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그리스도교 철학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용어가 처음 생겼던 초기 교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교부들이 철학과 종교, 신학과 철학, 성경과 철학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아보고, 교부들이 생각했던 철학이 계시 진리와 관련해서 어떤 내용을 핵심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예수를 직접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었던 제자들의 증언을 비롯하여 바오로의 서간들이 글로 남겨지면서 복음을 포함한 신약 성경이 성립되었다. 이후에 소위 정경이라고 불리는 성경의 목록이 확정되면서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교의 계시의 원천이 되었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기 위해서 성경을 해석하고 주해를 다는 것이 이후 그리스도교 공동체에는 중요한 과제로 남게 된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성경에 대한 이해를 소위 ‘철학’과 분리해서 이해하지 않았다. 당시에 그리스도교가 터를 잡고 있던 삶의 자리는 일차적으로는 당연히 이스라엘 민족의 히브리적 사상이었다. 그러나 복음 선포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주변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상이었던 ‘그리스 철학’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한편으로는 경쟁자 관계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계시를 이방민족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함으로써, 보편 계시로 만들 수 있는 중요한 도구 역할을 하게 된다. 심지어 초기 교부들은 성경의 계시를 ‘철학적’으로 이해함으로써 그리스도교 계시의 본질이 ‘그리스도교 철학’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스 철학의 중요한 사상들을 교부들은 그리스도교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스 철학 자체에 이미 하느님의 계시가 씨앗처럼 들어 있어서 이 철학이 그리스도교 철학을 준비하고 꽃피울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특히 13세기에 신학과 철학을 분리시키면서 ‘그리스도교 철학’이라는 용어를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후에 20세기에 들어서면서야 비로소 ‘그리스도교 철학’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특히 질송과 마리탱 같은 학자들은 초기 교부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스도교 계시의 내용들을 철학적으로 통합할 수 있다고 보았기에 그리스도교 철학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요컨대 오늘날 그리스도교 철학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용어가 처음 생겼던 초기 교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교부들이 철학과 종교, 신학과 철학, 성경과 철학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아보고, 교부들이 생각했던 철학이 계시 진리와 관련해서 어떤 내용을 핵심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 이 콘텐츠는 《그리스도교 철학: 주체성의 발견》 일부를 발췌 및 재구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