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소설책을 한 번 읽어 볼까

가톨릭 예술

하루키의 소설책을 한 번 읽어 볼까

일상을 여행하고 싶을 때, 행복이 무엇인가 고민할 때, 아니 그냥 책을 읽고 싶을 때

2025. 0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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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어야 해!”

어릴 적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씀이다. 퇴근길에 누나와 나에게 줄 책 한 권씩 사 들고 오시는 아버지를 피해 어떻게 숨을까 늘 고민했었다. 나의 이런 잔꾀와 달리, 누나는 아버지와 함께 상을 펴 놓고 앉아 쉬운 책부터 어려운 책까지 숨죽여 읽었다.

그 시절의 내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나는 어느새 두세 권의 책을 내놓았고, 또 두어 권의 책을 번역해 왔다. 내 치부를 아는 누나 보기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물론 읽지 않으면 쓸 수 없다. 내가 쓴 책이야 연구하는 학문에 관련된 것이지만, 나의 집필 의지를 북돋아 주는 수단은 일과를 마치고 사제관에 돌아와 읽는 세상 사는 이야기의 책들이다.

 

여기서 일과 시간의 책과 여가의 책을 구분해야겠다. 사실 하루 종일 책을 읽는 것이 나의 소임이기 때문에, 일과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은 나의 소임이자 책임이기도 하다. 나는 신학을 공부하고 신학생들에게 그것을 가르친다. 가르치려면 공부해야 하고, 공부하려면 읽고 분석해야 한다. 하루 종일 글자와 싸우는 것이 나의 일이다. 읽히지만 읽히지 않는 것 같은 우리말부터, 아직도 완전히 눈에 익을 수 없는 외국말까지. 책을 쌓아 놓고 읽고 요약해서 분석하는 일은 나에게 과업이자 때로는 무게다.

하지만 일과 후 읽는 소설책과 에세이는 다르다. 하루 종일 글자와 싸운 날에도 세상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책과 에세이는 나의 대화 상대가 되어 준다. 가벼운 말로, 하지만 묵직하고도 따듯한 표현으로 나를 두드려 주는 책들은 복잡했던 머릿속을 평화로 이끌어 준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시간은 즐기는 시간

나름의 책을 선택하는 원칙이 있다. 책을 선택하는 원칙은 재밌는 책이다. 인터넷 서점의 베스트셀러라면 재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인터넷 서점의 베스트셀러가 아니더라도 팟캐스트의 책 추천, 혹은 인터넷 블로그의 책 추천을 눈여겨보고, 또 누군가가 재밌게 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책을 바로 장바구니에 담아 둔다. 그중 대부분이 소설책이거나 에세이다. 자기개발서나 심오한 학문이 담긴 책은 잘 선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책을 펴 드는 시간은 지식을 쌓기보다는 여가를 즐기기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공들여 책을 펴낸 작가분들께는 용서를 구할 말이지만, 책을 읽다 중간에 덮는 책도 있다. 가끔 무리하게 발동한 탐구 욕구가 두꺼운 전문 서적을 선택하는 실수를 범할 때가 그러하다. 그럴 땐 여지없이 마무리를 못 짓고 만다. 여가를 방해하는 과한 에너지 소모는 도서관에서 하고 싶지, 사제관 탁자에서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는 재미없는 책과 받아들이기 어려운 스토리의 책(다시 한번 작가분들에게 용서를 구한다)을 만났을 때다. 재미없는 책이야 나름의 타당한 핑계를 대고 아깝지만 책을 덮는다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스토리의 책은 몇 번이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읽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가 잦은 것은 아니지만, 그중 몇몇 책은 다수의 문학상을 받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책도 있다.

 

문학적 소양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누가 뭐래도 유명하다는 바로 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책이 나에겐 그러했다. 소설 《노르웨이의 숲》(1987, 상실의 시대)은 읽는 내내 약간의 불편함이 감돌았다. 문학의 예술적 감각을 읽지 못한 것일까. 나는 애써 책을 다 읽었지만, 그 이후로 하루키의 작품 세계에 다가가 보려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책 이야기를 나누는 지인에게서 책 한 권을 선물받았다. 그것은 하루키의 달리기 에세이인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2007)였다. 책을 받고 하루키? 에세이?’ 하는 생각이 지나가고, 이내 달리기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막 마라톤에 재미를 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키와의 소설적 인연은 그리 쉽게 맺어지지 않았지만, 그 유명한 작가의 취미가 마라톤이라니 흥미를 갖고 책을 펼쳐 봤다. 책은 단숨에 완독할 수 있었다. “역시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말이 나왔다. 한편으로, 소설을 읽으며 거북스러워했던 나의 마음을 되돌려 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하루키의 소설에는 아직 접근하지 못했다. ‘아직도 세상에 재밌는 책이 너무 많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의 에세이 제목들은 나의 눈길을 끌어당겼다. 이후에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2015)를 읽었다. 그리고 이번 겨울 방학을 보내며 내 눈을 멈추게 한 책은 하루키의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2024)이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

 소확행이라는 말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 때가 있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 살아가자는 말로, 당시 행복을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소소한 경험을 나누는 것이 유행이었다.

나는 겨울 방학을 맞이한 신학생들을 신학교에서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무엇일지 고민하며 하루키의 책을 펼쳐 들었다.

