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면봉

영성과 신심

하얀 면봉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기억하며

2025. 0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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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부활 대축일 다음 날인 2025421,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동료 신부로부터 전해 받았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것은 신학교의 동료 신부들과 함께 부활 휴가를 맞아 떠났던 어느 낚시터의 좌대 위에서였습니다. 물론 교황님께서 위독하시다는 이야기는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접했지만, 바로 전날에도 베드로 광장에 모습을 보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이 갑작스러운 죽음이 너무도 당혹스러웠습니다. 부활의 기쁨을 만끽하러 왔던 저희는 다들 씁쓸한 얼굴로 침묵만을 지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그 슬픔과 당혹감이 저희만의 감정은 아니었겠지요. 온 세계의 수많은 이들이 교황님을 추모하고 기억한다는 언론의 보도를 지켜보며 저는 느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울어준 사람, 누군가를 위해 울어야 한다고 외쳤던 한 사람이 있었고, 이제는 우리가 그를 위해 울고 있구나.’라고 말이지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했던 교황

문득 20133, 교황님께서 즉위하신 뒤 처음 맞는 성목요일에 로마 외곽의 소년원을 방문하셔서 재소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던 일화가 생각납니다. 백인과 흑인, 여성과 남성, 가톨릭과 이슬람 신앙을 가리지 않고 교황님께서는 재소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그 발에 입을 맞춰 주셨지요. 전임 교황님들께서 전통에 따라 라테라노 성당에서 사제들의 발을 씻겨 주셨던 모습과 너무 달랐기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교황님의 이 첫 번째 파격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다가감이라는 당신의 교황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에 이어지는 교황님의 행보 역시 이러한 당신의 지향성을 잘 보여 주었습니다. 같은 해 7, 교황님께서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남쪽에 있는 작은 섬 람페두사를 방문하셨습니다. 이름조차 생소한 이 작은 섬을 교황님께서는 당신의 공식적인 첫 사목 방문지로 선택하셨던 것이지요. 시칠리아섬보다 오히려 북아프리카 튀니지에 더 가깝다는 이 섬은 그 지리적 특성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넘어오는 건널목 역할을 했고, 1998년에 이주민과 난민을 위한 수용 시설이 생긴 이래로 수많은 사람이 이 섬을 거쳐 갔습니다. 물론 섬에 도달하지 못하고 바닷속에서 목숨을 잃어갔던 사람들의 숫자도 엄청났습니다.

바로 그 섬 람페두사에서 교황님께서는 가난과 폭력을 피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의 고통그 고통을 외면하는 현대인들의 무관심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세계화의 물결과 더불어 무관심의 세계화가 지배하는 현대 세계 속에서, 교황님은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관심이라는 복음의 근본정신을 다시 불러일으키고자 하셨던 것이지요.

 

이듬해인 20148, 아시아 청년대회를 맞아 한국에 오셨을 때도 교황님께서는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방한 기간에 세월호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다신 것은 물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 위로하셨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쌍용차 해고 노동자, 용산 참사 피해자 등과 함께 명동 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기도 하셨습니다. 세월호 유족에게 다가가 위로한 것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라고 답하신 말씀이 우리들의 마음을 울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교황님의 관심이 가난한 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난민과 참사의 희생자, 동성애자와 여성에게 더 큰 관심을 보이셨지만, 환경과 기후 위기에도 큰 관심을 보이셨고, 교회를 개혁하고 부정과 부패를 바로잡는 일에도 앞장서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당신에게 맡겨진 모든 신자, 아니 더 나아가 세상 모든 이들과 피조물을 마음에 품으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교황이라는 이름보다, 복음이 모든 이를 향해 열려 있듯이 모든 이의 교황으로 불리기를 원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 그분께서는 세상 모든 이들 위에 군림하기를 원하셨던 것이 아니라, 참으로 세상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당신을 내어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얀 면봉을 닮은 프란치스코 교황님

사실 저는 로마에서 공부했던 신부님들과 달리 교황님을 직접 알현할 기회도 없었고, 로마를 방문했을 때 그저 먼 발치에서 교황님을 뵌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도 교황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꼽자면, 제가 독일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어느 한국 유학생이 로마를 다녀와서 제게 들려주었던 이야기입니다. 로마로 순례를 다녀온 그 학생이 제게 호들갑을 떨며 말했습니다.

신부님, 신부님, 제가 교황님을 뵈러 일부러 주일 삼종 기도 시간 맞춰서 베드로 광장으로 갔거든요? 저 멀리 건물에서 창문이 열리는데, 너무 멀어서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고요. 열린 창문으로 뭔가 나타나는 것 같긴 한데, 얼굴은 하나도 안 보이고, 그냥 하얀 면봉이 창문으로 걸어오는 것 같더라고요. 교황님을 뵈러 갔는데 그냥 면봉만 보고 왔어요.”

저는 크게 웃으면서 교황님께 그게 무슨 버릇없는 소리냐고 말했지만, 며칠 뒤에 문득 교황님은 정말 면봉을 닮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귀를 팔 때나 코를 팔 때 면봉을 사용하거나, 상처가 나면 면봉에 약을 묻혀 환부에 바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황님의 삶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장 더러운 곳, 쉽게 손이 닿지 않는 깊숙한 곳에 들어가기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원하셨습니다. 깊은 어둠 속에서 그 더러움을 닦아 낼 수만 있다면, 당신의 몸이 더러워지는 것은 개의치 않으셨을 것입니다. 또한 면봉에 약을 묻혀 환부에 바르듯, 교황님께서는 복음의 약을 당신 온몸에 두르고 세상의 상처 한복판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새하얀 면봉은 더러워지기 위해서 세상에 존재합니다. 더러워지는 것이 바로 면봉의 존재 이유입니다. 어쩌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무관심과 증오를, 이기심과 허영심을, ‘우리를 주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모든 것을 닦아 내기 위해 우리 곁에 머무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러워지고 버려지는 것,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원치 않는 길이겠지만,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그 더렵혀짐과 버려짐은 끝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부활하셨고, 그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희망을 선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황님께서 걸어가셨던 면봉과 같은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확고한 희망없이는 절대로 걸어갈 수 없는 길이겠지요.

그분께서 살아 계셨더라면, 교황님이 하얀 면봉을 닮았다는 그 학생의 말에 껄껄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습니다.

 

허허, 내가 면봉을 닮았다니 그거 참 좋구나! 누군가의 더러움을 닦아 내다가 내가 더러워진다고 한들 그게 뭐 대수냐?

그 사람만 깨끗해질 수 있다면, 난 그걸로 족하다!”

Profile
대전교구 사제. 독일에서 카리타스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생을 양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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