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특집③ 꼭 우리 같은 사람들이었다

교회사 여행

월간 특집③ 꼭 우리 같은 사람들이었다

순교 성인들의 믿음에서 오늘의 용기를 찾다

2026. 09. 03
읽음 233

2

1

 

🌱“용기를 내어라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한국 순교 성인의 믿음과 용기를 돌아봅니다

순교자들은 먼 과거의 영웅들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일상의 자리에서 하느님을 믿고 진리를 선택했던 그들의 삶을 다시 바라봅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의 주제 성구로도 선정된 이 아름다운 구절의 전후 상황은 사실 암담하다. 유다는 스승을 배신하고 방을 나갔고, 예수님께서는 남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떠날 것이며, 그들은 당신을 따라올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심지어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고 박해할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님의 죽음을 예고하는 징조가 뚜렷해지는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씀하시고, 기도하신 뒤 잡혀 가신다. 제자들은 겁에 질려 흩어졌고, 심지어 그분을 모른다고 부인하기까지 했다. 박해와 배척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쉽지 않은 오늘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삶과 죽음으로 본받은 순교자들, 특별히 피와 땀으로 한국 교회의 거룩한 땅을 다진 한국의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좋겠다.

 


 

일상에서 피어난 믿음

 

나는 9월이 되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순교자들의 영성에 대한 강의나 글을 보며, 그들의 충직함에 감탄하면서도, 불과 160여 년 전(런던에서는 이미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었다)에 일어났던 일들을 마치 고대의 영웅 설화처럼 여길 때도 있다. 그들의 삶을 오늘의 내 육체와 정신에 연결 짓지 못한 채 잠시 바라보는 데 그치는 것이다.

 

어느 날 특별한 명소로 알려지지는 않은 200여 년 전 신자들의 집터와 공소를 방문했는데, 지루할 만큼 일상적인 그 모습이 오히려 내게 깊숙이 다가왔다.

 

인간은 손이 섬세하지만 날카롭지 못해 기구를 사용하고, 피부는 여려서 의복을 갖춰야 하며, 이성을 지닌 동시에 감성도 지녔기에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고 죽을 때까지 무리 지어 함께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다.

 

사도들을 비롯한 초대 교회의 신자들, 그리고 불과 200년 전 한국 교회의 신자들도 우리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갔을 것이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밥을 지어 먹고 때로는 서로에게 마음 상하기도 하며, 마음 맞는 이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꼭 우리 같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효임 골롬바, 나의 주보 성인

 

나의 주보 성인이신 김효임 골롬바는 한국의 여느 순교 성인들처럼 극형과 모욕에도 하느님을 배반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고, 오히려 고문자들에게 천주교의 이치를 설명하기까지 했다. 그가 직접 작성한 서한이나 글은 남아 있지 않고 짧은 기록만이 전해지는데, 그 기록에서도 그의 굳은 기개를 엿볼 수 있다.

 

스물여섯 살이었던 김효임 골롬바는 두 살 어린 동생 김효주 아녜스 성인과 함께 고초를 겪었고, 동생이 먼저 순교한 뒤 자신도 순교했다.

 

차라리 영웅 설화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 소박하고 나직한 지붕 아래 모여 살던 사람들이 마음 편히 미사 한 번 제대로 드리기 어려운 시대를 살았음에도, 기꺼이 소중한 생명까지 내어놓았다는 것을 생각하니, 황송하면서도 가엾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지내는 것은 단지 많은 순교자를 기억하고 슬퍼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과연 그들의 죽음이 이미 복음화된 자유 사회에 살고 있는 지금의 나와 우리 교회의 믿음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희망

 

우리가 단지 세상적 이치와 앎으로 정의되고 증명되는 것에서만 희망을 찾는다면 내일이면 죽을 몸 먹고 마십시다.”(1코린 15,32)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부활 신앙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는 죽음이 희망의 실패이자 종결이 아니라는 희망이 이미 작용하고 있다.

 

특별히 교회의 순교자들에게서 우리는 이 희망이 세상과 동떨어진 어떤 열반의 경지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며 살아 내는 것임을 배울 수 있다.

 

한국 순교자들은 세상이 주는 희열과 만족 대신 비천함을 받아들였고, 하느님에게서 힘을 얻어 사랑했으며,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비정하고 예쁜 세상'에서 진리를 증언한다는 것

 

순교자들의 시대에 신앙에 대한 증언이 죽음으로 나타났다면, 우리 시대에는 그 증언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유라는 매력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내가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과연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진정한 진리와 자유를 증언하는 방식인지 돌아본다.

 

내가 지내는 세상은 밝고 깨끗하다. 생명에도 값이 매겨져 소비재가 되고, 판매 가치가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취급되는 비정하고 예쁜 세상이다.

 

복음과 진리에 대한 증언을 망각시키고, 박해받는 이들, 고통받는 이들, 억압받는 이들, 가난한 이들을 그저 우연적이고 익명적인 사건으로 무마하려는 예쁜 세상의 우상화를 거부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인간사 속에서 성령께서 인류의 마음에 계속해서 불어넣어 주시는 정의와 평화의 약속이 꽃피울 수 있도록하는 것이 이 시대의 소명이다.

 


 

순교 성인들께 청하는 용기

 

나는 살아가며 하느님을 향해 내어 드리는 시간과 선택들이 빈번히 비합리적이고 무상하게 느껴지는데, 그럴 때면 우리의 단 한 부분도 빠뜨리지 않고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 역사 안으로 오신 하느님의 역설을 묵상한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시간이 평화도 기쁨도 없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고(2코린 4,10) 평화와 기쁨의 정신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며 나아갈 수 있기를 온유한 순교 성인들께 전구를 청한다.

 

나의 초라한 사랑과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은총으로 우리가 서로에게 용기가 되어 함께 길을 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의 여정이 끝나갈 때 신발 벗고 들어오라고 말하는 낯설고 신비로운 불타는 떨기나무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박해받는 이들을 기억하며

 

더불어 특별히 순교자 성월을 지내며,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더욱 교묘한 형태로 자행되는 차별과 폭력, 억압에 시달리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하면 좋겠다.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박해 시대는 19세기 말 막을 내렸으나, 그 이전에도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박해가 있었으며, 20세기에는 나치 정권과 소련을 비롯한 전체주의 체제 아래에서 거대한 탄압이 자행되었다.

 

21세기에도 북한, 시리아, 파키스탄, 예멘, 나이지리아, 미얀마, 니카라과 등에서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신앙 때문에 박해와 폭력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역시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의지와 존엄, 신앙을 지켰던 신앙 선조들의 양분 위에 존재한다. 당장 내 앞마당이 조용할지언정, 자신의 모든 뿌리와 친교로부터 단절된 채 살아가는 형제자매의 고통을 나와 무관하다며 방치하고 잊을 권리는 없다.

 

절망과 극심한 곤경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존엄과 자유를 되찾기를 기도한다.

 


 

참고 문헌 

1. G. Greshake, Lebenstärker als der Tod; Von der christlichen Hoffnung, Herder, Freiburg-Basel-Wien, 2008, tr. it. di G. Francesconi, Vita più forte della morte. Sulla speranza cristiana, Queriniana, Brescia, 2009, 30.

2. 레오 14, 회칙 Magnifica humanitas, 2026.5.15., 20.

3. 레오 14, Ad Coetum Legatorum apud Sanctam Sedem, in proferendis ominibus de Anno Novo

 


 

🔗 함께 읽으면 더 좋은 아티클

 

 

 

Profile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에 재학 중입니다. 특별한 취미는 없지만 매일 산책과 운동을 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함께 본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