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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에도, 그 눈빛은 마음속에서 오래 머뭅니다.
✟ 어느 날, 명동대성당에서 마주한 ‘십자가’와 ‘성모 이콘’ 앞에서 그 눈빛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성모님의 시선 안에서 ‘어머니의 위로’가 다시 살아납니다.
👣 오늘의 글은 그리움과 신앙이 만나는 자리에서 다시 걸어갈 힘을 보여 줍니다. |
‘어머니’ 세 글자에 멈춰 선 시간
어머니. 이 세 글자를 종이에 적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지난날 어머니와의 추억들을 떠올렸다. 감사한 마음에 잔잔한 웃음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이내 고개가 떨어지고 깊은 참회의 눈물이 눈가에 고였다. 어머니라는 말은 참 그렇다. 고마우면서도 죄송하고, 감사하면서도 미안하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지만, 부족한 표현력만 탓하게 된다.
벌써 8년이 흘렀다. 13년간 투병하시다 끝내 고통 속에서 하느님께 돌아가신 어머니 곁에서 아무것도 해 드릴 수 없는 무력함에 좌절하며 나날을 보냈다. 스스로 몸을 가눌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도 언제나 기도 안에서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고자 애쓰셨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고 행여라도 아들에게 그 모습을 들킬까 숨죽여 눈물을 훔치시던 어머니. 응급실 한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쪽잠을 자던 아들이 안쓰러워 미안한 마음에 밤새 한잠도 주무시지 못하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내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세상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따뜻한 눈빛으로 내 두 뺨을 감싸 주시며 “고마워요, 신부님.”이라고 표현하시는 것뿐이었다. 어머니의 나지막한 그 음성은 당신을 추억하며 하루하루를 용기 있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비어 있는 자리, 더 또렷해지는 사랑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나의 어머니, 나를 낳아 길러 주시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신 어머니는 이제 내 곁에 없다. 초인종 소리에 문가로 나와 두 팔 벌려 안아 주시며 “힘들었지요?”라고 위로해 주시던 어머니는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 이제 이 지상의 모든 고통을 벗어 던지고 하느님의 품 안에서 큰 위로를 받고 계신다.
나는 믿는다. 그토록 당신께만 의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에 결합해 자신에게 주어진 병고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이겨 낸 한 여인을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괜찮다고 위로해 보지만, 어머니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세상에 부모를 먼저 떠나보낸 자식이 나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그립다. 지금도 어머니가 그립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나의 이 그리움을 또 다른 나의 어머니, ‘성모님’을 통해 채워 주셨다. 성모님의 눈빛 안에서 나를 위로하고 돌보아 주시는 어머니를 발견했다.
십자가와 성모님, 어느 날 우리에게 도착하다

2024년 11월 29일 금요일. 세계청년대회를 상징하는 ‘십자가’와 ‘성모 성화’가 서울에 도착하여 이를 환영하는 행사가 명동대성당에서 열렸다. 예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교구 청년들이 직접 십자가와 성화를 들고 중앙 통로를 거쳐 제단 위에 모셨다.
3.8m의 높이와 31kg에 달하는 이 나무 십자가는 1983년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님께서 ‘구원의 특별 성년’을 선포하시면서 제작되었다. 교황님께서는 성년을 맞아 성 베드로 대성당을 순례하는 모든 이가 기도할 수 있도록 이 십자가를 마련하신 것이다. 그리고 성년의 끝에 교황님께서는 이 십자가를 청년들에게 맡기시며 이렇게 권고하셨다.
“그리스도 사랑의 상징인 십자가를 온 세상에 나르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만 구원을 찾을 수 있다고 전하라.”
이후 이 십자가는 여러 국가를 이동하며 전 세계 청년에게 위로와 희망, 회개와 선교 열망을 북돋는 상징물이 되었고, 1996년부터는 세계청년대회 개최국 청년들에게 십자가를 전달하는 전통이 자리 잡았다.
십자가 곁에 말없이 함께 서 계신 분
이콘 형태로 제작된 성모 성화는 마치 십자가 곁에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끝까지 지키던 성모님의 모습처럼 늘 십자가를 따라다닌다. ‘로마 백성의 구원자Salus Populi Romani’라 불리는 성모 이콘은 2000년 대희년 로마에서 개최된 세계청년대회 밤샘기도에서 처음 상징물로 사용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님께서는 이 성화가 세계청년대회 십자가 순례 여정에 언제나 동행하도록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모님을 환영하도록 부름받은 젊은이들에게 어머니로서 가까이 현존하시는 성모님을 드러낸다.”
