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신학교에서 지내기 시작한 것이 올해 1월이었으니, 신학교에서 양성자로 산 지 벌써 반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처음 신학교로 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겁이 덜컥 났습니다. 신학교에서 신학생을 양성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신학생 시절이란 신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시기이고, 특히 아직 영적으로 말랑말랑한 부분이 남아 있어서 양성을 받는 대로 형성되고 굳어지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그런 신학교에 제가 가야 한다니요! 유학을 다녀왔기에 언젠가는 신학교에 갈 수도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막상 신학교에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제가 신학교에서 맡게 될 보직이 ‘1학년 영성관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제가 하는 말 한마디가, 제가 하는 행동 하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갓 입학한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신학교에 가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영성관에서 신학생들을 잘 양성할 수 있을까?’라며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로 괜히 속앓이만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갔고, 부임 날짜는 점점 다가왔습니다. 결국 2024년 1월 18일, 저는 2년 동안 정들었던 홍산 성당을 떠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대전 가톨릭대학교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삿짐도 풀어야 했고, 새로운 집에 적응도 해야 했고, 연이어 계속되는 회의에도 참석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차 신학교에서의 생활에도 익숙해졌습니다. 방학 중이라 학생들이 없었기에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신학교의 생활 방식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방학이 끝나 갈수록 제 마음은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신학교로 이사 오기 전에 품었던 의문은 다시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결국 아무런 내적 확신도 결론도 없이 방학의 끝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학생을 맞이하기 위해 먼저 교수단 피정이 4박 5일 동안 있었고, 그 피정이 끝나고 곧바로 신입생들의 오리엔테이션, 그리고 뒤이어 신학생들의 개강 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학기가 시작되자 저의 삶은 정신없이 바빠졌습니다. 1학년들은 아직 아무것도 몰랐기에, 성무일도를 하는 방법, 미사를 차리는 방법, 기도와 성체조배를 하는 방법, 고해성사를 준비하는 방법 등을 하나하나 알려 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화 예절, 선배나 신부님들을 대하는 예절, 식사 예절 등, 영성적인 측면뿐 아니라 생활적인 면까지도 하나하나 돌봐 주어야 했습니다. 기도와 미사, 성경 읽기 등, 제가 1학년과 함께하는 시간만 해도 매일 대략 네 시간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저의 개인 시간은 거의 없었고, 그 와중에 새로 맡게 된 수업 준비도 충실히 해내야 했습니다.
저는 제게 맡겨진 모든 것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충실히 해내고 싶었습니다. 신학생들을 정말 좋은 사제로 키워 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 처음부터 가장 좋은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가장 좋은 길만 걸어갈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신학생들을 흠잡을 데 없는 사제로 키워 내고 싶었지만, 그런 제가 우선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실수도 하고, 가끔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하는 부족하고 나약한 한 사제일 뿐이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나자, 그런 제가 신학생들에게 ‘이상적인 사제’를 요구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1학년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도 너희를 어떻게 양성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무엇이 가장 좋은 길인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나 역시 부족한 사람일 뿐이지만, 우리 함께 하느님을 찾으며 앞으로 나아가 보자’고 말이지요. 그 뒤로 학생들의 모습이 드라마틱하게 변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그 이전에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고, 그 이후에도 나름대로의 모습으로 충실히 살아가려 노력하는 듯 보였습니다. 물론 부족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향해 비틀비틀 나아가려는 모습이 마치 저를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계속해서 ‘좋은 양성자란 어떤 사람인가?’를 묻곤 합니다. 물론 아직 명확한 답을 알 수는 없지만, 한 학기를 살아오며 나름대로 정리해 본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좋은 양성자란, 첫째로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드러낼 용기를 지닌 사람’일 것입니다. 완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척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선이고, 신학생들에게 오히려 거짓된 삶의 태도를 가르쳐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지만,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진실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기를 그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자신의 불완전성을 방패로 삼아 하느님께 나아가려는 노력을 그치고 그 자리에 안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좋은 양성자란, 자신의 불완전함을 알되, 끊임없이 완전을 바라보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행위는, 서로를 향한 자기 위로밖에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셋째로는 ‘교수단의 화합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좋은 양성자’라는 관점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하느님 사랑은 언제나 이웃 사랑과 함께 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제가 신학생 시절에 정말로 가슴 아팠던 때는, 교수 신부님들 사이에 반목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이는 신학생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교수단 안에서 거짓된 평화를 이루라는 의미가 아니지요. 신학교에서 양성자로 살아가며 동료 양성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정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겠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학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양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사랑받는지,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지, 신학생들은 금방 알아차립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 주고, 따뜻하게 대해준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사랑이 없다면 그들은 사랑의 부재를 금세 알아차릴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엄해도, 사랑하는 사제라면, 그들은 그 진의를 분명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야말로 양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왜냐하면 사제는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자, ‘사랑에 탁월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에서 한 학기를 지내며 ‘좋은 양성자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이렇듯 저 나름대로 답을 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며 어쩌면 이 답이 조금씩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보지 못하는 것을 시간이 지나며 볼 수도 있겠지요. 아니 어쩌면 지금의 순수함이 사라지고 익숙함과 매너리즘이 그 자리를 대신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이 질문을 놓지 않는 한, 하느님께서 더 좋은 답을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제게 맡겨진 젊은이들을 양성하고 성장시키시는 그분께서, 저 역시 당신을 향해 더 자라나도록 이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