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실의 시대, ‘에메트’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 이야기

탈진실의 시대, ‘에메트’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히브리어 ‘에메트’로 읽는 ‘진실’의 의미

2026. 0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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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성경의 단어들 시리즈의 아티클로 <세 개의 열매를 맺는 작은 씨앗, ‘헤세드’>에서 이어집니다. 👉 전편 읽기

 


 

 🔍 10초 안에 읽는 핵심 포인트

 

✔ 히브리어 에메트는 시작부터 끝까지 한결같고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진실을 뜻한다.

✔ 참된 진실은 때로 불편하더라도 삶과 관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

✔ 진실은 말뿐만이 아니라 말과 행동의 일치, 신앙과 삶의 일치를 통해 드러난다.

 


 

가짜 뉴스와 딥페이크(deepfake)가 넘쳐나는 오늘날, 혹자는 우리 시대를 일컬어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감정과 개인적 신념이 객관적 사실보다 더 강하게 여론을 형성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진실이 유통되고, ‘팩트 체크는 무의미해지며,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사실 이것이 21세기의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나치 독일은 거짓을 반복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선전을 체계적으로 활용하여 한 사회 전체의 판단을 흐렸다. 더욱 섬뜩한 것은 이러한 선전 방식이 당시에 실제로 효과를 거두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한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알고리즘과 소셜 미디어는 그 원리를 더욱 정교하고 광범위하게 구현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정치적 진영에 따라 같은 뉴스가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자극적인 이야기일수록 더 빠르게 퍼진다. 교회도, 개인의 영성 생활도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듣고 싶은 말씀만 골라 듣고 불편한 진실 앞에서는 이내 귀를 닫는다.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기 어려워진 이 시대에 과연 성경이 말하는 진실이란 무엇일까? 먼저 히브리어 에메트(אֱמֶת)의 어원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에메트, 글자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에메트는 세 글자로 이루어진다. 알레프(א) (מ) 타우(ת). 이 세 글자는 각각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글자, 가운데 글자, 마지막 글자다. 랍비 전통에서는 이것을 두고 이렇게 해석했다. 에메트는 알파벳의 처음과 끝과 가운데를 품는다. 이처럼 진실은 어느 한 부분에 있지 않다. 그것은 전부다.”

 

그렇다. 시작부터 끝까지 참인 것, 일관되고 완전하며 지속적인 것.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실, 에메트다. 어근을 보면 그 의미는 더욱 선명해진다. 에메트는 우리가 기도 끝에 말하는 단어인 아멘(אָמֵן)과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동족어이다. 아멘은 우리가 알다시피 확고함, 신뢰할 수 있음을 뜻한다

 

진실 없이는 진정한 관계를 세울 수 없습니다. 모호하고 이중적인 언어로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는 가상 세계가 무분별하게 지배하는 곳에서는, 소통의 객관적이고 실재적인 토대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레오 14세 교황, 성좌 주재 외교단에게 행한 연설, 2025516)

 

이 말씀은 히브리어 에메트의 본질을 현대의 언어로 정확히 짚어 낸다. 진실이 없는 곳에서는 관계 자체가 설 땅을 잃는다. ‘아멘처럼, 우리가 완전히 믿고 기댈 수 있는 진실, 그것이 바로 에메트다.

 


 

너희는 자루에 크고 작은 두 개의 저울추를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견고함이 바로 진실의 첫 번째 조건이라는 점이다. 상황에 따라, 내 이익에 따라 달라지는 이중 잣대는 결코 진리가 아닐 뿐만 아니라 진리를 거스르는 악이다.

 

너희는 자루에 크고 작은 두 개의 저울추를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집에 크고 작은 두 개의 되를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 이런 일을 하는 자, 곧 불의를 저지르는 자는 모두 주 너희 하느님께서 역겨워하신다.”(신명 25,1314.16)

 

또한 진실은 소위 우리의 기억과 판단에 의존해서 이루어진 팩트 체크와도 다르다. 그것은 인식론적인 사실이 아니라 실천적이며 존재론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사실과 일치하는 정보가 진실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유한한 인간에게 완전한 객관성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 점에서 우리가 사실이라 믿는 것 역시 주관적인 해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진리란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에메트가 던지는 불편한 진실, 그리고 사랑

 

레오 14세 교황은 즉위 직후 언론인들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마태 5,9)이라는 산상 수훈의 말씀을 들어 이렇게 말했다.

