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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분 안에 만나는 동방 박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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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아름다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장미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 《어린 왕자》 중에서
어린 왕자가 떠나온 별에는 그가 물을 주고 바람을 막아 주며 공들여 키운 장미가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수많은 별 중 하나일 뿐이지만, 어린 왕자에게는 장미를 품고 있는 그 별이 어떤 보석보다 소중합니다. 어린 왕자에게 별은 자신과 눈에 보이지 않는 장미를 이어 주는 존재입니다.
2천 년 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검푸른 밤하늘에 총총 빛나는 별을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찾아 긴 여정을 떠납니다. 이들은 목자도, 천사도 없이 오직 별빛 하나에 의지하여 한 아기를 찾아갑니다. 낭만적이지만 무모해 보이는 이들의 여정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동방 박사와 별
이 여행자들은 헤로데 대왕 재임 말년에 갑자기 예루살렘에 나타났습니다. 동방 박사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확실히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그들이 별을 따라 동쪽에서 이스라엘로 왔기에 바빌론 지역의 천문학자라고 생각했고, 또 다른 이들은 그들이 아기에게 준 선물을 근거로 이방의 왕들과 연관 지었습니다(시편 72,10; 이사 60,3). 어떤 이들은 그들을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들로 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마술사들이라고 했습니다. 확실한 사실은 이들이 별을 읽을 줄 알았던 지혜를 가진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고대에는 찬란한 별이 떠오르는 것은 새로운 왕이나 통치자의 등장을 알리는 하늘의 징조로 여겼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별이 떠오른 것을 보고 서쪽 땅 팔레스타인 지역에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고 확신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별은 발라암의 네 번째 신탁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민수 24,17)
구약의 이방인 예언자가 별이라는 상징을 통해 이스라엘의 미래 통치자를 묘사했듯이, 이방인 동방 박사들도 별을 보고 유다인의 임금의 탄생에 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계시의 길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헤로데, 유다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유다인들의 임금”
동방 박사들이 도착한 곳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복음서는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헤로데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헤로데가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라는 말을 듣고 온 예루살렘과 함께 깜짝 놀랐다고 묘사합니다. 이 간결한 설명은 이 사건이 헤로데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을 찾아서 “경배”하러 왔다는 소식은 헤로데에게 정치적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헤로데의 두려움과 걱정은 그의 행동에서 드러납니다. 먼저 그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소집합니다. 수석 사제들이 백성의 원로들과 함께 예수님을 반대하는 태도는 특히 수난 이야기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마태 26,3.14.59; 27,1.6.12.20.41.62; 28,11-13).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실 때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마태 20,18).
헤로데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아 “유다인들의 임금”이 될 아기에 대해 물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처음부터 메시아에 대해 음모를 꾸민 종교적, 정치적 권위자들의 불경스러운 동맹임을 드러냅니다. 헤로데는 이 유다인 지도자들에게 “유다인들의 임금” 대신에 “메시아”가 어디서 태어날 것인지 묻습니다(마태 2,4).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미카 5,1과 2사무 5,2를 편집하여 인용하면서 유다 베들레헴을 메시아의 탄생지로 확인합니다(마태 2,5-6). 그들은 헤로데에게 메시아의 탄생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 후, 그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이는 수 세기 동안 메시아를 기다려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아기를 찾기 위하여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역설적입니다.
헤로데의 불안과 잔혹함을 알고 있었던 유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를 보호하기 위해 무언가를 했어야만 합니다. 이는 동방 박사들로 대표되는 이방인들이 메시아를 찾고 경배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메시아의 도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유다 종교 지도자들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 줍니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마태 2,8)
헤로데는 먼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통해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동방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직접 인도합니다. 동방 박사들에게 직접 한 이 말은 그가 아기의 탄생에 진심으로 관심이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잘 알아보고’, ‘나에게 알려 달라’는 이 두 명령문의 어조는 매우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그는 동방 박사들에게 아기를 찾은 결과를 보고하도록 요청합니다. 헤로데의 목적은 자신도 가서 아기를 “경배”하겠다는 것입니다.