이 이콘의 원본은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에 모셔져 있다. 교회의 오랜 전승에 따르면 루카 복음사가가 이 성화를 그렸다고 한다. 이 이콘이 ‘로마 백성의 구원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6세기와 19세기 로마에 페스트와 콜레라가 창궐했을 당시, 신자들이 이 성화를 들고 로마 거리를 행진하며 전구 기도를 바쳐 전염병이 멈추게 된 기적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로마 백성의 구원자’ 성모 이콘은 전염병과 재난 속에서 특별한 보호를 전구해 주시는 자비와 치유의 성모님을 상징하게 되었다.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코로나19 대유행을 막아 주실 것을 믿고, ‘로마 백성의 구원자’ 성화를 성 베드로 대성당 정문 앞에 모셔 성모님의 전구를 간절히 청하도록 촉구하셨다.
묵상하지 못한 날, 대신 찾아온 시선
이처럼 세계청년대회를 통해 청년들이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온 세상에 선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십자가’와 우리의 기도를 지체 없이 들어 주시는 성모님께 의탁하도록 마련된 ‘성모 이콘’이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인 명동대성당에 모셔진 것이다.
사실 나는 행사를 준비하느라 제대로 된 묵상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솔직한 심정으로는 엄청난 크기의 십자가와 성모 이콘을 보면서, 이를 어떻게 잘 보관하고 순례 여정에 차질 없이 옮길 수 있을지에만 신경을 썼다.
눈길 하나에 바뀌는 마음의 방향
성당에 모인 모든 이가 십자가와 성모 성화를 경배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WYD 십자가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모습 (2025.10. 인도네시아)
십자가와 성모 성화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인 채 기도하는 청년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마음일까 궁금했다. 마음속으로 하느님께서 우리 청년들에게 새로운 열정을 심어 주시어 세계청년대회에 주인공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십사 기도했다.
경배 행렬이 끝날 무렵, 함께한 봉사자들과 함께 나 역시 기도하기 위해 줄을 섰다. 멀리서 예수님을 품에 안고 우리를 바라보시는 자비로운 성모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이콘을 보았을 때, 아기 예수님께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성모님을 바라보고 계신데도, 성모님께서는 마치 그 시선을 외면하시는 듯 전혀 다른 곳을 응시하고 계셔서 의아했다.
그런데 성모 이콘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 성모님의 눈빛 안에서 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아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어머니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계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성모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는 듯했고,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바라보시며 예수님을 품에 안고 간절히 그분께 매달리라고 재촉하시는 듯했다.
그 눈빛에서 다시 만난 나의 어머니
사실 갑작스레 세계청년대회 조직위원회에서 일하게 되어 너무나 혼란스럽고 두려웠다. 왜 나에게 이토록 큰일을 맡기신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서웠다. 아니,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성모님께서는 마치 내게 무언가 말씀을 건네시려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분의 눈빛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성모님의 눈빛에서 이제는 곁에 없는 어머니의 눈빛이 느껴졌다.
이콘 위에 손을 얹고 성모님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두 손으로 내 뺨을 어루만지시며 “고마워요, 신부님.”이라 말씀하시던 어머니처럼, “괜찮아, 내가 곁에 있지 않니.”라고 성모님께서 내게 속삭이고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장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뜨거운 눈물을 훔치며 하느님을 위해, 청년들을 위해 부족하더라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지치거나 쓰러지지 않도록 꼭 도와 달라는 간절한 기도가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런 나의 협박과 같은 기도에도 성모님께서는 계속 미소로 나를 바라봐 주셨다.
물론 지금도 인간적인 나약함에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많지만, 성모님의 눈빛, 그리고 성모님 안에서 나를 위로해 주고 기도해 주실 어머니의 눈빛이 나의 심장을 다시 요동치게 만들고 두려움을 물리칠 힘을 주신다. 내 안의 온갖 부정적인 생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시고 치유해 주시는 성모님 안에서 매일 기적을 체험한다.
‘내’가 아닌 ‘주님’을 향해 다시 걷다
지금도 대한민국 어디선가 세계청년대회 십자가와 ‘로마 백성의 구원자’ 성모 이콘이 신자들을 만나고 있다. 분명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을 우리 신자들에게 전하시고, 우리의 회개와 쇄신을 북돋아 주고 계시리라 믿는다.
세계청년대회라는 엄청난 일을 준비하면서 언제나 예수님 곁에서 우리를 위해 전구하고 계실 성모님을 본받아 ‘내’가 아니라,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그분 곁에 머물리라. 주님을 따르고 그분의 명을 받들어 매일 새롭게 나 자신을 봉헌하리라.
나의 어머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
로마 백성의 구원자 성모님,
부족한 저에게 위로와 힘을 주소서.
저를 위해, 우리 모두를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 전구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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