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들의 문장 ① | 우리는 서로의 빛입니다

가톨릭 예술

사제들의 문장 ① | 우리는 서로의 빛입니다

《사제들의 시대 공감》 저자 인터뷰 | 명형진 신부, 방종우 신부

2026. 0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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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순간에 희망을 발견하게 될까요? 이 질문 앞에서 신간 《사제들의 시대 공감》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에 따뜻한 공감을 건넵니다. 이 책은 반복되는 일상과 크고 작은 삶의 흔들림, 때때로 찾아오는 상처와 기나긴 어둠까지도 희망과 사랑을 향한 여정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여섯 사제 가운데 명형진 신부, 방종우 신부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 보았습니다. 문장 뒤에 놓인 사제들의 일상과 글 쓰는 마음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살펴볼까요?

 


 

이번 원고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문장은 무엇인가요? 그 문장이 마음에 남은 이유도 함께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명형진 신부: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관계 안에서 우리가 받을 상처마저도 안배하고 계실 것이기에, 상처는 단지 아픔이 머무는 자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드시는 자리가 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울고 있는 그 자리에 이미 함께하시며, 그 상처를 통해 당신과의 대화를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므로 상처를 잘 받는 나의 유리 멘탈은 약점인 동시에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본문 34-35)

 

힘들고 지치거나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는 신자들과 희망, 위로 이야기를 나눠 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원고를 준비하면서, 제 시선은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향했습니다. 저의 힘듦이 신자들의 힘듦과 다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를 떠올려 보니, 제 마음이 상처 입은 자리에 머물러 있을 때였습니다. 특히 그 상처는 관계 안에서 입은 상처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일 힘든 것이 인간관계다.”라고들 합니다. 누구도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관계에서 기쁨을 얻지만, 동시에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그 상처가 기도 안에서 예수님을 향했습니다. ‘인간이 되어 오신 예수님께서 관계에서 상처받지는 않으셨을까?’하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무수히 상처를 받으셨죠. 심지어 그토록 사랑하던 이들의 배신도 지켜봐야 했으니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의 그 상처가 제 상처를 메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관계로 인해 힘들어하고, 나만 상처받았다고 푸념하고 싶은 마음을 그분께서는 기도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와 푸념 속에서도 그분께서 이미 함께하고 계셨음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습니다. 하지만 상처받은 자리가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는 통로라는 것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대화는 치유를 가능케 할 것입니다. 그리고 치유된 마음은, 다른 이에게 상처를 돌려주지 않을 용기가 될 것입니다.

 

방종우 신부: 우리 하느님께서는 다른 신들처럼 부요해 보이지 않고, 편안해 보이지 않으며,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계시지 않는다.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과 아픔, 치욕과 죄악을 모두 끌어안은 채 깊이 신음하고 계신다. 인간이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극한의 고통을 몸소 끌어안은 채로.”(본문 113)

 

자신이 쓴 문장을 스스로 평가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제가 가장 마음에 두고 있는 문장은 이 문장입니다. 삶의 여러 어려움 속에서, 특별히 하느님을 간절히 찾을 때마다 스스로 되뇌곤 하는 내용이기 때문이에요.

힘겨운 순간마다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받고 계신 예수님을 묵상하다 보면, 주님께서 인간의 고통과 괴로움을 몸소 겪으셨기에 우리의 아픔 또한 누구보다 깊이 공감하고 계시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이겨 낼 힘 또한 우리에게 건네주신다는 사실을 더더욱 믿게 된답니다. 더불어 주님께서는 결국 우리가 원하는 방식과 시간이 아니라, 더 좋은 방법으로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믿음도 얻게 되고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제 하소연마저 어쩌면 배부른 투정처럼 느껴져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깊은 괴로움과 하느님의 위로를 떠올리며 쓴 문장이기에, 이 부분을 읽는 독자분들에게도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들은 주로 어디에서 쓰셨나요? 가장 오래 머무르셨던 자리도 궁금합니다.

 

명형진 신부: 인천 신학교는 인천 시내에서 다리를 건너야만 들어올 수 있는 강화도라는 섬에 있습니다. 강화도, 고즈넉한 진강산 아래 인천 신학교가 우뚝 서 있습니다. 시골 한복판, 멀리서도 보이는 사제 양성의 요람입니다. 그곳 도서관 2층 열람실의 한 책상이 제가 항상 있는 자리입니다.

신학교에서의 소임을 받았을 때, 신학생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설렘과 더불어 도서관이 제게 보금자리가 되어 주리라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주, 고요하게 머물며 하느님을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고, 그런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하나의 선물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늘 인천 신학교 도서관 2층 열람실에 머무릅니다. 책을 읽고, 수업을 준비하며, 연구하고, 글을 써 냅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만납니다. 졸음과 사투를 벌이기도 하고, 다 이해할 수 없는 그분을 담아내려다 한계에 부딪혀 답답해하기도 합니다. 미천한 지식을 탓하기도 하며, 가슴을 짜내며 컴퓨터 화면 속 깜빡이는 커서를 멍하니 바라볼 때도 있습니다. 이 글 또한 그 자리에서 마련되었어요.

 

방종우 신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글을 쓰는 일은 때로 즐겁지만, 대개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논문 작업이나 강의 준비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원고를 방에서 쓰다 보면 일종의 환기도 필요해서, 학업 관련이 아니라 일반적인 원고 같은 경우에는 보통 저녁 식후 스터디카페에 가서 작업한답니다.

