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AI 시대, 인간다움을 묻다> 시리즈의 아티클로 ‘AI 시대의 마법사와 제자’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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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가 점점 똑똑해지는 시대, 우리는 기계보다 뛰어난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을까요?
👨💻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지혜와 공감, 성찰의 힘이 왜 중요한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
AI에 대한 교회의 긍정적 시선
종종 AI 윤리에 대해 강의하다 보면 의외로 “AI를 사용해도 되나요?”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마치 교회가 과학 기술과 대척점에 있고 이를 무조건 부정한다는 오해가 짙게 깔린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과 이성의 균형과 필요성을 모두 인식하는 교회가 무조건 과학 기술을 부정할 리가 없다. 당연히 AI 기술에서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이 기술의 놀라운 잠재력과 능력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대표적으로 202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메시지가 있다. 교황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인공지능과 머신 러닝의 발전은 인류의 미래에 긍정적으로 공헌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우리는 이를 묵살할 순 없다.”
“AI는 사회적 공존과 개인의 복지를 개선하고 인간의 역량을 강화하며, 수행할 수 있는 많은 작업을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가능하게 하거나 이를 촉진하는 데 있어 엄청난 잠재력을 제공한다.”
이로써 교회는 AI가 인류에 봉사하고 공동의 이익에 이바지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으며 과학과 기술이 실질적으로 인간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즉 현대 과학 기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AI 기술은 인간이 경험하는 혁신적인 변화의 중심에 있다. 또한 이러한 AI 기술이 개인과 사회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교회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를 향한 부정적 시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긍정적 시선만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설사 AI 기술이 인간 세계 안에서 획기적인 변화의 중심에 있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혁신이 개인 및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음을 교회는 이야기한다.
특히 AI가 인간의 활동과 결정을 대신하며,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까지 바꾸고 있음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시선은 무조건적인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반드시 기울여야 한다는 경고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행동은 실제 인간의 판단과 자동화된 수학적 계산이 만나는 지점에 놓여 있다. 대상을 이해하고 결과를 예측하는 데 있어 AI는 확률과 견해를 근거로 답을 단정 짓는다. 혹은 사용자의 견해에 무조건 동조함으로써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내놓는다. 그 결과 사용자는 이를 맹신하게 되고, 성찰의 기회를 잃어버린 채 판단을 의존하게 된다. 나아가 인간의 자유의지는 점차 상실되고 행동을 결정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점점 더 모호해진다.
지능이란 무엇인가
2025년 1월 교황청에서 발표한 <옛것과 새것Antiqua et Nova>에서는 특별히 인간의 지능과 기계의 지능에 대해 상당한 부분을 할애하며 현재 AI 기술로 인해 잊혀지는 시대적 사고를 성찰한다. 이 성찰의 핵심에는 기계의 지능이 결코 인간의 지능보다 뛰어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계의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한다는 착각에 빠진 현대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렇다면 과연 지능이란 무엇인가? 대체될 수 없는 인간의 지능은 무엇이며 현대 인류가 환호하는 기계의 지능은 무엇인가?
인간의 지능과 기계의 지능에는 물론 공통적인 사항이 있다. 대표적으로 인지 능력, 논리적 사고, 문제 해결 능력, 학습 능력, 계산 능력, 기억력, 정보 처리 능력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인간의 지능에도 기계의 지능에도 있다. 심지어 기계가 더욱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기계의 기억력과 수학적 계산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지능이 기계의 지능보다 뛰어난 이유는 기계가 결코 발휘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표적으로 본질을 이해하는 능력, 사유 능력, 윤리적 사고와 논리적 탐구 능력, 실질적 공감 능력, 새로운 개념을 형성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들은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이해 능력이며 단순한 지식 정보를 넘어 인간 활동의 모든 측면을 형성하고 관통한다.
이를테면 지금 내 책상 위에 놓인 만년필을 생각해 보자. AI에게 이 만년필에 관해 묻는다면, 노란색 만년필이며 언제 어느 회사에서 만들어졌는지, 수명이 언제쯤 다할 것인지 등을 답할 것이다. 그러나 ‘나’라는 인간은 이를 다르게 인식한다.
이 만년필은 예전에 내가 있던 본당의 복사단 친구들이 선물해 준 것으로 이것을 볼 때마다 함께한 소중한 시간이 펼쳐진다. 나의 이름과 본명이 새겨진 이 만년필은 그다지 값비싼 것은 아니고 어느덧 수명을 다해 가고 있지만 나는 이 만년필을 결코 버릴 수 없다. 여기에는 단순한 감각적 경험이나 효용성을 넘어서는 내 삶과 기억의 일부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기계의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대체할 수 없는 이유이며 탁월한 차이가 나는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계의 지능과 인간의 지능
이제 기계와 인간의 지능에 대한 단순한 비교가 가능하다. 기계의 지능은 정량적 데이터와 전산 논리를 기반으로 작업을 수행하며 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인간의 지능은 신체적, 심리적 성장 과정 전반에 걸쳐 유기적으로 발달하며 수많은 삶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AI는 인간의 추론 능력을 모방하고 놀라운 속도와 효율성으로 특정 작업을 수행할 수 있지만, 그 연산 능력은 인간 정신의 광범위한 능력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또한 도덕적 분별을 할 수 없으며 진정한 관계도 현재로서는 구축할 수 없다.
반면 인간의 지능은 개인의 지적·도덕적 관점을 근본적으로 형성하는 삶의 역사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신체적·정서적·사회적·도덕적·영적 차원을 포괄한다. 이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탁월한 기능으로, 이를 통해 인간은 삶의 의미와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의지까지 실현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교에서 지능을 이해하는 핵심은 인간을 개인의 도덕적‧영적 삶의 맥락에서 파악하고 하느님의 선과 진리에 비추어 그 사람의 행동을 인도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능은 단순한 사실 습득 능력이나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으로 축소될 수 없다. 인간은 삶의 궁극적인 질문에 열려 있으며, 참되고 선한 것을 향한 방향을 스스로 탐구하고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현대 사회는 어떠한가? 나는 이러한 성찰을 마주하며 특별히 한국의 수학능력시험을 떠올린다. 한국의 수능은 기계의 지능이 할 수 있는 부분만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시험에서 학생들은 인지 능력, 논리적 사고, 문제 해결 능력, 학습 능력, 계산 능력, 기억력, 정보 처리 능력을 평가받고, 그 결과에 따라 미래의 진로가 결정된다.
그러나 이 안에 인간 지능의 고유한 능력, 즉 본질을 이해하는 능력, 사유 능력, 윤리적 사고 능력, 실질적 공감 능력, 새로운 개념을 형성하는 능력은 철저히 제외되어 있다. 이러한 문화는 결과적으로 실용적 목적을 우선시하는 사회로 이어지며, 참되고 선한 것을 향한 이타적인 개방성을 잊게 만든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는 과연 인간의 지능을 스스로 폄하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이러한 성찰이 배제된다면 기능주의와 실용주의에 매몰되어 능력 우선주의로 개인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로 인한 피로감과 우울감이 사회를 지배할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문화에 젖어 있다.
✳️ ‘강인공지능’을 아시나요? 다음 화에서는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강인공지능 시대’에 대해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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