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을 인정하는 것도 믿음일까?

성경 이야기

약함을 인정하는 것도 믿음일까?

알코올 의존과 회복을 통해 돌아보는 도움과 곁의 의미

2026.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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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허영엽 신부의 성경 이야기> 시리즈로 ‘왜 성경은 의인의 실수까지 기록했을까?’에서 이어집니다. 👉 이전 편 보기

 

 🍷 술로 인한 문제는 한 사람에게서 그치지 않고 가족과 관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 알코올 의존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개인의 의지뿐 아니라 치료와 주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노아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회복을 돕는 가족의 태도와 영적 쉼의 의미를 돌아봅니다.

 


 

이전 화에서 살펴본 노아의 이야기는 오래된 성경 속 한 장면으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술로 인한 문제는 한 사람에게서 그치지 않고, 가장 가까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술이 삶을 흔들기 시작할 때

 

평소에는 말수도 적고 점잖았지만, M은 술만 마시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곤 했습니다. 집 안의 물건을 때려 부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12월 하순의 밤, 송년 모임에서 술에 취해 늦게 귀가한 그는 갑자기 망치를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집 앞에 세워진 자동차 한 대를 마구 때려 부순 뒤 방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가 부순 것은 자신의 차가 아니라 이웃의 고급 승용차였습니다. 술에 취해 벌인 일이었지만, 그로 인한 결과와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술로 인해 판단력과 행동을 통제하는 힘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문제는 더 이상 술을 마시는 사람 한 명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 행동의 결과를 가족이 함께 감당해야 하고, 관계 속에 불신과 두려움이 쌓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도 함께 아픕니다

 

제 형님 신부님도 오랫동안 알코올 의존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술을 끊고 회복하여 중독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는 사목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형님의 술 문제는 형님 한 사람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족 모두에게 큰 걱정이었고, 특히 어머니의 마음을 오래 아프게 했습니다. 말년에도 어머니가 가장 간절히 바라신 일 가운데 하나는 형님이 술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형님이 술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데에는 자신의 치열한 노력뿐 아니라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와 성모님의 도우심도 함께했다고 믿습니다.

 

알코올 의존은 인간관계를 무너뜨리고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며, 가족에게도 큰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상태가 심해지면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생기고, 가족 간의 갈등도 깊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알코올 의존을 단순히 ‘술버릇’이나 개인의 의지 부족만으로 바라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회복에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알코올 의존에서 벗어나는 일을 개인의 의지만으로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살피고 필요한 치료와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을 받고, 술에 대한 갈망이 강하게 올라올 때는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잠시 버텨 보는 연습도 필요합니다. 지역 사회의 단주 모임에 참여하거나 술을 떠올리게 하는 환경에서 거리를 두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으로 여기며 자책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다시 술을 찾게 되었다면 무엇이 그런 상황을 만들었는지 돌아보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도움을 받는 것은 의지가 약하다는 뜻이 아니라,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제대로 마주한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배고프고, 화나고, 외롭고, 지칠 때

 

알코올 의존에서 회복할 때 기억해 둘 만한 말로 ‘HALT’가 있습니다. Hungry(배고픔), Angry(분노), Lonely(외로움), Tired(피로)의 머리글자를 딴 표현입니다. 배고프고, 화가 나고, 외롭고, 피곤한 상태에서는 술에 대한 갈망이 더 강하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이러한 상태를 오래 방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규칙적으로 몸을 돌보고 충분히 쉬는 것과 더불어, 신앙인에게는 기도와 묵상, 조용히 하느님 앞에 머무는 시간과 같은 ‘영적 휴식’도 필요합니다.

 

다만 영적인 도움과 전문적인 치료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회복을 도울 수 있는 방법으로 바라보는 편이 좋습니다.

 


 

곁을 지키는 가족

 

이전 화에서 우리는 술에 취한 노아를 마주한 세 아들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셈과 야펫은 아버지의 벌거벗은 몸을 보지 않으려 뒷걸음으로 들어가 겉옷으로 몸을 덮어 주었습니다.

 

셈과 야펫의 모습에서 가족이 보여 줄 수 있는 지지의 태도를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문제를 겪고 있는 가족을 비난하거나 모욕하기보다 그의 존엄을 지켜 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곁을 지켜 주는 것입니다.

 

물론 가족이 잘못을 대신 감당하거나 문제 자체를 감추어 주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잘못은 분명히 바라보되, 한 사람 전체를 그 잘못 하나로 규정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노아는 의인이었지만 약한 인간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넘어질 수 있고, 한 사람의 잘못은 때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까지 상처를 남깁니다.

 

그러나 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곧 체념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힘만으로 감당할 수 없을 때 도움을 청하고, 주변 사람들은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곁을 지켜 주는 것. 어쩌면 회복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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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1984년 사제품을 받은 후, 다양한 성당에서 사목하며 18년간 서울대교구 대변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현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을 맡고 있으며, 바쁜 사목 활동 속에서도 여러 매체에 꾸준히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성경 속 궁금증》, 《성경 속 상징》, 《성경 순례》, 《당신을 만나 봤으면 합니다》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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