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삶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

가톨릭 예술

자기 삶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

다시 일어나, 다음 산으로

2026. 0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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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책: 다섯 번째 산,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 우리는 언제, 어떻게 자기 삶에 새로운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다음 산으로 가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

 


 

 


 

자기 자신이 되는 것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오직 그것만 생각하세요.”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 2022년 나는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마르타의 서재란 이름으로 책방을 연 지 약 2년쯤 지났을 때였다. 친구 책방지기는 상호만 1년 넘게 고민하고 책방을 열었다는데, 나는 참 빠르고 쉽게 이름도 짓고 서점도 금방 열었다. 내게 시작은 늘 쉬웠다. 하고 싶으면 하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편. 사실 그건 걱정과 고민을 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딱히 능력이라 부를 수도 없었다. 문제는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이었다.

 

책방 문을 열고 2년이 다 되어도 자리를 잡는 것은 고사하고, 책방 장부는 늘 마이너스였다. ‘어떻게든 잘 될 거야하는 긍정 회로만 돌려서는 잘 될 수가 없었다.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가장 절실했던 것은 정체성이었다. 이곳만의 뚜렷한 색이 없었고, 사람들이 이곳에 꼭 와야 할 이유를 만들지 못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서점 이름을 바꾸면서 뭔가 마음가짐도 달리 해 보리라! 모호했던 책방에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 나고자 했다. 그렇게 마음독립서점으로 다시 시작해 보고자 했다.

 

이름을 바꾼다고 마음가짐과 태도가 저절로 변하고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삶이 내게만 그렇게 만만하고 쉬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돌보고, 책방을 운영하는 일, 그 모든 것은 여전히 벅차게 느껴진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자괴감과 제대로 살고 있나?’, ‘이 길이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수시로 마음 한구석에서 고개를 내민다. 그럴 때마다 , 주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고 기도 반, 탄식 반으로 중얼거리곤 했다. 신앙은 바로 이런 순간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 지혜로운 식별과 굳센 믿음으로 척척 해결하는 뭔가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 《다섯 번째 산》의 엘리야를 만났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이름을 갖는 것, 그것이 핵심이었다. 야곱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하느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며 축복을 내리셨다. 인간은 모두 태어나자마자 이름을 얻지만, 자신의 삶에 의미를 주는 말을 스스로 선택해 자기 삶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고 축복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아크바르입니다.” 그 여인이 말했었다. 도시 하나가 파괴되고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후에야 엘리야는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뜻을 깨닫는 순간 엘리야는 자신의 삶에 해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파울로 코엘료 《다섯 번째 산》, p.281

 

자기 삶의 의미를 스스로 선택한다는, 삶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고 축복할 줄 안다는 것. 순간 두 눈이 번쩍 뜨였다. 특히 스스로 선택하고 축복할 줄 안다는 부분. 이것은 책임의 문제였다. 이제야 내 삶에 무엇이 문제인지 알 것 같았다.

 

소설 속 엘리야는 자신의 삶에 해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남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고 굳건할 터.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 ‘마음 독립은 마음이 자유로운 상태, 어딘가에 매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바로 설 힘과 날아갈 자유를 담고 있다. 내게도 그런 힘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그는 태어날 때부터 그런 힘을 타고났을까? 적어도 소설 속 엘리야는 아닌 것 같다.

 

엘리야 예언자하면 왜인지 수염 덥수룩하고 무섭게 생긴 할아버지 이미지가 그려졌다. 몸에는 털이 많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두른 사람(2열왕 1,8)으로, 이스라엘의 병거이며 기병(2열왕 2,12)이었던 엘리야. 그는 아합과 이제벨 왕비에게 맞서서 진리를 외친 용감한 모습, 바알 제사 장면에서 불을 불러 하느님의 권능을 보여 주었다. 하느님의 명령으로 카르멜산에서 바알 예언자들을 처형하는 심판 대리자였으며, 흔들림 없는 믿음의 화신. 게다가 전승에서는 엘리야가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가히 범접할 수 없는 강력한 예언자의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그런데 《다섯 번째 산》의 엘리야는 조금 달랐다. 그는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두려움에 떨고 끊임없이 고뇌한다. 아합과 이제벨의 위협 때문에 광야로 도망가며, “죽고 싶다.”라고 기도하는 장면에서는 그가 겪는 내적 고통과 연약함이 드러난다. 예언자인 그도 죽음을 앞두고 무서워 벌벌 떨고,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고, 뜻하지 않은 시련을 겪으면 하느님께 항의하기도 했다.