 

이 책에는 하루키의 마라톤, 여행, 독서 그리고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조차 대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면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벗어난다. 또 베스트셀러 작가의 에세이는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고 곱씹어야 그 깊은 의미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조차도 보기 좋게 벗어난다. 마라톤, 여행, 독서, 그리고 고양이. 그야말로 하루키의 일상이 담겨 있다. 하루키가 책을 시작하면서 밝힌 이 책의 기본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가 건강이고 둘째가 문체다.”(12)

건강은 흔히 예상하는 마라톤으로 찾는 육체적 건강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러했듯, 그는 육체적인 건강만을 위해 달리지 않았다. 그리고 여행, 독서, 고양이는 그의 삶을 유지시켜 주는 건강 비결이다.

 

하루키는 그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문체에 무게를 담아 짓눌러 쓰지 않았다.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듯, 자신의 일상을 책을 읽는 독자에게 나눈다. 그의 일상에서의 그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어느새 그것을 읽는 나의 삶을 여유롭게 만들었고, 내 하루를 써 내려가는 문체의 무게 또한 가볍게 만들어 건강하게 했다.

 

인상적인 몇 부분만 나누면 이렇다. 먼저 내 눈길을 사로잡은 구절은 초반부에서 전해지는 마라톤과 소설 쓰기를 비교한 부분이다. 마라톤은 인내와 끈기를 요구하는 삶의 다양한 일에 빗대어진다. 실제로 달려 보지 않은 이들도 마라톤이라는 그 끈질긴 노력의 여정을 알 것이다. 아직 42.195km, 이른바 풀코스에 하프밖에 도달해 보지 못한 나이지만 하루키가 건네는 마라톤과 소설 쓰기’(20)가 과연 깊이 와 닿는다.

 

하루키가 설명하듯, 흔히 사람들은 소설가의 작업을 영감이 떠오르면 일필휘지로 작성하는 듯, 혹은 밤새 원고지를 구겨 방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모습으로 상상할지 모른다. 하지만 소설을 쓰는 것은 대체로 검소하고 과묵한 작업이며, 무질서하지 않으며, 마치도 마라톤과 같이 계속해서 횟수를 늘려가고 한계를 조금씩 올려 감으로써 자신 속에 잠재해 있는, 자기가 아직 모르는 것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고,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끌어 내보고 싶다는”(22) 그런 작업이다.

삶에서 이와 같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누군가는 애써 이룬 성공을 운이 좋아 얻어졌다 시기할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는 마라톤 출발 지점에 서는 용기, 숨이 차올라도 계속해서 횟수를 늘려 가고 한계를 조금씩 올려 감으로써 자신을 끌어내는 끈기, 반복된 롤링(달리기에서 발을 구르는 반복된 행위를 롤링이라고 한다)에도 무념무상으로 나아가는 성실함, 그리고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인간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신경에 거슬리는 자잘한 마음의 앙금 같은 것이 배 속에 가득히 남게”(22) 되더라도 자신을 다독일 수 있는 관대함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 그저 달리기가 좋아서가 아니라도 달리는 이유, 공부가 좋아서가 아니라도 공부하는 이유, 그리고 보이지 않더라도 하느님을 찾는 수련의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하루키의 일상을 통해 나의 행복을 새롭게 찾게 된 시간

 이 책을 펴 들었을 때는 나도 잠시 휴식을 취하러 사제관을 떠나 있었다. 한가한 오후, 소파에 앉은 나의 여행이 하루키의 여행을 마주했다. 떠날 줄 모르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쁨으로 내모는 평범한 한국인 가운데 하나인 내가 나선 여행을, 떠날 줄 알고, 즐길 줄 알며, 자신을 회복하는 방법을 아는 하루키가 응원하는 듯했다.

그렇게 이 책은 여행의 여유와 편안함을 알린다. 극단적 중국요리 알레르기가 있음에도 소설의 취재 삼아 떠났던 중국과 몽골 여행 이야기(56~72), 멋진 자동차를 타고 버몬트주로 떠난 짧은 여행(83~87), 소설의 초고를 끝내고 자메이카로 떠난 이야기(156~170) 등 그의 여행은 흔히들 사진 찍고 넘어가는우리네 여행과 달리 여유와 평화를 느끼게 한다.

짐작건대 그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여행에는 늘 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여행 중에 읽을 만한 책을 찾는 것을 즐거움’(87)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멀리 떠나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을 통해 하루키가 전하고자 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비싼 비행기와 호텔 값을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산책 삼아 느긋하게 근처 빵집에 가서, 내친김에 잠시 커피를 마시며 갓 구워낸 따듯한 빵을 손으로 찢어서 먹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말하듯, 우리의 일상 속 여행에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담겨 있을 것이다.

주일 아침, 느긋이 일어나 커피 한잔 마시고 채비를 차려 성당에 가서 주일 미사에 참례하고, 진하게 미사를 봉헌한 후, 돌아오는 길에 나를 일요일 점심의 요리사로 만들어 줄 짜○게티한 봉지 사 온다면,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하루키의 일상에 젖어 들어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일상은 나의 일상을 바라보게 했다. 그가 눈여겨보던 주위의 사물과 길거리의 고양이는 내 주변의 식물과 사람들을 작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보게 했고, 그가 힘주어 도약했던 노력을 통해 얻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나로 하여금 행복을 향해 다시금 도약하게 했다.

 

일상을 여행하고 싶을 때, 행복이 무엇인가의 고민에 심취해 있을 때, 아니 그냥 책을 읽고 싶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제 하루키의 소설책을 한 번 읽어 볼까?!”

 

Profile
인천교구 사제. 로마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에서 교의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에서 교의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자들과 가까워지는 신학을 지향하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공부는 결국 믿는 이들의 기도로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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