 두 날,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을 미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파스카 신비를 기념합니다. 그러한 까닭에 이날 “제대는 십자가도 촛대도 제대포도 완전히 벗겨둡니다”(《로마 미사 경본》, 주님 수난 성금요일 3항). 죽음과 부활로 제대요 희생 제물이면서 제관이신 그리스도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수하실 때까지 참된 제대는 마련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시간, 오후 3시경에 거행되는 주님 수난 예식의 전례문은 무엇보다 우리 신앙의 근거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을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제1독서(이사 52,13-53,12)는 하느님의 종이 겪어야 했던 수모와 잔인한 죽음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먼저 우리에게 눈을 크게 뜨고 이 시련의 결과를 바라보라고 소리치십니다.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지리라”(이사 52,13).
감탄사 “보라”는 교회의 전례 언어인 라틴어로 “엑체”(Ecce)입니다. 이날 전례의 곳곳에서 교회는 우리에게 직접 보라고, 바라보라고 말하며 같은 용어를 사용합니다. 수난기에서 빌라도는 “자, 이 사람이오.”(Ecce homo!) 하고 말합니다(요한 19,5).
십자가 경배 때 사제는 “보라, 십자 나무!”(Ecce lignum crucis) 하고 선포하여 우리의 눈길을 십자가로 모읍니다. 영성체 예식 전에 사제는 전날 보관해 둔 성체를 들고 외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Ecce Agnus Dei).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일 년 내내 바라보고 묵상해야 할 대상이지만, 다른 어느 날보다 이날이 그렇습니다.
모든 이에게 미치는 십자가의 구원
우리가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보편적인 구원의 표지입니다. 이 구원의 보편성을 기념하여 교회는 두 가지 성대한 예식을 마련합니다. 바로 성대한 보편 지향 기도와 성대한 십자가 경배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돌아가신 이날에 교회도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한 기도를 바칩니다. 성금요일의 보편 지향 기도는 전례주년의 다른 모든 날에 바치는 보편 지향 기도와 비교해 볼 때 그 길이와 형식, 지향의 포괄성 면에서 놀라우리만큼 장엄합니다. 이날, 교회는 거룩한 교회, 교황, 모든 신자, 예비 신자들, 그리스도인들의 일치, 유다인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들, 위정자들,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전구합니다. 매번 부제 또는 평신도 봉사자의 기도 지향 알림, 침묵 또는 무릎 꿇음, 사제의 기도가 따릅니다. 모든 교우는 “아멘.”으로 동의를 표합니다. 기도의 내용과 방식 모두 참으로 ‘보편적’입니다.
보편 지향 기도 후에 성대하게 십자가 경배를 합니다. 사제는 제대 앞에 서서, 또는 성당 문에서 제단으로 행렬하면서 세 번에 걸쳐 십자가를 보여 주며 노래합니다.
“보라, 십자 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
교우들은 화답합니다.
“모두 와서 경배하세.”
노래가 끝날 때마다 모두 무릎을 꿇고 침묵 가운데 경배합니다. 이어서 사제와 봉사자들, 교우들은 한 사람씩 현시된 십자가 앞에 나아가 경의를 표시합니다. 이 공동체적이고 개별적인 경배로 구원된 모든 이는 구세주께서 달리신 영원한 생명나무의 품에 안겨 하느님께 나아감을 기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