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주님을 만난 이들: 요한 복음 속 이야기> 시리즈의 아티클로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어둠을 극복하는 힘'에서 이어집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제자는 그분의 어머니께 걱정스러운 말투로 묻는다.
“아직 아무것도 안 먹고 있습니까.”
“마리아, 한 숟가락이라도 떠. 어머니가 너무 걱정하신다.”
그분께서 제자에게 어머니를 맡기신 이후로, 제자는 나보다 더 많이 어머니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애끓는 마음을 견딜 수 없었다. 그분께서 떠난 이후로 이틀 동안 한숨도 못 잤다. 그분이 너무 보고 싶었다. 잔혹하기 그지없는 저 로마인들은 대사제들 눈치를 보느라 그분의 시신 곁으로도 가지 못하게 했다. 그분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실까? 아직 어둑한 이른 아침이지만 나는 말없이 그분을 모신 무덤을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어디 가는 거야, 마리아,”
“……”
“아무 말도 안 할 작정이야? 밥이라도 먹고 가!”
나는 어머니와 잠시 눈을 마주쳤다. 그분의 시선에 슬픔과 애정이 서려 있는 듯했다. 말없이 집을 나섰다. 아직 차가운 밤공기가 가라앉지 않았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그날 골고타에 겪은 일을 생각하면 오히려 따스하다. 두건과 어깨천을 여미고 말없이 그분을 찾아 나섰다.
앞뒤 재지 않고 무턱대고 나왔지만 막막하기만 했다. 그분은 지금 어디 계실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이미 이곳저곳 맞은 상처로 피투성이가 된 여자를 가운데 두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살기 어린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분은 전혀 주눅 들지 않으시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바닥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여자는 삶의 모든 희망을 저버린 듯 엎드려 바닥만을 보고 있었다. 이윽고 나이 먹은 노인부터 시작하여 하나둘 떠나기 시작하더니, 그분과 그 여자 단둘만이 남았다.
나는 말없이 담벽 뒤에 숨어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뒤이어 제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여인이 몸을 일으켜 세웠고, 그들은 그녀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나는 모두가 떠난 자리에 홀로 서서 그분이 땅에 쓰신 글자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아직 그 글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던 그 글이 갑자기 떠올랐다.
“풀밭……? 정원……?”
무슨 정원을 말씀하신 것일까? 이 황량한 곳에 풀이 어디 있다는 말이지? 나는 그분이 나를 치유해 주셨던 곳,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에 있는(요한 18,2) 그 정원이 생각났다. 직감적으로 그분이 그곳에 계실 것이라는 느낌이 들자 나는 머리에 있는 두건이 떨어진 것도 잊은 채 그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요한 4,28 참조). 얼마나 뛰었을까, 골짜기에 다다르자 험한 길이 나오기 시작했다.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지만 아픔을 더는 느낄 수 없었다. 피를 닦으려고 두건을 벗으려는데, 그제야 두건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는 곳에서 바리사이로 보이는 두 명의 유다인과 종들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놀란 마음에 바위 아래로 몸을 숨겨 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데, 낯이 익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들이 가까이에서 오자, 기억이 선명해졌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최고 의회에서 심문을 받고 계실 때 쫓겨난 두 사람이었다.
예수님께서 최고 의회에 압송되어 들어가셨는데, 그분을 따르는 여인들은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나와 어머니, 제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분을 따라 회의장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최고 의회에 매수된 병사는 나를 막았다. 나는 지나가던 로마 병사에게 도움을 청해 보았지만 그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밖에서 하염없이 그분을 기다렸다. 그런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최고 의회에서 두 명의 바리사이가 밖으로 쫓겨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어떤 일인지 싶어 그들이 눈치채지 않게 그들 옆에 가까이 다가섰다.
“자네까지 그렇게 나설 필요가 있었는가, 자네는 아직 젊지 않은가.”
“……”
“지금 저 안에 계신 분이 혹시 자네가 저번에 얘기해준 그분이신가?”
“제가 그분을 찾아간 그날도 오늘처럼 추운 밤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방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는 아수라장 가운데에서도, 신기하게도 이 두 사람의 작은 목소리는 내 귓가에 또렷하게 들렸다.
나는 서둘러 이들에게 겁 없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분을 어디에 모신거죠?”
그들은 놀랐는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말씀해 주세요, 어디에 계시지요?”
이윽고 둘 중 한 사람이 나에게 말없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을 말씀드렸다. 꿈이었던 것 같다. 꿈이었을까?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했다. 어머니께서는 말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시고 따스한 빵을 구워 나에게 차려주셨다.
“이제는 먹을 수 있지?”
나는 눈물을 삼키며 빵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차가운 저녁공기를 맞으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어제는 그토록 견디기 쉬운 추위였지만 오늘은 왠지 매섭게 느껴졌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길. 얼마나 걸었을까,
‘기댈 곳이 있을까?'
어렸을 때부터 기대어 쉬었던 무화과나무로 향했는데, 가지에 걸린 낯익은 천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어제 잃어버린 그 두건이었다. 다리에 난 상처와 흐르는 눈물을 닦으려고 두건을 서둘러 집어 들었다.
그분의 얼굴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 이인섭 신부님이 풀어 주는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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