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그림 속에서 말을 걸다

가톨릭 예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그림 속에서 말을 걸다

우석 장발의 작품을 통해 살펴본 김대건 신부의 신앙과 가르침

2026. 07.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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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발의 <순교자 김대건 신부>는 십자가와 영대를 쥔 김대건 신부의 모습을 통해 한국 첫 사제의 신앙과 소명을 보여 줍니다.
  • 관람자를 향한 강한 눈빛과 힘 있는 몸짓으로, 죽음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김대건 신부의 순교 의지를 드러냅니다.
  • 이 작품은 우리도 일상의 망설임을 넘어 주님의 길에 기꺼이 응답하라고 일깨웁니다.

 


 

얼마 전 한림대학교 박물관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故 장흔 신부님께서 기증한 우석 장발 선생의 그림들로 장발 특별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에 박물관 측은 성화 11점에 대한 논문과 작품 설명, 강의, 그리고 장발 선생 작품 소장처 방문 및 안내를 해 달라고 부탁해 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 왜 그때 못한다고 거절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글쓰기를 어려서부터 싫어했는데, 새로운 연구라니……. 심지어 이 성화들의 자료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상황에 어떻게 글을 쓰고 이야기를 풀어야 할지 고민이 컸다.

 

그때 장발 선생님의 한 작품이 나를 이끌었고, 그토록 후회하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 그림이 바로 오늘 함께 살펴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라는 작품이다.

 


 

한국의 첫 사제를 그리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성녀 김 골롬바와 아녜스 자매>는 장발이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다뤄 온 작품들이다. 특히 장발이 1920년에 그린 최초의 김대건 신부 초상화가 2022년에 새롭게 발견되면서 1920년대에 그린 작품은 총 6점이 되었다. 1920년 도쿄 미술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19세의 장발이 그린 이 그림은 아직 화가로서의 기량이 무르익기 전의 것이지만, 보이론파 성미술의 영향을 받은 초기 시도로 보인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는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사제이다. 그는 1845817일 상하이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은 뒤, 같은 해 9월 조선으로 들어왔다. 이후 박해 속에서도 신자들을 돌보는 한편,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올 수 있는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해 힘썼다. 그러던 중 서해 순위도 등산진에서 체포되어 184691625세의 나이로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김대건 신부는 1925년 로마 바티칸 대성전에서 한국 순교자들과 함께 시복되었으며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또한 인류애와 평등사상의 실천, 그리고 <조선전도> 제작을 통해 유럽 사회에 한국을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었다. 한국인으로서는 세 번째 선정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0년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한국 교회에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희년으로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한국 천주교 신자라면 가장 존경하고 공경하는 성인 중 한 명이 바로 김대건 신부이기에, 장발 역시 말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작품을 통해 김대건 신부에 대한 공경심을 지속적으로 드러냈다.

 


 

신앙의 힘, 십자가와 영대에 담기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1983년, 장발,  종이에 목탄, 한림대학교박물관

 

1983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목탄으로 그렸다고 표기되어 있으나 과슈를 사용한 듯 보인다. 먹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으나 불투명한 것으로 보아서는 과슈로 먹의 느낌이 나도록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작품 왼쪽 김대건 신부의 왼팔 도포 자락 아래쪽에는 은색에 가까운 회색조로 덧칠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정확한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십자가를 쥔 손을 들어 올리는 동작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림 속 김대건 신부는 몸의 방향과는 달리 관람자를 향해 얼굴을 돌린 채 입을 벌리고 있다. 마치 나를 따르라!”라고 외치는 듯한 모습이다. 얼굴은 결의에 차 있으며, 눈과 눈썹, 미간 모두 짙고 두텁게 표현되어 강인한 인상을 준다.

 

후광은 그가 들고 있는 십자가와 겹치지 않도록 다른 그림에 비해 낮게 배치되었다. 이는 그의 목표와 관련이 있다. 바로 십자가의 그리스도이다.

 

의복은 사제의 하얀 장백의를 연상하게 한다. 장발은 불의에 대한 그의 분노를 드러내기보다는 결의에 찬 모습을 단순하고 상징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선과 형태를 명확하게 그려 넣었다. 외곽선은 물론 십자가를 비롯해 얼굴과 의복 모두 직선적으로 강하게 처리되어 있다. 농담濃淡의 효과로 인해 마치 동양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제는 완전한 한국 성인이 구현되었구나 싶은 느낌을 받는다.

 

필체의 꺾임, 과도할 정도로 직선적으로 표현되어 외곽선이 강조된 의복에서는 김대건 신부님의 집념과 의지가 전해진다. 심지어 그가 오른손으로 쥐고 있는 영대 또한 자연스럽게 흩날리기보다 꺾여 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일 정도다. 왼손은 십자가를, 오른손은 영대를 움켜쥔 모습에서 천주교 신부로서 그의 신심과 순교 의지의 단호함이 드러나는 듯하다.

 

1983년 제작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성녀 김 골롬바와 아녜스 자매>, <순교자>(Martyrs) 등은 198456일 개최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대회와 103위 한국순교복자 시성시복추진위원회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내적으로는 신앙 쇄신을, 외적으로는 민족 복음화를 위해 순교 정신을 고취한다.’라는 위원회의 목표를 위해 그는 여러 순교자들을 그렸다. 장발은 문예 진흥원 미술 회관에서 열린 가톨릭 미술 전시회에서 <순교자> 작품 시리즈를 소개했으며, 7월 가톨릭미술가협회가 개최한 현대종교미술국제전 영원의 모습<순교자 Ⅶ>(1980)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그리고 19851월에 로마에서 개최된 한국 현대 성화전에도 참여했다.

 

장발은 죽음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순교자의 꺾이지 않는 절개, 신자들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했던 사제로서의 책임, 그리고 그가 전하고자 한 종교적 가르침과 정신을 이 그림 한 장 안에 담아 내고자 했다.

 


 

그림 속에서 들려오는 부르심

 

그동안 봐 왔던 김대건 신부는 회화나 조각이나 대부분 조선 시대 의복을 갖추고 정면을 당당히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 왼손에는 십자가를 쥔 채 당신의 신앙심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오른손에는 사제의 직분과 활동을 의미하는 영대를 쥔 김대건 신부님이 그 옆에 선 나에게 소리치는 듯했다.

 

사제의 직분이 무엇이냐?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보고 나를 따르라!”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며 나와 같은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귀찮고, 싫고, 가능하다면 남에게 넘기고만 싶은 수많은 일들. 어쩌면 그런 일들을 대하는 이 어리석은 마음은 수많은 순교 성인들 앞에 부끄러움으로 남을지 모른다. 그들은 싫은 것을 기쁨으로, 귀찮은 것을 은총으로, 남에게 떠밀고 싶은 것을 내가 해 나가도록 마음을 바꾸기를 바라고 계신다. 그리고 이 그림 속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강하게 외치고 계신다.

 

주님의 길을 나와 함께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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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교회문화유산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이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회 문화유산의 보전과 교회 예술의 진흥을 위해 힘쓰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교회 예술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주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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