‘경배하다’ 또는 ‘엎드려 절하다’라는 동사는 예수님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아서 마태오 복음서에는 총 11번 등장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 이해했을 때 예수님을 경배했습니다(마태 14,33; 28,17). 동방 박사들의 경배는 나병 환자(8,2), 회당장(9,18), 가나안 여인 (15,25), 제베대오의 두 아들들의 어머니(20,20), 그리고 부활의 선포를 듣는 여인들(28,9)이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는” 모습과 같이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헤로데의 경배에는 간교한 목적이 숨겨져 있습니다(마태 2,16-18 참조).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헤로데의 말을 “듣고” 동방 박사들은 다시 길을 떠납니다(마태 2,9ㄱ).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에 동의하거나 따르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마태 13,3; 17,5; 18,15 참조). 그러므로 동방 박사들은 헤로데에게 다시 돌아가 아기에 대해 알릴 수도 있습니다.
이때, 동방 박사들은 다시 별을 만납니다. 두 번째로 만난 별은 그들을 앞서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춥니다(마태 2,9ㄴ). 별이 처음 이끌었을 때, 동방 박사들은 아기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두 번째로 나타난 별이 그들을 아기에게 인도합니다. 그들은 별을 보고 느꼈던 감정을 “더없이” 기뻤다고 강조합니다(마태 2,10). 이는 신약에서 기쁨이라는 감정이 아주 강렬한 형태로 표현된 유일한 구절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마침내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그들은 3단계의 행동을 통해 아기를 만납니다.
첫째,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봅니다(마태 2,11ㄱ). 동방 박사들이 그 집에 들어간 것은 환영의 표시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이자 나그네였음에도, 예수님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둘째,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마태 2,11ㄴ).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는 갓 태어난 아기의 신성을 인정하는 경배 행위입니다. 셋째, 그들은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마태 2,11ㄷ).
동방 박사들이 유다인의 임금에게 이 세 가지 예물을 바친 행위는 시편 72,10과 이사 60,6을 암시합니다. 시편 72,9-10은 유다인의 왕이 이방의 나라들과 그들의 왕들을 다스리기를 기원합니다. 이러한 통치권의 가시적인 표징으로 이방의 왕들은 다윗 왕조의 왕에게 예물을 가져와야만 했습니다. 이사 60장은 이스라엘 민족의 미래의 영광을 암시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게 머물고,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위에 드높여져 그 빛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이방 민족들이 금과 유향을 가져올 것입니다. 이러한 암시를 통해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바로 모든 민족이 기다려 온 영광의 왕임을 선포합니다.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예물을 바친 후, 자기 나라로 돌아갑니다(마태 2,12).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헤로데에게 아기 예수에 대한 정보를 알려 줘야 했지만, 요셉처럼 그들도 꿈에서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말을 듣고 다른 길을 택해 고국으로 떠납니다.
우리는 어디로 길을 떠났나요?
동방 박사들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탄생 소식에 대해 깊은 신앙을 가진 자들과 두려움을 가진 자들의 반응을 묘사합니다. 이방인들을 대표하는 동방 박사들은 이 기쁜 소식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먼 길을 나섰지만, 헤로데와 유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 소식에 두려움에 떱니다. 이들은 훗날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결국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어린 왕자에게 별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장미를 이어 주는 존재였듯이, 동방 박사에게 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유다인들의 임금, 곧 메시아를 찾아가 경배하게 이끄는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별을 통해 하느님의 계시를 읽고 따랐습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은 지금 어느 길 위에 있을까요? 별빛을 따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소중한 분을 찾아 떠난 동방 박사들의 여정에 동참하고 있나요? 아니면 헤로데처럼 눈앞의 이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분을 거부하며 서 있나요?
오늘 우리의 믿음이 그 별빛을 따라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기를, 그래서 마침내 우리를 위해 태어나신 “유다인들의 임금” 앞에 엎드려 경배하기를 소망합니다.
참고 문헌
- 앙투안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김미정 번역, 더 스토리 (2021) 119.
- R.T. France, The Gospel of Matthew, NICNT, Wm. B. Eerdmans, Grand Rapids (MI) 2007, 66–68; G.Delling,“Μάγος, μαγεία, μαγεύω”, TDNTIV, 356-359.
- M. David Litwa, Come i Vangeli divennero storia: Gesùe i miti mediterranei, Paideia, Torino (2023) 164.
- Craig S. Keener, The Gospel of Matthew: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Wm. B. Eerdmans Grand Rapids (MI) - Cambridge (2009) 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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