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는 화해를 핵심 메시지로 삼았습니다. 화해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완전한 평등을 회복하는 것으로 모든 인간의 평등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글 | 호세 이냐시오 곤살레스 파우스José Ignacio González Faus (예수회, 그리스도교와 정의 연구센터)
지난 시간에 이어 화해를 다룬 바오로 서간의 내용을 살펴보며 바오로의 중심 메시지를 구성하는 네 가지 논제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느님이 행동하신다는 의미인 능동태의 화해는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우리 마음에 부어진 하느님의 사랑 덕분에(로마 5,5) 우리는 더이상 원수도, 불경한 자도 아닙니다(로마 5,6). 통치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이제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2코린 5,15). 이렇게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구약 성경의 선포가 확인되고 완성됩니다.
화해는 죄 많은 피조물인 우리가 자아를 극복하고 하느님과 관계를 맺게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하느님과 관계를 맺습니다. 이것이 바오로가 생각한 강생의 근본 의미입니다. 우리 ‘육신’은 여전히 죄를 짓겠지만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실현되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이며 하느님은 우리 안에서 움직이는 분이십니다(로마 5,5). 우리 안에는 여전히 옛것과 새것(육체와 성령)이 있지만 우리는 성령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로마 8,4). 바오로는 인간이 겪는 내면의 갈등을 고려하여 인간의 상황을 비극적이라고 보았지만(로마 7,24), 그래도 기쁨은 싹틉니다(로마 5,11).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권고하시며 선물을 받으라고 청하십니다(2코린 5,20).
둘째, 화해를 수동태의 의미로 보면 우리와 화해하시는 하느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따라서 화해에는 의화(하느님의 은총으로 인간에게 일어난 내면적 변화)가 포함됩니다(2코린 5,21). 우리는 화해되었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화해는 구속과 평화와도 연결되며 바오로 사목 서간에서는 창조와 연결됩니다. 이처럼 화해는 매우 포괄적인 단어입니다.
의화와 화해는 서로 접점이 있지만 우리 안에 사랑을 일깨우는 것은 다름 아닌 화해입니다. 의화는 믿음을 일깨우고 화해는 사랑을 일깨웁니다. 하느님은 우리 죄를 따지지 않으시지만(2코린 5,19) 단순히 명목적인 방식이 아니라 인간에게 청하실 정도로 자신을 낮추십니다. 화해의 핵심은 우리를 대신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2코린 5,20; 5,14).
셋째, 어떤 의미에서 바오로는 우리의 화해는 이루어졌지만(로마 5,9-11) 세상의 화해는 아직이라고 단언하는 것 같습니다(2코린 5,18). 아마도 이것이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서 화해하기 전의 적대감에 대해 말하지 않은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간에서는 이를 언급합니다(로마 5,10). 주된 내용은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적대감(로마 1,18-32)이지만 여기에는 인간의 행동 때문에 좌절한 모든 피조물의 기대도 담겨 있습니다(로마 8,19).
넷째, 세상의 화해(2코린 5,19-20)는 단순히 개인의 죄를 용서하거나 고려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악한 행동에서 선을 끌어내는 법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화해란 결정적인 ‘만물의 복원’이며 그 기초는 이미 놓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세상의 화해를 암시하는 자세한 구절이 있습니다. 마카베오기 하권 5장 19절은 신성한 곳은 사람을 위해 지어졌지 사람이 신성한 곳을 위해 지어지지 않았으므로 신성한 곳은 사람의 형벌을 함께 겪고 이제 지극히 높으신 주님의 화해로 화려하게 재건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재건된 신성한 곳은 당시 성전이었으며 이제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내용을 종합하면 바오로는 자신의 직분을 화해의 봉사라고 말하고, 자신의 메시지를 ‘화해하십시오’라고 요약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삶-죽음-부활로 일어나는 화해는 결정적일지라도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바오로의 모든 말과 행동은 화해의 메시지이자 사목이며(2코린 5,18-19), 인간을 하느님의 동반자로 불러 모아 하느님의 행동을 온 인류에게 실현합니다(2코린 5,20). 하느님의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함께 정해진 목표(로마 5,9: 진노에서 구원받음)에 도달해 갑니다.
그러므로 바오로의 설교는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진 화해를 발전시키고 수동적으로 화해한 우리를 능동적으로 만들어(로마 5,10)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깁니다.
*이 글은 스페인 학술지 <Razón y Fe>에서 발췌 및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원문 출처 ■
González Faus, J. I. (2019). Reconciliación. Imperativo del momento, mensaje bíblico y tarea cristiana.
<Razón Y Fe> Vol. 280(1442), pp.289-299.
https://revistas.comillas.edu/index.php/razonyfe/article/view/1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