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제 이야기] 넘어져도, 부르심은 끝나지 않습니다

영성과 신심

[새 사제 이야기] 넘어져도, 부르심은 끝나지 않습니다

순교자 ‘이기연’에게서 배운, 다시 돌아오는 신앙

2026.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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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이나 배교한 사람이 어떻게 ‘충주의 사도’가 되었을까요? 순교자 이기연의 삶을 통해 한 청년은 넘어져도 다시 하느님께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깨달음은 사제가 되기를 두려워하던 그 청년에게 다시 부르심에 응답할 용기를 주었습니다.

 


 

사제가 되고 보니, 살이 좀 쪘습니다

 

찬미 예수님! 저는 지난 1월에 사제품을 받은 청주교구 사창동성당 보좌 신부 한태우 블라시오입니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닌데, 이렇게 웹진을 통해 인사드리게 되니 좀 부끄럽기도 합니다. 부족한 필력이지만, 갓 사제품을 받은 사제로서 여러분께 무언가를 말씀드리자면 저의 성소 여정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좋을 듯합니다. 그중에서도 성소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던 대학원 때, 신앙 선조들의 삶을 통해 하느님을 만났던 체험을 나누려 합니다.

 

사제품을 받고 본당에 부임한 이후, 교우님들께서 참 많은 사랑을 주시는 덕분에 기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저도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제가 되려고 애쓰다 보면 좀 바쁜 건 사실이지만, 힘듦보다는 기쁨이 더 큽니다. 제가 요즘 얼마나 행복한지는 교우님들의 사랑 덕에 늘어난 제 몸무게가 증명합니다.

 


 

예수님을 닮으라는데, 저는 너무 달랐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행복하게 지내고 있지만, 사제품을 받기 전까지는 저에게도 무수한 고민과 내적 갈등이 있었습니다. 저학년 때는 마냥 얼른 사제가 되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두려움이 점점 더 커졌습니다. 성체성사의 집전자로서 당신을 다 내어 주는 사랑을 보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고 배웠지만, 정작 저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별로 잘난 것도 없고, 늘 흔들리고 넘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새로운 시선을 열어 준 곳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성된 충주 숲거리 순교 성지를 순례하게 된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쭉 충주에 살았기에 그 근처에 순교 터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공식적으로 성지로 선포되기 전에는 사실 그렇게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본격적으로 성지가 조성되고 나서야 제대로 방문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순교하신 분들의 이야기도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날 청주교구에 해당하는 지역에 처음 복음을 전한 ‘이기연’이라는 순교자​의 이야기가 특별히 저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한태우 

 


 

저를 붙잡은 건 ‘완벽한 성인’이 아니었습니다

 

순교자 이기연은 한국 천주교회 창설의 주역인 하느님의 종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사돈 관계였습니다. 그 덕에 이기연은 일찍이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충주 지역에도 한국 천주교 창설 직후에 복음이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기연은 충주를 중심으로 널리 복음을 전하며 이 지역에 천주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는 기틀을 마련하였고, 숲거리에서 순교하신 다른 분들도 이분을 통해 입교하신 분들이었습니다. 그 덕에 이기연은 ‘충주의 사도’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들으면 ‘이런 분이 왜 아직도 성인이 되지 못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물론 세례명이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자료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분이 배교하신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배교하셨습니다.

 

1791년 신해박해 때는 천주교 서적을 가지고 스스로 관아에 가서 불태우며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고 다짐하셨습니다. 그리고 1801년 신유박해 때는 다시 배교를 다짐하여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만, 북쪽 지방으로 유배되셨다고 합니다. 하느님을 믿고 사랑했지만, 인간적인 나약함으로 인해 여러 번 넘어지셨던 것입니다.

 


 

넘어져도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기연의 신앙은 배교로 마침표를 찍지 않았습니다. 이기연은 관아에서는 배교하겠다고 선언하고도 풀려나면 다시 신앙생활을 할 뿐만 아니라 선교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두 번째 배교를 하고 북쪽 지방에 유배되셨을 때에도 그 먼 타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이기연이 배교와 회개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복음이 더 널리 퍼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끝내 신앙을 버리지 못했던 이기연은 1802년 1월 30일 충주 숲거리에서 마침내 순교의 월계관을 쓰시게 됩니다.