제가 가는 스터디 카페는 조용한 독서실이 아니라, 적당한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조금은 자유로운 분위기예요.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무언가에 열심히 집중하는 사이에 있다 보면 저 역시 수월하게 함께하게 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마저 듭니다. 이곳의 좋은 점은, 제 방과 달리 침대나 소파 같은 여러 유혹거리가 없다는 점이에요

 


 

글이 막힐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는 편이신가요?

 

명형진 신부:동을 좋아합니다. 유학 시절에는 조급한 마음과 제한된 환경 탓에 산책이 거의 유일한 운동이었지만, 한국에 돌아온 뒤로는 계획한 시간이 되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운동을 하러 갑니다. 등산, 자전거, 러닝, 헬스, 수영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기는데, 요즘은 러닝을 주로 합니다. 글이 막힐 때, 공부하다 힘에 부칠 때에도 달리러 나가고는 합니다.

인천 신학교는 달리기에 참 좋은 환경입니다. 교문 밖을 나서면 바로 논이 펼쳐지기에, 저는 논두렁을 달립니다. 논에는 차도 없고 신호등도 없어 멈출 일이 없습니다. 마라톤 대회를 나갈 때에는 사색을 즐길 여유가 없지만, 답답한 마음으로 논두렁을 향해 나설 때는 다릅니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떠오르다가 어느새 머리와 마음이 정리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논두렁 러너라고 부릅니다.

 

방종우 신부: 글이 막힐 때는 뮤지컬 영상을 보고는 합니다. 소설과 영화, 드라마 등 많은 작품이 있지만, 저는 그 모두를 포함하는 예술 분야가 뮤지컬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사를 음악에 녹여야 하므로 시적 표현도 많고, 분장·의상·무대 장치 등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종합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뮤지컬 영상들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창의성에 감탄하게 되고,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지 않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다소 활력 있게 정리되는 느낌이에요.

 


 

지금의 신부님을 만든 사소한 취향 하나를 꼽아 주신다면요?

 

명형진 신부: 취향이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을 뜻합니다.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중요하다면 중요한 제 마음의 방향은 바로 성실함입니다. 저는 이 성실함을 아버지에게서 배웠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 풍자한 사회의 한 장면처럼, 아버지는 자동차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나사를 반복해서 조이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어릴 적 누구나 응당 그렇게 살아가는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께서 몸소 가르쳐 주신 그 성실함은,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의 부족한 능력을 채워 갈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실함일 것입니다.

저는 사소하게 아침에 일어나 성당에 갑니다. 사소하게 성당에서 나와 아침을 먹고, 사소하게 도서관에 갑니다. 사소하게 공부를 마치고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사소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도를 바친 뒤 잠자리에 들어요.

 

방종우 신부: 원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책에 담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저를 항상 설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저 역시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학창 시절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요즘은 시간이 없어서 소설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서점에 갈 일이 있으면 책들 사이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렘으로 가득해집니다. 이제는 대부분 학업과 관련된 글, 논문을 쓰고 번역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지만 어린 시절 책을 읽고 글을 썼던 경험들이 그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작업과 관련하여 추천해 주실 도서가 있으신가요? 추천하시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명형진 신부: 저는 소설책을 좋아합니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도 소설책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게 소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을 보여 주는 과 같습니다. 하느님께 삶의 위로와 공감을 청원하는 일도 소설에서 동기 부여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요즘 글을 잘 쓰는 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재미있는 책도 많습니다.

하지만 한 권만 추천해야 한다면 교회 서적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지난해, 캐나다인 사제이자 신학자인 로널드 롤하이저Ronald Rolheiser가 저술한 《나를 구하시지 않는 하느님》(이선정 옮김, 생활성서, 2025)을 읽었습니다.

이 책이 제 기도와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느님의 권능이 우리의 기대를 충족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님을,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고통과 죽음을 막기 위해 개입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희망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마다 당신의 외로움, 사랑, 십자가에 머물라고 초대하십니다. 그곳에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구조자가 아니라 구원자이십니다.

위로가 필요할 때, 지친 우리 삶에 하느님이 나를 구조하시거나 구원해 주시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읽어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하느님께서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를 구원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방종우 신부: 루리 작가의 소설 《긴긴밤》을 추천합니다.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와,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이 바다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길고 긴 밤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한 깊이 있는 물음과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지만 어른들에게도 큰 울림을 전해 줄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일이 많지만,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나기도 해요. 길게 보면 영원한 것은 없고, 사람들은 떠나가며, 심지어 누구나 소멸을 향해 나아가지요. 그런데 그렇게 길고 긴 밤에도 나를 따뜻하게 지켜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긴긴밤》은 때로 고통스럽고 슬픈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따뜻한 책입니다. 제가 이번 작업과 관련해서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은 종종 그늘지지만 그럼에도 그를 비추는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빛이 있고, 그 빛은 우리가 길고 긴 밤을 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며, 원수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스스로를 사랑하며, 미움으로부터 거리를 두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보다 더 분명한 사랑의 빛을 발견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다음 화에서 문재상 신부님, 심재현 신부님, 이한석 신부님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 명형진 신부, 문재상 신부, 방종우 신부,

심재현 신부, 은성제 신부, 이한석 신부의 신앙 이야기를 담은

《사제들의 시대 공감》을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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