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를 추실 건가요, 프란치스코?

영성과 신심

탱고를 추실 건가요, 프란치스코?

주님의 충실한 종이었던 교황님, 이제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곁에서 평안히 머무세요.

2025. 05.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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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충실한 종, 자애로운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보살핌 속에 12년간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Jorge Mario Bergoglio). 2025421, 부활절을 맞아 모여든 신자들에게 성 베드로 광장에서 축복의 인사를 건넨 뒤 아버지 품으로 돌아간 목자에 대해 생각합니다. 선종 후 한국의 한 매체가 제게 전화를 걸어 물었죠.

다른 기자에게 당신을 인터뷰하라고 소개받았습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왜 추천받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당황스러운 질문은 그러나 이런 질문으로 바뀌어 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왜 저는 당신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고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가깝다고 여기고 있을까요? 그 친밀함에 대해 회의하거나 의심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 기자의 질문은 그 점을 상기시켜 주었지요. 그러니까 그 일치감을요.

 

그건 아마도 교황님을 통해 을 배웠기 때문일 거예요. 아무런 연고도 없이 시작된 신앙생활에서 제가 미사 다음으로 좋아한 건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교황님 책은 제게 아주 중요했죠. 교황청 수장인 당신의 말은 저를 교회로 기꺼이 당겨 줄 수도, 툭 밀쳐 낼 수도 있었으니까요. 물론 당신은 교황청 수장이라는 말보다는 겸손히 로마 주교라 불리고 싶어 했지만요.

저는 2021년 발표된 회칙 《모든 형제들》을 읽으면서 가난과 청빈이라는 단어를 뛰어넘는 단순함(Semplicità)’을 당신께 배웠습니다. 궁휼이나 윤리적 당위, 결핍 혹은 억제와 무관한 삶의 자주적 간소화를 깨닫는 순간이었지요. 동시에 그 말은 하얀 도화지를 태양에 비춰 볼 때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빛의 무늬, 어떤 인간의 인위적인 예술 활동으로도 가닿을 수 없을 환한 품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뒤부터 작고 환하고 단순해지고 싶은 사람이라고 제 소개를 하고는 했죠. 물론 완벽히 실천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런 저를 이해해 주시겠지요? 자서전 《희망》에서 인간이기에 저지른 잘못들에 대해 교황님 역시 솔직히 말씀해 주셨으니까요.

 

20대 시절,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을 때 당신은 영적으로 섬기던 신부님의 병문안을 갔었다고 했지요. 병실문을 열자 신부님은 주무시고 계셨고 그걸 핑계로 얼른 복도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잠시 누구와 대화하고 있을 때 신부님이 당신을 찾는다고 들었지만, 당신은 그분을 만나러 병실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미 떠났다고 전해 달라고 했지요.

아버지를 잃은 20대의 베르골료는 죽어 가는 사람과 마주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다시 상실을 겪고 싶지 않았지요. 그 거짓말로 인해 당신은 평생 깊은 후회와 아픔을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것이 그 신부님과의 마지막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당신이 같은 책에서 인용한 로마의 희곡 작가 테렌시오(Terrentius)의 말을 되돌려 주며 당신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인간이니, 인간적인 것 중 어느 것도 나에게 낯설지 않다.”

 

 

가장 인간적인 교황

당신은 그렇게 가장 인간적인 교황의 모습으로 저를 하느님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너무 크고 환한 말들을 배워 가는 과정이 기적 같고 즐거웠지요. 게다가 당신은 예술을 사랑했습니다. 책을 펼치면 체호프, 보들레르, 보르헤스, 도스예프스키, 브레히트, 쉼보르스카 같은 작가들이, <빵과 사랑과 상상력Pane, amore e fantasia>(1953), <A lastrada>(1957), <바베트의 만찬Babette’s Feast>(1987) 같은 영화들이, 그리고 탱고를 비롯한 온갖 음악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간단히 말해 당신은 따분한사제가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고약한 신부와 수녀들의 냉랭함이 신자들을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따끔한 농담을 하신 적도 있지요? 그 책이 무엇인지 찾아보아야 이 글이 정확해질 텐데 교황님, 이미 저는 제 서가를 몇 번이나 살피며 당신의 몇몇 책을 찾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더 시간을 보냈다가는 이 글을 완성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에 기대지 말고 마음을 믿으라고 당신이 용기를 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친밀함을요.

 

교황님은 여러 책에서 물질적 가치에 따라 선택하고 나머지 것들을 폐기하는 현대 풍조를 “폐기 문화로 명명하며 우려하셨지요. 인간마저 폐기되는 이 비극적 현실 속에서 특히나 노인들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스스로 세상을 떠난 할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삶이 중단되어야 하는 것은 그 의미가 타의이든, 자의이든, 상실되었기 때문이겠지요. 당신이 간곡히 노인들의 지혜에 귀 기울일 것을 이야기할 때 노인들이 꿈을 꿀 줄 알게 되면, 젊은이들은 예언, 자기가 사는 동시대를 읽어가는 활기찬 역량을 되찾게 되리라고 충고할 때 저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때의 노인에는 이미 하느님의 나라에 가 있는 죽은 자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개인적 불행이라고 여겼던 가족사는 이제 저를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 가고있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상처마저 다른 언어로 바꾸어 주셨죠.

