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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의인’이라 불린 노아의 빛나는 모습만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 그의 약하고 부끄러운 순간까지 성경은 왜 숨기지 않았을까요? 🪞 노아와 세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약함과 관계의 상처를 함께 돌아봅니다. |
술에 취한 의인, 노아
지금은 인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술 문제에 비교적 관대했습니다. 술에 취해 실수하거나 사고를 일으켜도 “평소에는 참 좋은 사람인데 술만 마시면 저렇다”, “술이 원수다” 하며 술 탓으로 돌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술에 취하면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갑자기 말이 많아지거나, 울음을 터뜨리거나,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시비를 거는 등 그 모습도 다양합니다.
물론 술에 취해 한두 번 실수했다고 해서 곧바로 알코올 의존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술에 취해 예상 밖의 모습을 드러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노아입니다. 성경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벌거벗은 채 천막 안에 누워 있었던 일을 전합니다.
다만 이 한 장면만으로 노아가 반복적으로 술에 취했거나 알코올 의존 상태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그의 반복적인 음주 여부까지 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인’ 노아의 뜻밖의 모습
성경은 노아를 “당대에 의롭고 흠 없는 사람”이며 “하느님과 함께 살아간”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창세 6,9). 세상이 폭력과 악으로 가득 차 있을 때도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랐고,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의인’이라는 말은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완벽한 인간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이 노아를 의인이라고 부르면서도 이어서 그의 매우 인간적인 실패를 숨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중요합니다.
홍수라는 엄청난 재앙 속에서 가족을 이끌고 살아남은 노아는 자녀들에게 얼마나 든든한 아버지였을까요.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방주를 준비했던 아버지, 온 세상이 물에 잠길 때 가족을 지켜 낸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노아를 영웅적인 모습으로만 남겨 두지 않습니다.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도 어느 순간 약해질 수 있고, 신앙이 깊은 사람에게도 감추고 싶은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노아의 이야기는 아주 인간적인 이야기가 됩니다.
홍수가 끝난 뒤
홍수가 끝난 뒤 노아는 농사를 지으며 포도밭을 가꾸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벌거벗은 채 자기 천막 안에 누워 있었습니다.
아들 함은 아버지의 알몸을 보고 밖에 있는 두 형제에게 알립니다. 셈과 야펫은 겉옷을 어깨에 걸친 뒤 뒷걸음으로 천막 안에 들어가 아버지의 몸을 덮어 줍니다. 얼굴을 돌려 아버지의 알몸을 보지 않았습니다(창세 9,20-23).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늘 존경하던 아버지를 찾아갔는데, 그 아버지가 술에 취해 벌거벗은 채 쓰러져 있다면 자녀들은 어떤 마음이 들까요. 당혹스럽고 부끄러울 수도 있고, 실망하거나 화가 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노아 개인의 실수만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무너짐이 그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가족 전체의 감정과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우리는 서로의 약함을 더 많이 보고, 그 약함 때문에 더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드러내는 사람과 덮어 주는 사람
성경은 함이 아버지의 알몸을 본 뒤 형제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고 전합니다. 반면 셈과 야펫은 아버지의 몸을 보지 않은 채 옷으로 덮어 줍니다.
성경 본문 자체는 함이 정확히 어떤 말투와 의도로 형제들에게 알렸는지까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마음을 단정하기보다는 세 아들의 행동이 어떻게 달랐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 좋습니다.
함은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밖으로 가져갔고, 셈과 야펫은 그 부끄러움을 덮어 주었습니다. 같은 장면을 마주했지만 반응은 달랐습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약점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행동할까요. 그 약점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며 더 크게 드러낼 수도 있고, 잘못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의 존엄까지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덮어 준다는 것은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과는 다릅니다. 셈과 야펫의 행동에서 우리가 읽어 낼 수 있는 것은, 문제와 사람을 구분하는 태도입니다. 사람의 잘못은 분명히 보면서도 그 사람 전체를 그 잘못 하나로 규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잘못은 또 다른 잘못으로 이어지고
술에서 깨어난 노아는 함이 한 일을 알고 그의 아들 가나안에게 저주를 내립니다. 반대로 셈과 야펫에게는 복을 빌어 줍니다(창세 9,24-27).
이 장면 역시 편안하게 읽히지는 않습니다. 술에 취해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것은 노아였는데, 이야기는 아들 세대의 갈등과 저주로까지 이어집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상처받거나 수치를 느꼈을 때 먼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기보다, 자신을 바라본 사람에게 분노를 돌리기도 합니다. 한 사람의 실수가 수치가 되고, 수치가 분노가 되고, 그 분노가 다시 가족 안의 상처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이 노아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방주를 만든 의인도 술에 취해 무너지고, 가족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며, 그 뒤에는 저주라는 거친 말까지 남깁니다. 성경 속 의인은 흠 하나 없는 영웅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약함을 지닌 인간으로 나타납니다.
노아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과 ‘잘못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서로 모순되는 것일까요?
어쩌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존경하면서도 그의 약점을 발견할 수 있고, 사랑하는 가족에게서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존경받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실수하고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람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쉽게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 의로움과 약함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노아의 이야기는 바로 그 불편한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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