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는 화해를 핵심 메시지로 삼았습니다. 화해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완전한 평등을 회복하는 것으로 모든 인간의 평등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글 | 호세 이냐시오 곤살레스 파우스José Ignacio González Faus (예수회, 그리스도교와 정의 연구센터)
바오로는 화해라는 카테고리를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의미로 사용한 최초의 저자입니다. 그가 주로 사용한 동사는 ‘katallassein’으로 ‘화해하다, 변경하다’라는 의미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사전상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일반적으로 자주 쓰는 단어가 아니라 외교 분야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로, 이를 통해 우리는 계약이라는 개념까지 연상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는 주어가 하느님일 때는 이 동사를 능동태로 썼으며, 주어가 사람일 때는 수동태로 사용했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은 ‘화해된’ 분이 아니라 ‘화해하시는’ 분이시며 하느님과의 화해는 동등한 두 사람의 단순한 ‘화해’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이러한 어감을 고려하여 신학적인 내용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바오로의 모든 가르침의 출발점이자 집약체인 기본 본문은 “곧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2코린 5,19)입니다. 여기에는 네 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a) 하느님은 강생을 통해 인간의 존재론적 지위를 변화시키셨고 ‘비할 데 없는 존엄성’을 갖게 하셨습니다. 또 교부들의 말처럼 하느님은 인간이 하느님이 되게 하시려고 몸소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과 평등한 존재론적 지위를 갖게 된 인간은 ‘화해하다’라는 동사를 신학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을 지니고 그리스도 안에 한데 모이는 것을 추구하며 이미 하느님과 ‘화해(평등)’한 적이 있지만 인간의 죄로 인해 이 화해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이렇게 깨진 화해를 회복하는 중이십니다. 바오로가 화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화해는 100% 그리스도론적인 단어입니다.
b) 이 신성한 결정은 너무나 굳건하여 하느님은 인간이 신성한 존엄성을 저버린 순간들을 곱씹지 않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행동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는 결정적인 화해입니다.
c) 하느님의 행동은 인간뿐만 아니라 세상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목표인 하느님의 행동에 담긴 역동적 성격을 두드러지게 합니다.
d) 스스로 하느님의 행동에 영향을 받음을 알고 있는 인간(그리스도인)에게 하느님은 전달자와 책임자라는 사명과 메시지를 주십니다.
최초의 근본적인 평등과 뒤이어 회복된 평등은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 우리 사명이 됩니다. 바오로는 우리를 위해 몸소 돌아가시고 죄가 되신 헌신적인 예수님의 삶을 통해 하느님과 화해하라고 백성에게 요청합니다(2코린 5,20; 5,21).
이 글은 스페인 학술지 <Razón y Fe>에서 발췌 및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원문 출처 ■
González Faus, J. I. (2019). Reconciliación. Imperativo del momento, mensaje bíblico y tarea cristiana.
<Razón Y Fe> Vol. 280(1442), pp.289-299.
https://revistas.comillas.edu/index.php/razonyfe/article/view/1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