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에 살며 배운 것
저는 지금 대전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생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신학생들을 양성하는 소임을 맡아 신학교에서 지내고 있지만, 저 역시 신학교에서 양성을 받던 시절이 있었지요. 사제품을 받고 나서 이런저런 경험을 하며 조금은 변화된 부분도 있겠지만, 제가 사제로 살아가는 기본적인 틀은 대부분 그 시절에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 저는 과연 신학교에서 무엇을 배운 것일까요?
신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느냐는 질문에 한마디로 대답을 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신학교는 단순히 신학을 공부하는 장소가 아니지요. 신학교에서는 학문을 하는 방법, 철학과 신학의 여러 과목들을 배우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도하는 방법, 묵상하는 방법, 동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타인에 대한 예의, 다양한 업무를 주어진 시간 안에 처리하는 방법 등 정말 다양한 것들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신학교에서 배운 것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제게 질문한다면, 저는 제가 ‘신학교에서 만났던 주방 수녀님들의 삶이 주는 아름다움’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수녀님들의 겸손의 삶
제가 처음으로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1학년들이 사는 기숙사인 영성관의 주방 책임자는 회색 수도복을 단정하게 입으신 수녀님이셨습니다. 저희 신입생들을 보시면 항상 환한 미소를 띠셨던 프란치스카 수녀님, 수녀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저는 ‘한국 순교복자 빨마수녀회’라는 수도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만났던 본당의 수녀님들처럼 거룩해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주방의 아낙네와 같은 모습, 그것이 제게 있어서 빨마회 수녀님의 첫인상이었습니다.
수녀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빨마회의 영성에 대해서, 빨마회 수녀님들께서 맡고 계신 소임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빨마회 수녀님들은 대부분 신학교나 공동 사제관의 주방을 맡고 계신다는 이야기는 당시의 제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습니다. 사제들을 위해서, 사제직을 향해 나아가는 성소자들을 위해서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 온 삶을 바친 당신들의 소명이라니! 그런 방식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수녀님들은 신학생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주시려고, 조금이라도 더 맛난 것을 먹이시려고 항상 애쓰셨습니다. 이제 막 가정으로부터 벗어난 젊은이들에게 수녀님들의 품은 마치 따스한 어머니의 품과도 같았습니다. 한창때의 저희는 정말 무섭게 먹어 댔고, 수녀님들께선 그런 저희의 먹성을 항상 이해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먹는 것만 봐도 나는 배가 부르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마음이 바로 수녀님들의 마음이 아니셨을까요. 실제로 저희는 신학교에서 지내는 동안 수녀님을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느꼈고, 그 사랑을 먹으며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신학교에 입학한 첫해에만 살이 10킬로그램 쪘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런 인간적인 따스함을 넘어서서 수녀님들은 저희 신학생들에게 더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건 바로 수녀님들의 겸손입니다. 수녀님들은 신학교에서 결코 드러나는 법이 없었습니다. 1학년 기숙사인 영성관에서도 그랬고, 대신학원에서도 그랬듯이, 수녀님들은 항상 회색 수도복에 앞치마를 두르고 조용히 주방일을 하셨습니다. 때로 짬이 나면 산책이나 등산을 가시는 것 말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신학교 주방에서 머무셨습니다.
물론 수녀님들께서는 당신들의 삶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씀하시는 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녀님들을 보면서 항상 ‘어떻게 저렇게 사실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그 물음을 사제직을 향해 나아가는 신학교 기간 내내 하나의 화두처럼 저의 마음속에 품고 살았습니다. 제가 느낀 수녀님들의 삶은 마치 예수님을 닮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마구간의 구유 위에 강생하신 아기 예수님, 그리고 이어지는 나자렛에서의 어린 시절,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감추어진 신비 속에서 탄생하셨고, 머물러 계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셨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가장 비천한 장소인 마구간의 구유 위에 오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지극한 겸손의 신비가 바로 수녀님들의 삶 안에서 은은하게 드러나는 빛처럼 주위를 비추고 있음을, 신학교에서 살아가는 내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면형무아와 점성의 영성
사실 사제 서품을 받고 나서 한참 뒤에야 한국 순교복자 수도 공동체의 주요 영성이 ‘면형무아麵形無我’와 ‘점성點性의 영성’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밀떡 안에 당신의 인성을 철저하게 감추신 예수님처럼 당신 자신을 철저하게 감추는 삶, 이처럼 부단히 자신을 비우려 노력하는 자기무화自己無化의 삶 안에서 자아는 끝없이 작아지지요. 이처럼 끝없이 작아진 자아가 모든 선과 면, 부피와 모양을 잃고 티끌과도 같은 한 점처럼 되어 버리는 것, 이러한 점성點性의 영성을 수녀님들께서는 묵묵히 살아 내고 계셨던 것입니다.
세상은 저희에게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더 많은 노력을 하길 바라고, 더 많은 능력을 가지길 바라고, 더 많은 소유를, 더 많은 권력을, 더 많은 성취를 요구합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 버린 것 같은 요즈음입니다. 하지만 그런 세상 속에서 수녀님들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특별하게 대단한 것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이라면, 길섶에 핀 들꽃처럼 살아가도 괜찮다.’고 당신 삶을 통해 속삭이고 계셨습니다. 아니, 오늘도 여전히 당신들의 온몸을 통해 속삭이고 계십니다.
그런 수녀님들과 함께 살았던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수녀님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신학생들은, 또 세상 사람들은 지금의 저를 ‘교수 신부’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저보다 신학생들에게 더 큰 가르침을 주는 것은, 오늘도 주방에서 묵묵히 밥을 짓고 계시는 수녀님들의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신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신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지적 양성은 교수 신부님들을 통해서, 또 신학 서적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인성 양성은 동료들과의 공동생활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제게 ‘사제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가장 분명히 알려주신 분들은 바로 빨마회 수녀님들이셨습니다.
물론 수녀님들이 완벽한 존재, 혹은 성인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수녀님들도 나름의 인간적인 나약함을 안고 계시고, 때로는 자신의 부족함에 몸부림치는 일도 없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녀님들께서 택하신 삶의 방향성,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주방이 당신의 성소’라는 확고한 신념은 언제나 저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더 낮은 곳을 향하라는, 더 알아주지 않는 곳을 향하라는, 더 자신을 비워 내고 하느님을 채우라는 수녀님들의 삶의 외침이 오늘도 저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더 높을 곳을 향하는, 여전히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저의 마음에도 여전히 수녀님들의 외침이 와닿는 것은, 아기 예수님께서 저희를 가장 낮은 곳에서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