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젠가 “어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어른은 어떤 존재일까?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일까?
나이가 많으면 누구나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나이가 적으면 그 누구도 어른이 될 수 없을까?
한 사람이 어른이 되기 위해 때로는 나이가 필요조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이’, 그 자체가 어른이 되기 위한 충분조건이라고 볼 수는 없다.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나이만 많고 어른답지 못한 사람, 나이가 적어도 어른 같은 사람이 이를 증명해 준다.
주님께서 바라보시는 ‘어른’은 어떤 사람일까. 그분께 성인成人은 바로 ‘성인聖人’이 아닐까. 성인saint은 ‘멀리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좀이 슬고, 도둑의 표적이 되는 눈앞의 곳간이 아닌, ‘저 멀리’ 하늘에 있는 영원한 곳간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마태 6,19-20; 루카 12,13-21 참조).
눈앞의 이익과 쾌락이 아닌, 하느님 안에서의 영원한 행복과 삶을 바라보며 그 높은 곳을 향해 투신하는 사람. 그래서 눈앞의 것만을 ‘보고’ 좇는 사람이 아닌, 더 멀리 ‘볼’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빛을 바라보는 시선
이처럼 본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외적 존재를 인식하는 감각적 차원을 넘어 우리가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를 결정짓는 심오한 행위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살펴볼 ‘빛을 되찾은 태생 소경’ 이야기는 주님 앞에서 진정한 ‘봄see’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
태생 소경은 태어나 한 번도 앞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태생 소경은 자선 행위를 통해 삶을 연명할 수 있었다. 율법에는 사회적 약자가 생계를 이어 나갈 수 있게 돕는 자선 행위에 대한 방안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의 삶은 우리가 이미 만난 모든 이들 못지않게 철저한 고립과 절망 속에 있었을 것이다. 깊고 짙은 어둠 속에 있던 태생 소경이 어떻게 오늘 예수님을 증언하는 참된 제자가 될 수 있었을까?
태생 소경 이야기는 요한 복음 9장에 담겨 있다. 당시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바리사이들에게 붙잡힌 여인을 용서하셨다(8,2-11). 그분께서는 이름 모를 성전에서 한동안 당신이 ‘빛’(8,12-20)이자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8,21-30)이라고 밝히시며 아브라함과의 관계(8,31-59)에 대해 가르치셨다.
이 이름 모를 성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7장 25절에서 예루살렘이 언급된 이후, 예수님께서 잠깐 올리브산에 올라가신 것을 제외하면(8,1)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셨다는 언급이 없기에 아마도 그분께서는 예루살렘에 계셨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말을 마무리한 뒤 성전 밖으로 나오셨고, 그곳에서 태생 소경을 만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소경이 만난 장소는 아마도 예루살렘 성전 근처 주랑으로, 당시 이곳은 소경이 앉아서 자선 행위를 청하기에 여러모로 적합한 장소였다.
죄가 아닌 기적의 표징을 위해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크게 일곱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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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중심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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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9,1-7 |
예수님과 소경의 조우, 그리고 치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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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9,8-12 |
이웃 사람들의 반응과 소경과의 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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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9,13-17 |
바리사이들의 개입, 바리사이들이 소경을 심문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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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9,18-23 |
유다인들의 불신, 유다인들이 소경의 부모를 심문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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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9,24-34 |
소경에 대한 바리사이들의 2차 심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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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9,35-38 |
예수님과 소경의 두 번째 조우, 소경의 믿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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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9,39-41 |
예수님의 바리사이에 대한 응답 |
도표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야기는 예수님, 소경, 소경의 부모, 이웃 사람들, 바리사이(유다인)들이 서로 다양한 곳에서 등장해 태생 소경의 치유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소경의 변화 과정과 더불어, 예수님의 표징 앞에서 대립적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의 반응에 주목할 수 있다. 어느 날 소경은 예수님을 만나 실로암으로 가서 눈을 씻으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눈을 뜨게 되고, 이에 이웃 사람들은 의혹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 반응은 신앙 고백을 주저하는 부모, 자신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각종 위협과 압박을 가하는 바리사이들 등 다양하다.
보통의 기적 이야기는 치유를 간절히 원하는 환자가 여러 우여곡절과 어려움 끝에 주님을 만나 마침내 치유가 이루어지고, 이 기적이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흥미롭게도 정반대의 구성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표징이 먼저 일어났고, 이 표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우리에게 표징 자체보다 그에 대한 해석을 전달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도입부를 보면, 이 이야기가 앞으로 어떤 메시지를 다룰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소경을 처음으로 마주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하는 장면이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요한 9,2)
당시 유다인들은 질병을 죄의 결과라고 이해했다. 이로 인해 환자들은 저주받은 이로 취급받기도 했다. 바리사이들의 발언이 이러한 인식을 뒷받침한다.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 (요한 9,34)
사람이 노쇠하며 찾아오는 질병을 죄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면, 장애를 갖고 태어난 이들의 병은 어떻게 이해할까? 제자들의 물음처럼 그 부모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인가?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신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 9,3-5)
니코데모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 빛과 어둠, 낮과 밤의 상징이 여기까지 이어지고 있다(니코데모 이야기 참조). 이 신비로운 말씀을 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밤, 이제 곧 찾아올 밤은 예수님의 수난이 시작되는 그 밤으로 보인다. 아직 그 밤이 찾아오기 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하셔야만 한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요한 1,9-10)
그분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다. 그러나 그분을 바라보는 세상의 반응은 그분에 대해 점차 깨달아 가는 모습과 그분을 알아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불신 안에 머물길 원하는 모습, 두 가지로 갈린다. 이 상반된 반응은 소경의 치유 표징 앞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이가 아닌가?”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이오.”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니오, 그와 닮은 사람이오.”하였다. (요한 9,8-9)
이 논쟁은 사람들이 평소에 그에게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씁쓸한 장면이면서도, 근본적으로는 각자가 과연 예수님의 표징을 믿고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이 상반된 반응은 이후에 바리사이들에게서도 나타난다.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몇몇은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고, 어떤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일으킬 수 있겠소?” 하여, 그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다. (요한 9,16)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주님의 표징을 목격하기를 원하면서도, 막상 이 표징을 자신의 믿음의 자양분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굼뜨다. 이 수많은 사람들의 의심과 의혹 한가운데에서, 이 표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백하는 이는 눈을 뜬 소경뿐이다. 그는 자신 앞에서 논쟁하고 있는 이웃 사람들을 향해 명확히 말한다.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요한 9,9)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잡으러 온 군사들에게 하신 말씀과 같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다.”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 18,5)
우리말 성경은 이를 다르게 번역했지만, 그리스어 원문은 모두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라고 서술한다. 이미 소경의 마음에서 주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의 씨앗이 자라나기 시작한 것일까?
*다음 화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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