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깊어지는 신앙 |《전례에 초대합니다》

가톨릭 예술

아는 만큼 깊어지는 신앙 |《전례에 초대합니다》

전례의 의미를 더해 신앙생활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책

2025. 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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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 예수님.

 

저는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성당을 방문하는 편입니다. 성당이 모두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세심하게 살펴보면 실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마당에 어떤 성모님을 모셨는지, 그 성모상이 자리 잡은 정원을 어떻게 조성했는지,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십자가의 길이 마련되어 있는지 등에서 차이가 드러납니다. 또 고해소와 성수대의 위치도 다르고, 정문으로 들어가는지 아니면 측면 문으로 들어가는지에 따라 성전에 대한 경건한 마음가짐 또한 달라집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더욱 흥미롭습니다. 제단 쪽을 바라보며 제단의 구조와 제대의 형태와 문양,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혹시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면 십자고상을 어디에 따로 두었는지 확인합니다. 주례 사제의 자리와 독서대도 살펴보고 감실의 위치와 장식도 유심히 바라봅니다. 혹시 벽 제대를 보관한 성당을 방문하면 과거부터 이어져 온 제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살피는 재미도 있습니다. 또한 성전 안에 성체 조배를 위한 자리가 있는지도 둘러봅니다.

 

이제 신자석을 바라보며 신자들의 신앙을 어떻게 이끌고 있는지 느껴 봅니다. 성전의 유리창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했는지, 설치했다면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도 흥미로운 포인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담아 복음을 전하는 곳도 있고, 묵주 기도의 신비를 담아 기도로 인도하기도 하며, 다채로운 색채로 성전 안에 따뜻함을 전해 주기도 합니다. 전례를 마치고 나가는 신자들에게 성전 뒤에 있는 성화나 유리화는 또 다른 의미를 선사합니다. 최후의 심판이나 성령을 형상화한 작품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신앙인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잡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지역에 있는 성당은 단순히 전례가 거행되는 장소가 아니라, 신앙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영적 양성의 장입니다. 그래서 지역 성당이나 공소를 방문하면 해당 공동체의 신앙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다니는 본당도 깊이 살펴볼수록 새롭고 놀라운 점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전 사목하던 본당에서 주일 미사 강론을 준비할 때입니다. 어른 신자들에게는 복음 내용을 말로 전하기 쉬웠지만, 초등부 주일 학교 미사에서는 말로만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성전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복음을 이야기하고 제단을 통해 전례 교육을 하는 방법이었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다행히 유리화에는 예수님의 일생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고, 대림, 성탄, 사순, 부활뿐만 아니라 연중 시기의 중요한 몇 가지 사건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성소 주일에는 백 마디 말보다 어린양들과 함께하는 예수님 그림을 가리키며 설명하니 훨씬 쉽게 이해시킬 수 있었습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는 최후의 만찬, 십자가 죽음과 부활 장면을 보여 주며 이야기를 풀어 주니 더욱 효과가 좋았습니다.

 

이처럼 성당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의 신앙은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많은 상징과 표징으로 이루어진 전례의 경우, 각 성물과 예식 도구의 유래와 의미를 알면 알수록 미사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미사의 각 부분을 신학적으로 설명해도 일반 신자들에게는 와닿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물의 의미를 알게 되면 미사 때마다 그 도구를 보면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습니다.

 

간단한 예로 전례력에 따라 사제들의 제의 색이 달라집니다. 피와 순교를 의미하는 붉은색부터 영광을 상징하는 흰색, 참회와 기다림을 나타내는 보라색까지. 사제의 전례복을 보면 해당 미사의 영적 의미를 곧바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미사의 중요성을 알고 싶다면 제대 위의 촛대를 살펴보면 됩니다. 초가 한 쌍이면 평범한 날이고, 두 쌍이면 기념일이나 축일, 세 쌍이면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주교님이 미사를 집전하시면 작은 초를 하나 더 추가하고, 부활 시기와 세례식에는 부활초를 제단 위에 배치하여 그날의 특별한 의미를 전합니다.

 

안드레아 자크만의 《전례에 초대합니다》

이렇게 아는 만큼 풍성해지도록 도와주는 책을 소개합니다. 안드레아 자크만의 《전례에 초대합니다》입니다. 이 책은 전례에 대한 심도 있는 신학적 해석보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다양한 성물과 성스러운 공간의 의미를 생생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간결한 역사적 배경과 심오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어, 본당 전례 봉사팀이나 주일 학교 교사들에게 특별히 추천할 만한 책입니다.

 

이 책이 더 일찍 출간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신학생 시절 본당 신부님께 들은 꾸지람이 기억났기 때문이죠. 성시간을 준비하면서, 신부님은 제게 플루비알레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어깨보를 가져오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가져갔다가 혼쭐이 났죠. 알고 보니 플루비알레는 카파라고도 불리는 전례복입니다. 행렬을 할 때나 성찬례를 거행하지 않을 때 제의 대신 입는 복장이죠. 장례 미사, 혼인 미사, 세례 예식이나 성체 강복 등에서 사용되는데 이 사실을 몰랐던 저는 적잖게 당황했습니다. 이처럼 전례에 참여하는 복사단이나 전례단, 제대회의 경우에는 전례에 사용되는 다양한 도구와 그 의미를 알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신자석은 사실 천주교가 아닌 개신교에서 먼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개신교는 설교를 중시했기에 신자들이 긴 설교를 듣고 편안하게 앉아 있을 수 있도록 좌석을 마련한 것이 유래였고, 이후 가톨릭 교회에도 전해졌다고 합니다.

 

제대 안에 성인의 유해를 모신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초기 교회에서는 순교자가 묻힌 지하 묘지에서 미사를 봉헌하던 관습이 있었는데, 순교자들과 영적으로 가까이 있고자 성인의 유해를 제대 밑이나 제대 안에 모시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이처럼 전례 도구들의 깊이 있는 역사를 알아가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전례 장소와 도구들을 알게 되었다면 다른 ‘~ 초대합니다시리즈도 함께하면 좋습니다. 도미닉 그라시와 조 파프로키의 《미사에 초대합니다》를 통해 미사의 각 부분 의미를 하나씩 배울 수 있습니다. 강론과 설교의 차이, 전례 시기별 적절한 기도, 미사 감사 기도의 다양한 형식 등 미사의 의미를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도구와 미사의 의미를 배웠다면, 이제는 전례력에 따른 말씀도 익히면 좋겠죠. 라이너 마리아 쉬슬러 신부님의 《말씀에 초대합니다》를 통해 전례력의 흐름에 따른 묵상을 현대적 언어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서는 전례에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고 선포한다고 가르칩니다. 신자들은 전례에 참여함으로써 세상에서 그 신비를 살아가고 증언하게 됩니다. 다양한 표징과 상징을 통해 전해지는 그리스도의 신비는 아는 만큼 풍성해지고 깨닫고 체험한 만큼 신비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전례에 더욱 깊이 참여하기 위해 전례에 대해 알아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때 《전례에 초대합니다》《미사에 초대합니다》, 《말씀에 초대합니다》는 여러분의 신앙을 풍성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 줄 것입니다.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교의신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공동체 기도 사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가톨릭 신앙의 보화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배우며, 개인의 성장과 공동체의 도움이 되는 경험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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