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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줄로 요약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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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기도로 코린토 2서 12장 9-10절의 말씀을 읽어 봅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사제 서품 성구이기도 한 바오로 사도의 코린토 2서 12장 9절 말씀은 연약함에 대한 신앙의 새로운 시야를 열어 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랑할 것이 있다면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겠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약할 때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의 이 ‘역설’을 이해하는 것이 신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관통해야 할 중요한 관문입니다. 우리 신앙은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에 대한 깊은 경험과 통찰을 갖고 있습니다. 연약함에 대한 신앙적 이해는 우리가 살아온 삶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하며, 연약함으로 점철된 자기 삶을 수용하고 온전히 끌어안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길
먼저 약한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눈길과 마음에 머물러 봅니다. 군중을 목자 없는 양들처럼 가엾게 여기신(마태 9,36 참조) 예수님께서는 약함으로 점철된 인간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기에 약함으로 고통받는 우리의 처지를 잘 아시고 위로해 주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가까이하신 이들은 온갖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이었고, 악령에 시달리는 이들이었습니다. 마음 둘 곳 없이 절망과 실의에 빠져 희망을 잃은 이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약함과 그로 인한 삶의 고통을 당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시며 함께 아파하셨고, 기꺼이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또한 손을 내밀어 그들을 일으켜 세우시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비록 약함으로 점철된 삶일지라도 그들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고귀하고 소중한 자녀임을 일깨워 주시며 믿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다시 일어나 하느님의 자녀답게 자유롭고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기도
예수님의 그러한 마음은 주님의 기도에 잘 드러납니다. 우리는 보통 주님의 기도를 ‘외워야 할 기도’로 생각합니다. 종종 아무 생각이나 감흥 없이 입으로만 되풀이합니다. 그러나 이 기도 안에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와 맺으신 관계, 특히 인간의 약함에 대한 깊은 인식과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약한 인간이 하느님 아버지께 자비와 도움, 용서를 청하는 희망의 기도입니다.
기도의 전반부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 나라와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십니다. 여기서 초점이 ‘땅’에 있음을 기억합시다. 관건은 아버지의 이름이 ‘땅’에서 거룩히 빛나는 것이며, 그분의 나라와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해 기도를 바치시지만, 그분의 눈은 땅을 향합니다. 불의와 폭력으로 점철된 땅, 죄와 악으로, 상처와 트라우마로 점철된 땅, 우리가 사는 바로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기를 간절히 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약한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기도의 후반부에 나오는 청원은 주님께서 인간의 일상, 육체, 윤리, 종교적 삶에서 나타나는 연약함을 깊이 인식하고 계심을 잘 보여 줍니다.
먼저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주시기를 청합니다. 인간은 육적인 존재이기에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땅을 일궈야 살 수 있는, 노동을 해야 살 수 있는, 기후와 환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 안 계시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보살펴 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이어 용서에 관한 청원이 나옵니다. 인간은 서로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분노와 폭력, 원한과 응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용서입니다.
그런데 연약한 인간의 용서는 불완전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 번 용서했다가도, 곧바로 분노가 치밀어 다시 나를 괴롭힙니다. 인간의 마음이 그렇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오직 하느님께서만 온전히 용서하시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유혹과 죄에 빠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창세기 3장 ‘원조의 타락’ 이야기는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죄를 짓는지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를 짓기도 하지만, 자기보다 앞서 마음을 미혹하는 악(뱀의 형상으로 나타난)과 결탁하여 죄를 짓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로마서 7장 말씀도 같은 내용입니다. 사도는 인간 스스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비참한 현실을 말씀하십니다.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처럼 약하고 유혹과 죄에 빠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악에서 구해 주기를 하느님께 청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약함을 깊이 아시고, 하느님 아버지께 인간의 약함을 돌보고 보살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이 기도를 알려 주신 것은, 우리도 그렇게 기도하며 아버지 하느님의 보호하심과 보살핌 아래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약함과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인간 삶의 연약함
교황청 성직자부에서 반포한 사제 양성에 관한 문헌, 《사제성소의 선물》에 나오는 말씀을 들어봅시다.
“신학생은 한편으로는 은총으로 빚어진 재능과 선물을 드러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한계와 나약함을 드러낸다. 양성의 임무는 성령의 영향을 받아 한 사람이 신앙의 여정과 조화를 이루며 꾸준히 이루어지는 성숙의 여정에서 파편화, 양극화, 과도함, 피상성, 편파성을 피하면서, 이러한 측면들을 통합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28항)
이 말씀은 사제 지망자가 겪는 나약함과 한계가 사제가 되기 위해 없애거나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닌 또 다른 측면인 은총으로 빚어진 재능과 ‘통합’해야 할 것임을 말해 줍니다. 사제로서의 삶을 준비한다는 것은 나약함과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여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를 온전히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모든 이에게 해당합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지만, 곧바로 신앙의 최종 목적에 도달한 것은 아닙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원죄와 본죄가 씻기더라도 인간의 타고난 나약함과 한계, 죄로 기우는 경향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다고 해서 이러한 성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받은 재능과 선물을 이러한 성향과 통합해 가는 영적 여정을 걷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약함과 죄로 기울기 쉬운 성향 등은 신앙 안에서 받아들이고 끌어안으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부족함에도 계속해서 신앙의 길을 걸으며 인격적 성숙을 이루고 신앙의 완덕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약함과 한계는 누구나 공통적으로 겪는 일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도들뿐만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모든 이가 우리와 똑같이 약하고 한계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의 자서전에는 무신론자들이 가질 법한 생각들이 등장합니다. 또한 한국 순교 성인들 가운데에는 무서운 박해 앞에서 두려움과 흔들리는 마음을 겪었던 이들도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으뜸 제자이면서도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고, 토마스 사도는 부활하신 주님의 손과 발의 못 자국에 손을 넣어 보고서야 믿겠다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나약함과 한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입니다. 유다와 베드로 모두 주님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베드로는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사도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고, 유다는 그렇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제 우리 삶을 바라봅니다. 나약함과 한계로 점철된 삶은 감히 어디에 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하고 부끄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 자신이 그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눈으로 지나온 삶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의 나약함과 한계를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를 나무라시기보다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으시며, 우리가 계속해서 잘 살아가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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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기 2코린 12,9-10의 말씀을 다시 읽고 묵상해 봅시다.
1. 나는 나의 약함을 언제 경험해 보았나요? 2. 나의 약함 안에서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의식할 수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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