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알려 드립니다.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 축제로 기뻐했던 것처럼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의 부활 축제로 우리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3월 5일이 재의 수요일이고 이날 단식하며 거룩한 사순 시기를 시작합니다. 4월 20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대축일을 기쁘게 경축합니다. 6월 1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대축일입니다. 6월 8일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6월 22일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11월 30일은 대림 제1주일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
방금 올해 주님 부활 대축일 날짜와 여러 이동 축일의 날짜를 알려드렸습니다. 이 알림은 달력이 잘 보급되지 않았던 옛 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 교회의 관습으로, 특별히 주님 공현 대축일 미사 때 복음이 선포되고 나서 이 관습을 지켜왔습니다. 물론 지금은 스마트폰이나 달력을 통해 쉽게 날짜를 확인할 수 있지만, 교회가 지금도 공동체 안에서 계속 이 관습을 지키는 이유는 축일 날짜의 선포와 주님 공현 대축일이 의미가 서로 깊이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공적으로 드러나신 예수님
주님 공현 대축일의 ‘공현’이라는 말은 ‘공적으로 드러내 보이셨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날 교회는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세 가지 모습을 묵상하면서, 당신 자신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 보여 주시는 예수님을 기념해 왔습니다. 성무일도서에서 주님 공현 대축일의 제2저녁기도를 찾아보면, 성모의 노래 후렴에서도 이 사실을 노래합니다.
“오늘 세 가지 기적으로 이날을 기념하였도다. 별이 박사들을 구유에로 인도하였고, 혼인 잔치에서 물이 술로 변하였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도다. 알렐루야.”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 동방에서 온 박사들에게 아기 예수님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고, 둘째,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첫 기적을 행하시면서 예수님께서 구세주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요르단강에서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공생활을 시작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모습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과 성령과 함께 세상 창조 때부터 함께 계셨고, 마침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공적으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 공현 대축일은 앞으로의 우리의 날들을 선포하는 날입니다. 한 해를 주기로 반복되는 전례 주년 안에서 주님과 함께, 주님을 기념하는 날짜들을 선포한다는 것은 단지 이동 축일의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 아닙니다. 구원 역사와 전례 주년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그 안에 앞으로의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야 하고, 이제 그리스도께서 공적으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으니, 그리스도의 삶과 우리 삶이 분리될 수 없는 점을 기억하며 우리도 그분의 삶을 따라 또 한 해를 살아갈 수 있기를 다짐하는 것입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날짜들을 선포하는 날’인 셈입니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날들을 선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