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장대한 분노’, 정말 정의로운 전쟁일까

신학 칼럼

트럼프의 ‘장대한 분노’, 정말 정의로운 전쟁일까

무력과 복수의 시대 속에서 교회가 끝까지 평화를 이야기하는 이유

2026. 06. 23
읽음 10

1

0

 

⭐이런 고민이 있다면 추천해요

| 매일 전쟁 뉴스를 보며 마음이 지치고 무거워지는 사람

| 강한 힘만이 답처럼 보이는 세상이 두려운 사람

| 신앙이 현실과 사회 문제에 어떤 답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사람

 


 

🔎미국과 이란의 전쟁을 바라보며 교회가 왜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며 평화를 강조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힘과 분노가 당연해진 시대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대화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함께 생각해 보세요.

 


 

장대한 분노(Epic Fury).”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2026228일에 개시한 군사 작전의 공식 명칭입니다. 도대체 이란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미국은 무려 장대한분노를 품고 그들을 공격하는 것일까요?

 

트럼프 대통령에 따르면, 이란이 공격받아 마땅한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첫째, 지난 반세기 동안 이란 정권은 미국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의 무고한 시민을 겨냥한 살상을 자행했습니다.

✔️ 둘째, 이란 정권은 레바논, 예멘, 시리아, 이라크 등의 나라에 테러 조직을 결성하고 지원했습니다.

✔️ 셋째, 그들은 최근 시위에 나선 자국민 수만 명을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 넷째, 무엇보다도 이란은 핵무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려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만을 들으면, 이란은 악의 축(Axis of Evil)’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의 주장을 듣지 않더라도, 지금 그곳에서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미사일과 드론 부대가 과연 그들이 원한 도움일까요? 폭력에 시달리는 그들을 돕는다는 명분 아래 더 큰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평화로는 잃을 게 없다는 교회의 오래된 메시지가 지금 중요한 이유

 

전쟁과 평화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 다시 귀를 기울여 봅시다. 1939824, 비오 12세 교황님이 라디오 담화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화로는 잃을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전쟁으로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그로부터 약 90년 가까이 지난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교회는 여전히 이 말씀에 동의합니다. 교도권은 분명한 어조로 전쟁의 야만성을 비난하며, 전쟁에 대하여 달리 생각할 것을 요구합니다. 전쟁은 재앙이고, 결코 국가 간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길이 아니며, 지금껏 한 번도 그러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러지 못할 것이라 천명합니다.

 

교회가 말하는 평화는 결코 무장(武裝)’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불어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不在)가 아니고, 적대 세력의 균형 유지로 격하될 수도 없으며, 전제적 지배에서 생겨나는 것도 아닙니다(〈사목 헌장〉, 78항 참조). 그렇기에 폭력은 결코 적절한 대응이 아닙니다. 이에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님이 다음과 같이 호소하신 바 있습니다.

 

폭력은 악이며,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고, 인간에게 걸맞지 않는 것이다. 폭력은 우리가 믿는 진리, 우리 인간에 관한 진리와 상충되기 때문에 거짓이다. 폭력은 그것이 수호한다고 주장하는 것들, 곧 인간의 존엄과 생명, 자유를 파괴한다.”

1979929일에 아일랜드 드로게다(Drogheda)에서 한 연설 중

 


 

교회가 평화를 말하는 이유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은 교회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대화와 협상보다 군사력을 앞세우는 사건들이 우리를 경악시킵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어쩔 수 없는 무력 사용, 이른바 정당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비도덕적인 침략전쟁이 발발하는 비극적인 경우에, 침략을 받은 국가 지도자들은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국민과 영토를 방어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라 할지라도 정당한 무력 사용은 다음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고 교회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2309항을 통해 가르칩니다.

 

    • 공격자가 국가나 국제 공동체에 가한 피해가 계속적이고 심각하며 확실해야 한다.
    • 이를 제지할 다른 모든 방법들이 실행 불가능하거나 효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야 한다.
    • 성공의 조건들이 수립되어야 한다.
    • 제거되어야 할 악보다 더 큰 악과 폐해가 무력 사용으로 초래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 판단에서 현대 무기의 파괴력을 신중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교회의 이러한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트럼프의 장대한 분노작전은 정당한 전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적어도 미국의 무력 개입으로 인하여 제거되어야 할 악보다 더 큰 악과 폐해가 초래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죄한 어린이들을 비롯한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고, 세계 경제가 혼란에 빠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란의 잔인한 인권 탄압은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테헤란 시민들까지 전쟁의 참화를 감당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고통받는 이란 사람들을 위해 국제 사회가 채택해야 하는 조치는 어디까지나 국제법과 국가 간의 기본적인 동등 원칙을 온전히 존중하며 실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들에게 협상과 대화의 길이 열려야 하죠. 이와 관련하여 교회는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제재가 결코 국민 전체에 대한 직접적 처벌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 전체, 특히 그 가장 취약한 구성원들이 그러한 제재로 고통받게 되는 것은 정당한 일이 아니다.”

─ 《간추린 사회 교리》, 507

 


 

장대한 자비를 청하며

 

트럼프의 장대한 분노가 더욱 장대한 하느님의 분노를 부르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평화는 결코 폭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의 추구를 통해 날마다 조금씩 이룩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평화 증진에 대한 책임을 인식할 때에만 꽃필 수 있습니다. 분쟁과 폭력을 막으려면, 반드시 평화를 모든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는 가치로 뿌리내리게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어리석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동시에 반성과 후회를 통해 성장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성찰이 다음 세대에게 이어져, 그들이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하느님의 장대한 자비를 청합시다.

 

가끔 하느님께서 존재하지 않으신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여기저기에서 고질적인 불의와 사악함과 무관심과 잔인함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둠 속에서도 언제나 새로운 어떤 것이 생명의 싹을 틔우고 언젠가는 열매를 맺는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복음의 기쁨〉, 276

 


 

🔗 이 주제가 흥미롭다면, 더 읽어 보기

 

Profile
수원교구 사제.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다른 분들이 함께 본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