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특집④ 망치 자국 위에 핀 부활

가톨릭 예술

월간 특집④ 망치 자국 위에 핀 부활

상처를 빛으로 바꾸는 ‘부활의 신비’

2026. 04.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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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불길과 수없이 이어지는 망치질. 왜 촛대에는 망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요?

 

👣 금속은 고된 재련의 시간을 지나 비로소 빛을 품습니다. 우리도 삶의 고난 속에서 믿음을 배우며 부활을 향해 나아갑니다.

 

🕯 부활 촛대 속에서 발견한 십자가부활의 신비’. 상처를 빛으로 바꾸는 신앙의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엄마의 마음으로 바라본 십자가

 

매일 아침 나의 하루는 단잠에 빠진 아이를 깨우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부활 촛대 디자인 작업을 하며 예수님께서 겪으신 수난과 부활의 신비에 대해 묵상하고 있는 요즈음, 곤히 잠든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볼 때면 자식의 고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성모 마리아의 마음을 헤아려 보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최근의 학교 현장이나 사회 문제들을 들여다보면 부모가 아이 앞에 놓인 장애물을 대신 치우거나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과잉보호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수많은 전문가가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적당한 역경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도 이러한 모습이 계속되는 것은 부모로서 자녀의 시련을 지켜보는 일이 절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그런데, 하물며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 둔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외아들이 고통을 당하고 갖은 핍박을 받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가시밭길을 가는 자식의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그 길을 막지 않으시고, 눈앞에 보이는 죽음 앞에서도 울부짖지 않고 받아들이신 어머니의 마음. 아들의 상처를 바라보며 도망칠 수도, 대신 아파해 줄 수도 없는 자리를 흔들리지 않고 지키실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구원에 대한 믿음, 부활에 대한 흔들림 없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어도 하느님의 뜻 안에 아들을 내어 맡기는 믿음으로 그 길을 함께 견디셨을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신 순간, 어린 예수부터 청년 예수에 이르기까지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가장 가까이에서 수많은 신비를 경험하고 아들과 대화를 나누며 쌓인 믿음. 그것은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며, 사랑하는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믿음이었을 것이다.

 


 

작품은 또 하나의 자식이 된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그 작품이 자식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오랜 시간의 노력을 거쳐 완성된 작품을 사람들 앞에 내놓을 때, 마치 다 키워 낸 자식을 세상에 내보내는 것 같은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촛대의 재료인 금속을 갈고 닦아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 내는 작업은 절대 쉽지 않다. 특히 올리움 촛대의 재료로 사용된 스테인리스는 금속 중에서도 가장 견고하고 영구적인 재료이지만, 그만큼 손으로 재련하기에는 매우 까다로운 재료이다. 그런데도 내가 스테인리스를 촛대의 재료로 사용한 이유는 뜨거운 불길에 태워도 녹아내리지 않고, 검게 그을려도 그 그을음을 벗기면 원래의 광택을 유지하는 강인함, 그리고 다른 금속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스테인리스 고유의 빛깔 때문이다.

 


 

불과 망치, 고통의 시간을 지나

 

이렇게 견고한 금속으로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 내려면 뜨거운 불에 달구고 식기 전에 힘차게 두드리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이는 고되고 힘에 부치는 작업이다. 그런데도 이 과정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작품이 완성된 후의 모습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형태로 완성되어 하느님 제단에 세워질 모습, 그리스도의 빛을 들어 올려 봉헌하는 도구로 사용될 모습을 그리면서 긴 시간 고통스러운 작업의 과정을 견뎌 낸다.

 

예수님의 길은 행복한 길이 아닌 수난의 길이었다. 배신, 조롱, 채찍질과 십자가. 수많은 시련이 그분을 짓눌렀다. 예수님의 몸은 십자가 위에서 상처 입고 찢기셨지만, 그 사랑은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 희생을 통해 사랑의 깊이를 보여 주셨다.

 

불과 망치질은 금속을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금속을 더 단단하게, 더 본질에 가깝게 만든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처를 내는 과정 같지만, 실은 재련의 시간이며 더욱 아름다움을 발하게 하는 과정이다.

 

나는 촛대 표면의 망치 자국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그 질감을 강조하였다. 부활은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영광으로 바꾸는 사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못 자국을 지닌 채 제자들 앞에 서셨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절망의 표지가 아닌 사랑의 증거가 되었다.

