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학교에 적지 않은 손님들이 다녀가셨습니다.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대전가톨릭대학교 비배섬 축제’가 8년 만에 다시 열렸기 때문입니다. 학교 교훈인 ‘비움, 배움, 섬김’의 정신을 바탕으로, 올해에는 아가의 한 구절인 ‘먹어라, 벗들아. 마셔라, 사랑에 취하여라!’를 주제 성구로 삼아 신명 나는 잔치를 벌였습니다.
물론 일반 대학교의 축제에 비하면 보잘것없고 소박한 수준의 축제일 것입니다. 초대 가수들의 공연도 없고, 기껏해야 신학생들이 준비한 노래와 춤이 공연의 전부인 축제, (저희에게는 적지 않은 손님이라고 해도) 400여 명이 손님의 전부인 축제, 먹거리나 이벤트도 다양하지 않고, 고작 50명의 신학생과 인근 본당의 봉사자분들이 준비한 부스가 전부인 축제.
그럼에도 찾아주신 손님들의 얼굴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고, 구슬땀을 흘리며 준비하던 신학생들의 얼굴도 무척 밝아 보였습니다. 저희 교수 신부들도 신학생들이 정성껏 준비한 부스를 방문해서 격려하고, 신학생들의 공연을 보고, 신학생들과 함께 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녁에는 총대리 주교님께서 방문하셔서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며 신학생과 사제단을 격려해 주기도 하셨습니다.
이틀 동안 계속된 축제에 함께하니, 자연스레 제가 신학생이던 시절의 축제가 떠올랐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지 15년 정도 되었으니, 오래전이라고 하면 오래전의 일인 것 같기도 하고, 얼마 안 되었다고 하면 또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일이기도 합니다. 그때에는 신학생들이 참 많았습니다. 대전 신학교 역사상 가장 많은 신학생이 있었던 때가 그 시절인 듯합니다. 최고로 많을 때는 200명의 신학생이 함께 지냈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그때 200명이 쓰던 신학원 공간을 지금은 50명이 사용하는 셈입니다.
학생이 많았으니 축제의 규모도 조금 더 컸고, 볼거리며 즐길 거리도 조금 더 풍성했던 느낌입니다. 학년별로 연극을 준비해서 신학교 전체를 무대로 삼아 거리극을 공연하기도 했고, 동아리마다 다양한 부스를 준비해서 먹거리를 판매하거나, 작은 이벤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둘째 날 저녁에는 학교 대운동장에 빽빽하게 천막을 치고, 손님들과 신학생들이 낭만적인 촛불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밴드 동아리는 대운동장의 중앙 스탠드에서 공연을 하고, 사람들은 그 음악을 안주 삼아 또 술 한 잔을 더 먹었었지요. 운동장 외곽에는 음식을 파는 신학생들이 있기도 했지만, 많은 신학생이 손님들과 함께 어울리며 축제를 즐겼습니다.
이번에 열린 축제는 과거와는 참 많이도 달라졌습니다. 우선 신학교의 인원이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줄었습니다. 그에 따라 손님도 제한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지요. 예전에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축제였지만, 올해는 신학생의 소속 본당 청년으로 제한해서 초대 공문을 발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손님을 많이 받을 수 없으니, 자연스레 이용하는 장소도 협소해졌습니다. 예전에는 대운동장에서 공연과 식사, 음주 등의 아가페 자리가 만들어졌는데, 이번에는 운동장이 아니라 ‘진리관’이라는 이름의 학교 중앙 건물 입구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천막을 치거나, 전기를 끌어오거나 하는 일들은 이제 신학생들의 힘만으로 부족해서 업체를 불러야만 했고, 행사를 진행할 사람이 부족해서 신학생들은 본당에서 오신 손님들을 놓아두고 행사 진행에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번에 직접 축제를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신학생들이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몹시 힘들어 보였습니다. 안 그래도 바쁜 신학교 일과 중에, 시간을 쪼개어 축제를 기획하고, 부스를 준비하고, 공연을 준비하고, 여러 업체와 연락을 주고받는 신학생들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한정된 인원으로 축제를 준비하다 보니 1인 2역, 3역은 기본으로 해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축제 준비 위원으로 활동하거나, 공연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도 예외 없이 축제 준비를 위한 특별 노동에는 함께해야 했습니다. 금요일과 토요일의 축제를 위해서, 모든 신학생이 수요일 오후, 금요일 오후, 토요일 오전, 주일 오전, 총 네 번의 노동 시간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축제를 준비하고 진행하고 정리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여러 신학생에게 개인적으로 물어보았습니다.
“축제 준비하는 거 힘들지 않았어?”
모든 신학생이 너무 바쁘고 힘들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어서 물었습니다.
“이렇게 힘든데 내후년에도 또 하고 싶어?”
재미있게도, 힘드니까 축제를 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또 하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조금은 이상하게 들리는 답변입니다. 현실적으로 보아 너무 힘든 상황이 펼쳐질 것이 뻔한데, 그래도 신학생들은 다시 축제를 열고 싶어 합니다. 어찌 보면, 미련스럽게 들리는 답변입니다. 왜 이들은 이 힘든 일을 다시 하려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마 남학생들만 가득한 신학교에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좋아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한적하기만 한 산속의 신학교에 찾아온 사람들의 북적거림이 반가워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신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저는 답을 찾았습니다.
“이들은 기꺼이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로구나!”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나의 시간, 나의 에너지, 나의 마음을 내어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만난 신학생들은 기꺼이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매일 성찬례를 체험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결국 작은 밀떡이 되어 ‘먹히기 위해’ 세상에 내려오셨음을 만나는 이들입니다.
성찬의 식탁에서 날마다 배불리 먹는 이들에게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내어 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베네딕토 성인께서 ‘수도 규칙’에서 강조하셨던 ‘환대의 정신’이 어쩌면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학생들의 마음에 담긴 이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 그 사랑은 결국 ‘타인을 향한 개방성’을 뜻하니까요.
다시 축제를 열고 싶다는 마음은, 결국 누군가를 맞이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와 마음을 쏟을 각오를 뜻합니다. 이는 결국 나 자신을 기꺼이 내어 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이며, 더 나아가 ‘진정으로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로 성장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겠지요. 때로는 한없이 어리고 나약해 보이기도 하지만, 신학생들의 마음속에는 사랑을 향한 씨앗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자신을 선사하고자 하는 마음’의 씨앗이 이미 싹을 틔워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소신학교 출신 신부님들의 시대와 제가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다니던 때와 지금의 신학교 사이에도 적지 않은 차이가 있습니다. 아마 오늘날의 신학교와 10년 뒤의 신학교 상황에도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신학생들의 눈을 바라보며 희망을 가집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상황이 바뀌어도, 예수님을 닮아 자신을 내어 주려는 젊은이들이 있다면, 희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