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미 알듯이,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8 참조). 그리고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셨고, 사랑의 성령을 보내 주신 것처럼, 사랑의 속성은 혼자 머무르지 않고 소통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머물기를 원하시며, 우리와 소통하시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각자를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느님과의 친교 속에서 이루어지며,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를 통해 우리는 거룩한 진리를 조금씩 알아가고 체험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지속적인 사랑의 소통을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하느님께 주도권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것도 하느님이며, 우리를 먼저 선택하여 부르신 것도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도 그 방향도 모두 하느님의 몫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도 생활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뜻대로 하는 것이 더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가 되어야 하며,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데레사 성녀가 ‘영혼의 성’에서 말하는 기도란?
우리 신앙생활에서 기도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500년 전, 예수의 데레사 성녀도 기도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수도원 자매들의 영성 생활을 돕기 위해 고해 사제의 명령으로 《영혼의 성》을 저술합니다. 이는 데레사 성녀가 마지막으로 저술한 책이며, 그녀의 영성을 종합한 작품입니다.
《영혼의 성》에서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인간의 영혼을 맑은 수정으로 이루어진 궁전이라고 하며 그 가운데에는 하느님께서 머무신다고 설명합니다. 이 비유를 통해 인간 영혼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데레사 성녀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 즉 영혼의 성에는 일곱 개의 방이 있습니다. 기도를 시작하는 이는 첫 번째 방의 상태이고, 인간의 노력인 기도와 수덕 생활에 하느님의 은총이 주어질 때 점차 진보하여 주님께서 머무시는 일곱 번째 방의 상태에 들어가 주님과 일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성녀는 주님께서 계시는 자신의 영혼 중심에 시선을 두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다시 말해, 멀리서 주님을 찾기보다는 기도 생활과 교회 전례, 성사를 통해 각자 자신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기도와 침묵을 통해 주님과 대화하라는 성녀의 초대입니다.
인간 영혼에 있는 일곱 개의 궁방
《영혼의 성》에서 묘사한 각 궁방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궁방에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부르셨지만, 인간은 죄의 상태에 있으며 양심 성찰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아야 함을 설명합니다. 인간의 영혼이 수정으로 된 아름다운 궁전이라고 해도, 해로운 벌레와 진흙에 덮여 있다면 그 빛을 잃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궁방에서는 기도를 시작한 이들에게 큰 인내가 필요하며 결단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이 상태에 있는 영혼은 이미 기도를 시작한 이들이며 하느님을 만나고자 하지만, 아직 결정적인 결심이 되어 있지 않은 영혼으로 묘사합니다.
셋째 궁방에서는 기도와 극기를 통해 영혼이 높은 상태에 올랐다고 해도 안심해서는 안 되며, 꾸준한 기도 중에 메마름이 오더라도 인내해야 함을 설명합니다. 이 상태에 있는 영혼은 큰 노력과 결심으로 의지를 하느님께 맡긴 이들입니다.
넷째 궁방에서는 능동적인 기도에서 점차 하느님의 은총에 내어 맡기는 수동적인 기도로 넘어갑니다. 이 상태에 있는 영혼은 점차 기도를 통해 기쁨과 맛을 느끼며 인간의 감각을 집중하여 하느님을 찾는 거둠기도를 체험합니다.
다섯째 궁방에서는 조금씩 하느님과의 합일에 가까이 가며 인간의 지성과 기억이 점점 작용을 멈추고 의지만이 하느님을 향함으로써 점차 하느님과의 일치를 예비하는 상태입니다. 특별히 이 상태에서 데레사 성녀는 애벌레가 오랜 기간 인내하고 부화하여 나비가 되는 비유를 활용하여 이 상태를 설명합니다.
여섯째 궁방은 영적 약혼의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 황홀경, 탈혼 등의 신비 체험을 많이 하게 되며, 데레사 성녀는 《영혼의 성》의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이 상태를 설명합니다. 하지만 아직 주님과의 완전한 일치의 상태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일곱 번째 궁방은 영적 혼인의 상태입니다. 여기에서 성녀는 신비 체험을 통하여 삼위일체 하느님의 진리를 알게 되는 큰 은총을 얻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영혼과 사귀시고, 말씀하시고, 성경을 깨우치게 하십니다. 여기에서 데레사 성녀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예를 들며, 영혼이 아무리 높은 단계에 있더라도 실천과 기도가 항상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완덕을 향하여, 기도로 시작되고 완성되는 신앙생활
기도에 대한 성녀의 가르침은 완덕의 모범인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성령의 인도로 덕을 닦는 수덕적인 측면과,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입된 관상과 이를 통한 일치를 말하는 신비적인 측면을 우리에게 설명해 줍니다. 다시 말해 우리 신앙인은 언제나 신비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열려 있고, 이는 우리의 수덕적인 노력으로써 시작됨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지 않으면 시작할 수조차 없으며,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어떤 은총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삶을 통해 희망을 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존재이며,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의 노력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교회의 전례와 성사를 통해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고, 침묵과 기도를 통해 주님과 자주 대화한다면, 기도의 맛을 점점 더 체험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도 데레사 성녀처럼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