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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정’이란 무엇일까요? 박해 속에서도 가정을 지켜 낸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따라가며, 오늘날 신앙 안에서 결혼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봅니다. |
내게는 오래전부터 품어 온 소망이 하나 있다. 바로 성가정을 이루는 일이다. 성가정이란 무엇일까? 가톨릭에서 말하는 성가정은 단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족’의 형태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중심에 모시고, 서로를 위한 사랑과 희생 안에서 살아가는 신앙 공동체, 그것이 성가정이다.
성인들에 관한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레 그들의 생애를 공부하게 된다. 많은 성인의 삶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릴 적부터 신실한 부모 밑에서 자라며 가정 안에서 신앙을 배우고 성장했다는 점이다. 책 속 성인들의 이야기에서, 성가정은 이들이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도록 돕는 토양이었다.
20대 중반의 청년으로 살아가는 나 역시 질문을 품게 된다. “오늘날 청년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가톨릭 청년으로서 결혼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한 사람의 남편이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아버지였던 그는 박해 속에서도 굳건히 성가정을 지켜 냈다. 그의 삶을 비추어, 나는 가톨릭 청년으로서의 결혼과 가정, 그리고 성가정의 본질을 고민하며 나의 미래를 준비하고자 한다.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은 충청도 홍주(현 홍성) 다래골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우 집안의 신앙 안에서 자랐다. 본래 성품은 급한 편이었으나 복음 안에서 자신을 다스리려 애썼고, 그 결과 그는 주변 사람들이 태생부터 온유한 사람으로 여길 만큼 변화하였다.
젊은 시절에는 고양에 있던 땅을 팔고 돌아오는 길에, 빚 문제로 다투는 이를 보고 손에 쥔 돈을 모두 내어 주어 화해하게 했다. 헐벗은 이에게는 자기 겉옷을 벗어 주었고, 장터에서는 팔리지 않는 물건을 골라 사 주었다. 그 이유를 묻는 이에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좋지 않은 물건을 사 주지 않으면, 저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겠는가.”
그는 가난 중에도 자선을 멈추지 않았고,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법을 몸으로 보여 주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그는 우상숭배 풍습이 짙은 고향을 떠나 서울 벙거지골로 거처를 옮겼다. 외인과의 송사에 휘말려 자산을 잃게 되자, 산골로 들어가 살았고 강원 금성과 인천 부평을 전전하다가 마지막으로 과천 수리산에 터를 잡았다.
교우촌 회장으로 뽑힌 뒤에는 교우들을 세밀히 돌보는 한편, 종교 서적을 자주 읽으며 묵상으로 하루를 다듬었다. 아들 최양업 토마스를 두 번째 조선인 사제로 키워 낸 아버지답게, 그는 말보다 삶으로 신앙을 가르쳤다.
1839년 기해박해가 닥치자, 그는 모금하여 옥중 교우들을 도왔고, 순교자의 유해를 거두어 장사 지냈다. 집안에는 순교의 때가 왔음을 알리며 성패와 성물은 더럽혀지지 않게 감추었으나, 서적은 드러내 두었다. 같은 해 7월 31일 밤, 서울에서 내려온 포졸들이 수리산 교우촌을 급습했다.
최경환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교우들을 찾아다니며 권고했다.
“우리 모두 순교의 은총으로 응답하자.”
포도청의 문초는 잔혹했다. 그는 배교를 강요받으며 주리에 두 번 틀리고, 뾰족한 꼬챙이로 살을 깊게 찔리는 형벌을 당했다. 특히 큰아들 최양업을 신학 공부를 위해 국경 밖으로 보낸 죄목이 추가되며 고문은 더욱 가혹해졌다. 함께 잡혀 온 몇몇 교우들이 매를 이기지 못해 넘어지는 모습을 보며 그는 깊이 슬퍼했다.
그러나 그의 신앙 고백은 끝내 흔들리지 않았다. 마지막까지도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옥에서 죽는 것을 주께서 원하신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그렇게 서른다섯의 나이에 옥중에서 주님 품에 들었다. 아내와 일가의 몇몇 부인들도 끝까지 신앙을 증거했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이 시복했고 1984년에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이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방한 시 서울에서 그를 시성했다.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게 하소서.”
현대 청년들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일까? 최근 ‘비혼’이 늘어나면서 결혼은 더 이상 삶의 필수 코스로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커리어, 경제적 여건, 개인의 가치관 등 다양한 이유로 결혼을 미루거나 선택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나는 결혼을 꿈꾼다. 단지 남녀 간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느님을 가정의 중심에 모시고, 혼인성사의 은총 안에서 서로를 거룩하게 하며 함께 성숙해 가는 가정을 이루고 싶다.
결혼에 관한 이러한 생각은 내게 꽤 오래된 마음이다. 부모님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 그리고 주변에서 성가정을 이루어 가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막연히 ‘나도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싶다’라는 마음을 키워 왔다. 그리고 지금, 20대 중반이 된 나는 이 소망이 더 이상 ‘언젠가’가 아니라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지금 당장 결혼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학업을 마치고 취업해야 하며 함께 살아갈 기반을 마련할 준비도 필요하다. 짧게 언급하더라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렇기에 너무 성급하지 않게 자연스러운 때를 기다리며, 하느님의 뜻 안에서 결혼을 준비하고 싶다.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와도 이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는 둘 다 신앙 안에서 자란 가톨릭 신자이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결혼이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세워가는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
꼭 현재의 연인과 결혼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우리는 결혼과 그 이후의 삶, 자녀를 어떻게 키울지, 가정 안에서 어떻게 기도하고 신앙을 나눌지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특히 나는 성인들의 생애를 공부하며 알게 된 것들을 나누고 가정 안에서 함께 기도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먼저 그런 삶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바라는 가정은 자녀를 성직자나 수도자로 키우는 가정이 아니다. 그저 하느님의 존재보다 돈과 명예를 중시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만큼은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며 고비마다 서로를 붙들어 주며, 힘들 때 함께 기도하고 감사하며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일상이 쌓여가는 곳, 바로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성가정이다.
이제는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다 목숨을 바치는 ‘적색 순교’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매일의 일상에서 신앙을 지켜 나가는 ‘회색 순교’의 삶을 살아야 한다. 결국 우리의 일상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라면, 그것이 바로 성가정으로 나아가는 현실적이고 거룩한 길임을 믿는다.
저는 “그리스도인 남녀가 그들의 사랑 이야기 안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인식하고 혼인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흐뭇합니다.
“그들은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하나의 삶을 일구어 가라는 성소를 깨달은 것입니다. 혼인성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 사랑을 감싸고 이 사랑이 바로 하느님 안에 뿌리내리게 해 줍니다.
이 은총으로, 이 부르심에 대한 확신으로, 여러분은 안정된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어느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함께 이겨낼 수 있습니다!”
―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계십니다>, 260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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