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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은 꽃과 나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흙을 고르고, 누군가는 돌을 나르며, 누군가는 묵묵히 물을 줍니다.
🍚 수도원 뒤뜰에서 시작된 작은 정원은 ‘청년밥상 문간’이라는 또 하나의 정원으로 이어졌고, 수많은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 주었습니다.
💘 사람을 살리는 정원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꽃보다 먼저 피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
쓰레기장이 정원이 되기까지
도심 속에 자리한 저희 글라렛선교수도회에는 작은 정원이 있습니다. 사실 정원이라기보다는 자투리땅이라고 부르는 게 어울리는 뒤뜰입니다. 그곳을 정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한 신부님 덕분입니다.
제가 사는 수도원에는 저를 포함해 다섯 명의 수도 사제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은 나무를 돌보고 화초를 가꾸는 일에 큰 애정을 갖고 계십니다. 거기에 솜씨까지 훌륭하시지요.
매서운 겨울이 지나 봄이 되자 요셉 신부님은 수도원 뒤뜰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셨습니다. 한참 제자리에 서서 구상하신 뒤 갖가지 꽃과 크고 작은 화분, 나무와 모종을 가져오셨고, 수도원 뒤뜰에 쌓여 있던 잡동사니와 쓰레기를 하나씩 정리하며 조금씩 정원을 만들어 나가셨습니다.
경사진 곳은 파고 메우며 단을 만들고, 돌과 벽돌, 수석을 하나하나 배치했습니다. 그렇게 쓰레기장 같던 뒤뜰은 점차 정원의 모습을 갖추어 갔습니다. 하루, 이틀, 한 주, 두 주…… 시간이 흐르자, 버려진 채 잡동사니로 가득하던 땅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무거운 돌이나 화분을 옮길 때만 가끔 도움을 청하셨을 뿐, 한 달이 넘도록 틈날 때마다 홀로 정원을 가꾸셨습니다.
정원은 사람도 꽃피웁니다
삭막했던 수도원의 현관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뒤뜰은 화사하고 생명력 넘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수도원 식구들은 물론 방문객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방치됐던 땅이 정원이 되자 까치가 날아들고 벌과 나비도 찾아왔습니다. 햇빛을 받아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마저 스르르 평온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얼굴과 웃옷은 땀으로 젖고 바지는 흙투성이가 되면서도 신부님은 즐겁게 흙을 고르고, 파고, 심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보상을 바라신 것은 아닙니다. 그저 그 일이 즐겁고 기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덤으로 얻는 행복이었을 것입니다.
기온이 오른 요즘에도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시간을 내어 기쁨을 피워 내자 그 기쁨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꽃 대신 마음을 심는 곳: 청년밥상 문간
정원을 가꾸시는 신부님과 아름답게 변한 뒤뜰을 보며 저는 제가 운영하는 ‘청년밥상 문간’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저희 식당을 이용하신 분은 21만 명이 넘습니다. 수익이 없는 식당이 9년째 운영될 수 있는 것은 후원자들 덕분입니다. 9년 전 서너 분에 불과했던 후원자들은 이제 2,600여 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얼굴도 다 알 수 없을 만큼 많아졌고, 그 가운데에는 매주 식당을 찾아 봉사해 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자신의 시간을, 소중한 마음을, 땀이 밴 후원금을 내어 주신 후원자들 덕분에 식당은 포근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지난 9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이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채우셨고, 그분들의 감사와 격려는 제게도 큰 위로와 힘이 되어 마음을 채워 주곤 합니다.
“한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작년에 한 청년이 저에게 엽서를 건네주었습니다. 담담하게 감사 인사를 적어 내려간 글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저는 그 문장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굶주림에서 자신을 구해 냈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말의 무게와 청년이 견뎌 온 삶의 무게가 제 마음에 턱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저에게 건네는 감사의 마음과 그 너머에 담긴 녹록지 않음을 느끼고 나면 식당을 찾는 분들을 더욱 유심히 바라보게 됩니다. 혹시라도 불편해하실까 봐 모른 척 지나가는 척하면서도, 제 마음은 모두가 몸도 마음도 평온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가득해집니다.
꽃과 나무의 이름은 ‘후원자’였습니다
2,600여 분의 후원자들은 꽃과 나무, 돌과 흙이 되어 ‘청년밥상 문간’이라는 정원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꽃과 풀이 어우러진 정원에 까치가 날아들고 벌과 나비가 머물 듯, 후원자들의 나눔이 쌓이고 더해져 식당은 지친 몸과 허기진 마음을 채우는 밥상이 되었고, 누군가를 살리는 부활의 정원이 되었습니다.
밥 한 끼 먹고 힘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한 작은 식당에서 누군가는 삶의 의미와 원동력을 얻게 되리라고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내색하지는 않지만, 오늘도 ‘덕분에 살았습니다.’라는 마음을 품은 소중한 손님이 식당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시겠지요.
밥 냄새가 피어오르는 정원
덕분에 저희는 오늘도 여느 식당과 다름없이 문을 엽니다. 정성껏 식탁을 닦고, 주방에서는 김치를 볶고 무와 파, 양파를 쓱쓱 썰어 재료를 준비합니다. 육수가 끓는 솥에서는 김이 피어오르고, 돼지고기와 햄, 어묵도 알맞게 손질합니다. 썰기 가장 까다롭다는 두부도 잊으면 안 되죠. 정성껏 쌀을 씻어 밥을 안치면 어느새 구수한 밥 냄새가 식당을 가득 채웁니다.
겉으로는 일반 식당과 다를 바 없겠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한 사람을 살리셨습니다.”라는 인사는 제가 아니라, 기꺼이 공감과 나눔으로 ‘청년밥상 문간’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들어 주신 2,600여 분의 후원자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합니다.
‘세상’이라는 이름의 정원
방치된 채 잡동사니만 널브러져 있을 때는 누구도 들어가려 하지 않던 곳이 한 사람이 묵묵히 손에 흙을 묻히고 땀을 닦아 가며 정원으로 바꾸자, 모두가 한 번쯤 들르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땅은 그대로 두면 잡동사니가 쌓여 방치되지만, 애정을 쏟아 가꾸면 전혀 다른 곳으로 변합니다. 내색하지 못한 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함께하는 나눔 역시 ‘세상’이라는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신감이 생기네요. 저는 건강한 화초도 쉬이 하느님 나라로 보내는 사람이라 화초를 가꾸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상 한 모퉁이를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들고 있었구나 싶습니다.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정원은 만들지 못하더라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는 미력하나마 손을 보태고 있는 것 같아 화초들에 품고 있던 미안함도 조금은 씻겨 나가는 듯합니다.
사진 ⓒ 이문수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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