 

ⓒ한태우

 


 

순교자 이기연의 이러한 삶을 묵상하며 제 눈에 들어온 성경 구절이 바로 저의 서품 성구입니다.

 

“나와 함께 있어 준 사람들이다.”(루카 22,28)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당신 나라를 맡기며 하신 말씀입니다. 성체성사를 제정하시고 제자들에게 당신 나라를 맡기시던 이 장면에서, 제자들의 모습은 흠 없이 훌륭한 모습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제자들은 이 중요한 순간에 서로 ‘누가 더 높으냐’를 가지고 다투었으며,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수난 중에 있을 제자들의 배반마저 예고하십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도 훌륭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당신 나라를 맡기시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바로 당신과 함께한 이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맡기신 것은 사도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당신 곁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십자가 수난 중에 나약함을 이기지 못하고 당신 곁을 떠나더라도,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 하고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그들은 다시 돌아올 것을 믿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믿음대로 제자들은 주님께서 십자가로 세상을 이기셨음을 깨닫고 돌아와, 마침내 자신들도 그 십자가를 지고 따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순교자 이기연을 이 지역에 복음을 전할 첫 사람으로 뽑으신 이유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해 시대의 신앙인으로서 배교는 사실 가장 큰 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기연은 나약한 인간이었으면서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간절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기연이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기에, 배반하더라도 다시 돌아와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리라 믿으셨던 것입니다.

 

심지어 하느님께서는 이기연의 나약함마저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배교하고 풀려났다가도 주님을 버리지 못하고 이내 회개했던 이기연의 발걸음으로 인해, 이 땅에 복음이 더 널리 퍼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 체험은 저의 성소 여정에 다시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부르신 건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나약하고 부족하다는 것도 분명하지만, 하느님을 사랑하고 싶고 언제나 예수님 곁에 머무르고 싶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또 순교자 이기연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저의 나약함조차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고, 끝내 당신 안으로 이끌어 주시리라는 기대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용기를 내어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었고, 이 길을 계속 걸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서품받고 본당에 부임하여 보니, 저마다 주어진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삶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교우님들, 특히 청년들​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각자의 능력과 상황에 따라 부르심에 응답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도, 꼭 사제 성소나 수도자 성소가 아니더라도 저처럼 다양한 고민과 어려움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마다의 혼란과 어려움, 좌절을 겪고 있을 이 청년들도 제가 했던 체험을 하기를 바라며, 청년들과 함께 삼삼오오 성지 순례를 다닙니다. 어려운 와중에도 자신의 믿음을 기쁘게 증거하셨던 신앙 선조들처럼, 오늘날의 청년들도 믿음과 희망 안에서 이렇게 외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한태우

 


 

넘어지는 우리끼리, 함께 걷습니다

 

지금도 저는 예수님과 늘 함께이기를 바라기에, 저와 늘 함께해 주는 수많은 이웃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사제의 삶 안에서도 찾아오는 세속적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저는 넘어졌고, 앞으로도 넘어지겠지만, 그때마다 저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끝내 세상을 이기셨음을 기억합니다. 무엇보다 언젠가는 제가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믿음이 흔들리거나 삶이 막막할 때 성지를 찾아 신앙 선조들을 만나 보시기를 권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하느님 품에 안기신 선배님들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 십자가로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만나도록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 함께 기도해 주세요.

 

<사제의 첫 계절>은 새 사제들의 첫 사목과 신앙의 여정을 함께 나누는 연재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전해 준 한태우 블라시오 신부님이 넘어질 때마다 다시 예수님 곁으로 돌아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제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Profile
청주교구 사제. 사창동성당에서 보좌 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에 관심이 많으며, 신앙 선조들의 삶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을 체험하고 신앙의 기쁨을 되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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