 

그렇게 해서 살아난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당신은 전쟁을 광기라는 단어로 명확하게 지시했습니다. “지금 30년간 거의 모든 분쟁에서 군복을 입은 채로 살아남는 것이 붉은 티셔츠를 입은 어린아이로 살아남는 것보다 더 쉬웠다며 호소했지요. “전쟁은 그저 비겁함과 수치심의 극치일뿐이며 그 사실에 무감해지는 것이야말로 비극이라고요. “동성애범죄가 아니며 그들은 “2등 시민이 아니라고 당신의 마지막 책에 명시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미래란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고 당부했지요. 이때의 희망이란 낙관이라는 이름으로 안일하게 안주하는 것이 아닌, 온유하게 퍼져나가는 혁명이라고.

교황님이 바로잡은 이 말들은, 너무 자주 기만적으로 쓰여 사실상 오염되어 있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악에 의해 빼앗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 말에 귀 기울이면서 저는 그 말들을 되찾고 싶어졌지요. 작가에게 말은 숨결과 같은 것입니다. 저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었고 더 멀리 보고 싶었으며 힘들 때는 당신을 통해 하느님께 의지했습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20148월 방한 때 당신은 차에서 내려 광화문 광장을 걸어 한 아버지의 손을 잡았지요. 수학여행 떠난 딸을 침몰한 배에서 잃은 아버지였습니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왜 아무도 그 많은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는지 답을 듣지 못해 단식 중이었지요. 광장의 햇빛과 내면의 절망으로 까맣게 타고 마른 아버지의 얼굴. 그것은 사실 그 당시 많은 한국인의 얼굴이었을 겁니다. 그 거대한 배의 침몰은 한국의 많은 것들을 집어삼켰습니다. 진실이 은폐되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가,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사라져 버렸지요.

 

교황님 역시 아르헨티나의 독재 정권 아래에서 너무도 많은 친구들을 잃었다고 하셨지요. 그들이 시민들을 납치해 비행기에 태운 뒤 대서양 상공에서 산 채로 던져 수장했다고요. 당신은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여러 번 언급했고 사람들에게 영원히 읽힐 마지막 자서전에도 상세히 밝혀 놓았습니다. 그런 당신이기에 한국인들에게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라는 말을 남겨 주었겠지요.

당신의 그 말이 없었다면 저는 얼마나 그 시절을 황폐하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자식을 잃어 단식 중인 부모를 모욕하며 치킨과 피자를 먹어 대는 이들이 있던, 당신이 걸었던 그 광장을요. 교황님이 하느님 곁으로 간 지금, 많은 한국인이 그 말을 다시 떠올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행동을 전제로 한 사랑의 명제를 남겨 주셨죠.

 

선종 이후 지금까지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슬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참으려고 노력했어요. 당신은 스스로를 하느님의 광대로 여기며 유머를 사랑한 교황님이니까요.

어제는 먼 길을 가는 기차에서 당신을 위한 묵주 기도를 드리다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교황님도 종종 하느님께 기도하다 너무나 평화로워 잠이 든다고 했으니 이런 말이 무례는 아니겠지요? 당신의 관은 단 한 겹의 나무로 단순하게 만들어졌고 유언대로 프란치스쿠스(Franciscus)’라는 이름만 적혔습니다.

 

하느님을 만나셨겠죠, 프란치스코? 거기서 탱고를 추셨나요? 당신이 한때 사람들에게 탱고를 가르쳐 주는 선생이기도 했다는 것이 좋습니다. “과거가 없는 이에게 과거를, 희망이 없는 이에게 미래를 선물한다.”라는 탱고에 대한 찬사를 당신에 대한 나의 마지막 인사로 돌려드려요. 당신은 멈추어 서는 과거가 아니라 한발 한발 나아가는 과거를, 아스라히 먼 희망이 아니라 음악과 발소리처럼 생생히 구체화되는 미래로서의 희망을 우리에게 선물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충실한 종이었던 교황님, 이제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곁에서 평안히 머무세요. 영원한 안식이 당신과 함께하리라는 사실을 압니다. 부활의 그날에 우리 다시 만나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으리라는 것도. 나는 당신을 떠올리며 울지 않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Profile
2009년 <한국일보>로 등단해 《너무 한낮의 연애》(2016), 《경애의 마음》(2018), 《대온실 수리 보고서》(2024) 등의 소설과 《식물적 낙관》 등의 산문집을 냈습니다. 작고 단순하고 환해지기 위해 분투 중이며, 밤마다 가톨릭 책을 읽다가 잠에 들어 가족들에게 ‘재야 신학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60여 종의 식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식집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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