 


 

어둠에서 빛으로, 함께 들어 올리다

 

제대 위에서 조용히 타오르는 촛불. 미사 중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빛. 그 불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나 부활로 이어진 파스카 신비의 표징이다.

 

 

부활 촛대 디자인을 구상하며 부활의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스도 세상의 빛’, 그 영광스러운 빛을 세상에 비추는 날. 무덤을 막고 있던 돌덩어리가 치워지고, 다시 살아나시어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의 빛나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매끈하게 다듬지 않고 거칠게 깎은 촛대 하부의 돌덩어리는 수난의 시간을 상징한다. 묵직하게 무덤을 막았던 돌문과 죽음의 무게를 넘어 그리스도의 빛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려 밝히고 싶었다. 하늘을 향해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기둥은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 기둥은 초의 하부를 직접적으로 받치지 않고 주변을 감싸며 마치 빛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무게감 있는 재료인 돌과 금속 위에 떠 있는 듯 존재하는 빛은 죽음을 이기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상징한다. 촛불이 그리스도의 상징이라면, 여러 개의 기둥은 부활을 향해 가는 길이자 그리스도를 둘러싼 공동체의 의미를 담고 있다. 교회와 신자들이 함께하는 파스카의 여정을 통해 부활의 빛이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간다.

 

사진 © 임자연

 

제대 촛대의 형태에는 제단 위에 촛불을 봉헌하는 우리의 마음을 담았다. 두 팔을 모아 정성껏 들어 올려 봉헌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세 개의 촛대 중 가장 낮은 촛대의 두꺼운 하단부로부터 두 갈래의 라인이 뻗어 나와 상승하는 곡선 형태로 디자인하였다.

 

촛대는 얇은 판으로 이루어져 하나의 판만으로는 설 수 없지만, 두 개의 판이 서로 기대어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를 형성하며 단단하게 불빛을 받친다. 이는 우리 인간이 혼자서는 완전하지 않고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지만, 하느님께 의탁하여 비로소 굳건하게 서서 빛을 발할 수 있음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셨기에 채찍질을 당하고 죽음을 향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 길을 견뎌 내시지 않으셨을까.

 


 

상처를 빛으로 바꾸시는 하느님의 사랑

 

믿었던 메시아가 사람들의 멸시를 받고 죽음을 맞이한 순간.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한 많은 사람이 등을 돌리고 세상이 끝나 구원자는 없다고 생각한 그 순간을 지나, 다시 살아나시어 사람들 앞에 나타나시고 하느님 곁에 앉으신 부활의 신비’.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과 권세를 보여 주신 이 부활의 신비에 대한 믿음이 우리 신앙인에게도 세상을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아닐까 싶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그분의 사랑을 보여 주신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의 현장을 마주한다. 죄 없는 이들의 머리 위로 포탄이 떨어지고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질병으로 수많은 생명이 사그라들기도 한다.

 

견디기 힘든 고통, 끝날 것 같지 않은 아픔, 그리고 내 인생의 십자가 같은 일들이 나의 삶을 괴롭힐 때, 지나고 보면 그 일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자양분이 되고 때로는 뜻밖의 은총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금속을 재련하며 나는 기도했다. 우리가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불길 같은 시간 속을 지나게 되더라도 그 고통이 우리를 무너뜨리는 시간이 아니라, 더 깊은 사랑으로 단련되는 시간이 되기를. 그리고 상처의 흔적을 품은 촛대가 그리스도의 빛을 밝히듯, 우리의 모든 상처 또한 언젠가 사랑으로 다시 빚어져 빛을 발하는 자리가 되기를.

 

수많은 고난의 시간을 지나 완성된 올리움 촛대 위에 빛을 밝혀 본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삶에서 시련을 앞에 두고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믿음.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쳐 낼 수 있게 하는 힘. 하느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삶에 대한 증거. 바로 그 부활의 신비를 맞이하는 이 시기가 매우 기쁘고 감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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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제29회 가톨릭 미술상 젊은 작가상 수상. 조형 언어를 통해 신앙적 묵상과 신학적 의미를 형상으로 풀어내며, 작품 속에 신앙의 메시지를 담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통해 신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삶과 사랑을 가까이 느끼며 마음의 위로를 받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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