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축하합니다”
그날도 여느 부활절 다음 날 아침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전날 미사에서의 환희와 기쁨이 잔잔히 마음을 감싸던 그때, 교황님의 선종이라는 믿기 어려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마음이 이랬을까요? 기쁨은 순식간에 슬픔으로 바뀌고, 마음은 깊은 침묵에 잠겼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부활을 축하합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힘을 다해 부활 인사를 전하시던 모습은, 우리가 뵌 교황님의 마지막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분과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우리는 모두 이미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월, 병세가 깊어 입원하셨을 때조차 기적처럼 다시 회복하셨기에, 이렇게 갑작스러운 이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평소 소원대로 병원이 아닌, 집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으셨습니다. 주치의는 교황님의 임종이 고통 없이 평화로웠다고 전했습니다. 바티칸은 이 커다란 슬픔 속에서 장례 준비로 분주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마지막 인사
처음 선종 소식을 들었을 때, 믿기지 않아 “설마 아니겠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 교황님이 일하셨던 집무실 문과 산타 마르타 숙소의 문이 봉인되는 장면을 보았을 때 비로소 그분의 부재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분명 어제까지 말씀하시고, 움직이시고, 살아 계셨는데,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건가.’ 그렇게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허전함과 슬픔이 가슴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이틀 후, 교황님의 시신은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겨졌습니다. 누구보다 사람들과 함께하길 원하셨던 분이기에, 이제 당신이 사랑하셨던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 하나인 바티칸은 교황님의 마지막을 배웅하려는 이들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조문 첫날인 4월 23일 수요일은 원래 자정까지 조문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다음 날 새벽 5시 30분까지 조문객들의 발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새벽부터 줄을 서고, 몇 시간의 기다림 속에서도 그 누구도 힘들어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교황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으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성 베드로 성당 맨바닥 위에 놓인 소박한 나무 관 속에 교황님은 평온한 모습으로 누워 계셨습니다. 엊그제까지 숨이 차고, 고통으로 부어올랐던 얼굴은 어느새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가지런히 모은 두 손엔 묵주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 희년을 맞아 로마를 찾은 순례자들과 로마 시민들, 먼 곳에서 급히 달려온 이들로 성 베드로 성당은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기억 하나. 목자의 어깨
제 마음속에는 교황님에 대한 두 개의 장면이 사진처럼 선명하고 강렬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2020년 3월 27일 비 내리는 금요일 저녁, 교황님은 코로나의 종식을 기도하며 홀로 성 베드로 광장에 서 계셨습니다. 광장의 돌바닥은 비에 흠뻑 젖어 있었고, 간간이 들리는 구급차의 긴급한 울림만이 광장의 깊은 침묵을 깨트리고 있었습니다.
성 마르첼로 성당에서 모셔 온 십자가의 예수님이 흘리시는 피는 빗방울이 되어 마치 땅 위로 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광장 가운데에서부터 빗속을 뚫고 불편한 다리를 절룩이시며 홀로 예수님을 향해 걸어가시는 교황님의 뒷모습은 세상의 모든 아픔과 눈물, 어려움들을 어깨에 다 짊어지신 것처럼 외롭고 힘겨워 보였습니다. 마치 당신의 목에 걸려 있는 십자가에 새겨진, 양을 어깨에 멘 목자의 모습과 꼭 닮았습니다.
기억 둘. 한국은 순교자들의 교회입니다
2015년 3월의 봄 어느 날, 성 베드로 성당에서는, 2014년 8월 교황님이 한국을 방문하셔서 주례하셨던 124위 시복에 대한 감사 미사가 있었습니다. 이 미사에 앞서 교황님은 모여 있던 한국 신자들을 깜짝 방문하셨습니다. 이때 교황님께서 하셨던 말씀 중에 두 가지가 깊은 감동과 함께 지금까지도 화두처럼 남아 있습니다.
하나는, 한국은 지난 200년 동안 평신도들에 의해 성장해 온 교회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한국 교회가 순교자들의 교회임을 잊지 말라는 당부였습니다. 종교적 안일함에 빠지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사도적 열정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신도로서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로마에서 첫발을 내딛는 저에게는 이 말씀들이 캄캄한 밤바다를 비추는 한 줄기 등대의 빛처럼 다가왔고, 제가 가야 하는 길을 알려주는 말씀들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그리고 하얀 장미 한 송이
긴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실 때마다 어김없이 성모 마리아 대성전의 ‘로마 백성의 구원이신 성모님(Salus Populi Romani)’ 성화 앞에서 기도하셨던 교황님은 성 베드로 성당이 아닌 성모 마리아 대성전을 영원한 안식처로 삼으셨습니다. 몸이 편찮으신데도, 재임 동안 쉼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하셨던 교황님은 비로소 편안히 쉬고 계십니다.
그분의 무덤은 자신의 삶처럼 단순하고 소박합니다. 화려한 장식 하나 없이, 조부모님들의 고향인 리구리아에서 가져온 대리석에 오직 ‘FRANCISCVS’라는 이름만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얀 장미 한 송이가 무덤 위에 놓여 있을 뿐입니다. 이 하얀 장미는 교황님이 아르헨티나에 있을 때부터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의 깊은 영적 유대감을 상징합니다. 교황님은 당신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성녀께 자신이 책임지고 일을 맡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고, 그러면 그 기도의 응답으로 거의 항상 하얀 장미 한 송이를 받았다고 합니다.
2013년 9월, 시리아의 평화를 기원하며 성 베드로 광장에서 기도를 하실 때 성모님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시 몇 편이 낭송되었습니다. 이 기도 이후에도 교황님은 바티칸 정원에 핀 하얀 장미 한 송이를 선물로 받으셨습니다.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 그리고 교황님은 하얀 장미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 꽃은 이제, 영원히 그분 곁에 머물 것입니다.
평화, 기도
부활절 아침 짧은 부활 축하 인사를 당신의 목소리로 전하신 후, ‘로마와 온 세상에 보내는 부활 메시지와 교황 강복(Urbi et Orbi)’은 라벨리 대주교의 목소리로 전해졌습니다. 교황님은 분열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세상에 그리스도 부활의 선물인 평화가 가득하기를 희망하셨습니다.
“오늘, 저는 우리 모두가 다시 희망을 품고 서로를 신뢰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평화에 대한 희망은 교황님이 세상에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교황님은 당신의 이 마지막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시려고 병원에서 기적적으로 퇴원하셨고, 안간힘을 다해 부활절까지 버티신 것일지도 모릅니다.
항상 불행하고 나약한 이들을 위로하셨고,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셨으며,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 곁에 머무르셨고 항상 당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셨던 겸손하고 자비로우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더 이상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이 교황님의 장례 미사 강론에서 ‘하늘에서 교황님이 이제 우리를 위해 축복해 주시길’ 청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기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마지막 희망이신 평화를 위한 우리의 모든 노력과 활동 안에서 교황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합니다. 마치 엠마오로 떠났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다시 만났고 그분을 다시 알아봤던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