 

불의와의 타협과 공격적인 언어, 경쟁의 문화를 멀리하고, 진리를 찾는 일을 겸손한 사랑과 분리하지 않는 새로운 소통 방식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합니다.”(레오 14세 교황, 언론 종사자들에게 행한 연설, 2025512)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진리, 곧 진실이란 차갑고 딱딱한 사실들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인격으로, 그분께서 지니셨던 겸손한 마음(필리 2,35 참조)으로, 그리고 신앙 안에서 우리가 그분, 나 자신, 세상과 맺는 관계로 수렴한다. 그러므로 그분을 만난다는 것은 곧 우리 자신에 대한 살아 있는 진실 앞에 서는 것이다.

 

이것이 탈진실의 시대에 에메트가 던지는 도전이다. 우리는 종종 진실을 내 편이 되는 정보로 오인하고는 한다.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진실이고, 나를 반박하는 것은 일단 가짜 뉴스라고 치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에메트는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이되, 동시에 나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불편함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이들을 반드시 더 나은 곳으로 이끌어 준다.

 


 

내 생각이 진실의 자리를 차지할 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내 생각이 가장 강력한 권위를 지닌 것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듯 보인다. “나는 이렇게 느낀다.”는 말은 거의 반박 불가능한 지위를 얻었다. 물론 이것이 개인의 존엄과 감정을 존중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이 진실을 대체할 때 문제가 생긴다.

 

교회 안에서도 이 흐름은 비껴 가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복음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때, 즉 말씀이 삶의 태도나 방향을 바꾸라고 요청할 때 그것은 이상일 뿐, 내 실제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라며 성급히 단정해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에덴동산의 뱀이 하와에게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세 3,45)라고 속삭인 것이 인류 역사 최초의 가짜 뉴스였다면, 그 가짜 뉴스의 유혹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하느님의 진리 밖에서 너만의 자유를 찾으라고, 그러면 하느님처럼되고, “결코 죽지 않으리라고 속삭이는 것, 이것이 우리 시대의 유혹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진리의 울타리를 벗어날 때 우리는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에도 기댈 수 없는 불안의 굴레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유한한 인간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실의 버팀목 없이 어디에도 발을 딛고 설 수 없기 때문이다.

 


 

진실을 살아가다

 

시편 8511절은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난다고 노래한다. 이 만남이 중요하다. “나는 팩트를 말하는 거야.”, “나는 할 말은 하는 사람이야.”라는 식의 태도는 솔직함의 표현이 아니라, 자신의 정서적 미성숙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단적인 표지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렇게 구축한 자신의 판단을 마치 보편적 진리인 양 휘두르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는 기만이고 타인에게는 폭력이다.

 

진실은 자애, 곧 헤세드와 만날 때 비로소 생명을 살리고 상처를 치유하는 약이 된다. 에페소서 415절은 이 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이 구절의 그리스어 원문 ‘ἀληθεύοντες ν γάπῃ’에는 동사 알레테우오(ἀληθεύω)’의 분사형이 사용되었다. 이 구절은 직역하면 사랑 안에서 진실되게 행동하는 것”,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잠언 1222절은 이 점을 더욱 분명히 한다.

 

거짓된 입술은 주님께서 역겨워하시고, 진실을 행하는 이는 주님께서 기뻐하신다.”

 

누군가 진실한지는 단지 입술로 말하는것이 아니라 행동하는것에서 드러난다. , 진실은 입술에서 나오기 전에 마음속으로부터 온다.

 

내면과 외면이 일치하는 것,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실을 살아가는 이의 자세일 것이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묻는다.

 

그대는 지금 무엇을 진실이라 부르고 있는가?’

그대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는 진리 위에 서 있는가?’

그대는 단지 말이 아닌, 마음으로부터, 삶으로부터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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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한국순교복자 수녀회 소속으로 현재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있습니다. 성경 속 살아계신 하느님의 음성이 인간 언어의 희미한 잡음을 넘어 선명하게 울리도록, 마치 오래된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듯 조심스러운 손길과 눈길로 성경을 읽고, 되새기며, 이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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