 

스물세 살 젊은 예언자 청년 엘리야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의심하고 체념하다가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엘리야도 이렇게 흔들렸구나.’ 그러니 현재 불안정한 나의 삶은, 내가 나약하고 믿음이 얕아서가 아니었다. 예언자도,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로 겪으신 일. 그러니 인간이라면, 신이 잠깐 인간이 되셨을지라도 살면서 겪는 문제 중 하나라는 것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문제.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

 

소설 속 엘리야는 끊임없이 시련과 마주한다. 모든 예언자를 죽이려는 아합과 이제벨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고, 낯선 땅에서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고백도 못 해 본) 사랑하는 여인을 잃는다. 멀게만 느껴졌던 예언자에서 한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진심으로 그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힘도 없고 능력도 없지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이는 것이다. 하물며 인간인 나도 이럴진대 하느님께서는 어떠실까.

 

그는 단순히 시련을 견뎌 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시련을 통해 사람들과 더 진실하게 연결되었고, 하느님과 더 깊이 만나게 되었다.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보내고, 과부를 만나게 하고, 폐허가 된 아크바르를 재건할 공동체를 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는 천사를 보내셨다.

 

하느님께서는 엘리야를 결코 홀로 두지 않으셨다. 내 삶에도 그런 은총의 순간들이 있었다. 엘리야에게 까마귀가 있었다면 내게는 진정한 나 자신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 모닝 페이지가 있었다. 정말 힘들었던 순간 먼저 내게 손을 내밀어 준 선한 이가 있었고, 무너진 내 삶에서 함께 돌을 치우고 흙을 고르는 공동체가 있었다.

 

엘리야는 지쳐 쓰러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사람들과 함께 폐허가 된 도시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신앙이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성벽이 아니라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서고, 다시 길을 찾는 여정이었다. 다시 일어설 힘도 그 시련 속에 있었다.

 


 

살아가는 법, 사랑하는 법

 

엘리야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건 사렙타 지방의 과부와 그의 아들이었다. 성경에는 기적의 배경 정도로 나오는데, 작가는 이 행간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그려 냈다. 엘리야가 그녀를 통해 사랑을 배우는 과정은 애틋하고 절절했다. 과부와 그 아들과 함께, 낯선 곳에서 다른 민족들과 살아가면서, 그는 사랑하는 법을 배워 갔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자주 듣고 말하지만, 사실 너무 추상적이어서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하느님 체험, 하느님 사랑 체험은 선물이고 은총이다. ‘내가 느껴볼 테다한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분의 시간 안에서, 그분의 계획 속에 이루어지는 일. 피부에 닿아 느껴지는 감각만큼 확실한 사랑 체험. 내게는 강렬한 기억이 있다.

 

아직도 기억할 때마다 전율한다. 청년 성서 모임, 창세기 연수 마지막 밤 미사. 지도 신부님부터 시작된 평화의 인사는 하느님이 내려와 나의 온 존재를 끌어안아 주시는 것 같았다. 따뜻함을 넘어선 뜨거운 열감이 온몸에 전해졌다. 그냥 무조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주시는 그분의 강렬한 터치. 나는 사랑이라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다섯 번째 산을 오르며

 

엘리야가 전쟁 중에도 평화를 위해 애쓰고,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살아가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구나. 신앙이란 결국 삶으로 사랑을 드러내는 것. 전쟁터가 따로 없이 어질러진 집안을 날마다 쓸고 닦는 일, 책방에 오는 손님들과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힘든 친구를 위로하는 짧은 순간들을 통해 그 사랑을 조금씩 감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그랬듯이, 우리도 각자의 다섯 번째 산에서 하느님과 만난다. 여전히 앞은 막막하고 지치고 흔들릴 때가 많겠지만 이제는 안다. 시련처럼 보이더라도 그 안에 사랑이 있다는 것을. 강렬한 터치 같은, 인생에서 손에 꼽힐 만큼 극적인 신호만을 기대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일상의 작은 순간들, 조용한 내면의 소리를 통해 우리를 부르신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책방을 찾은 손님과 나눈 따스한 대화, 힘들 때 건네는 친구의 위로에서 나는 마음 독립이라는 새 이름의 진짜 의미를 살아 내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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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독립서점 대표. 생명, 자연, 치유, 나다움, 기쁨을 나누고 싶어요. 읽고 쓰고,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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