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힙’을 위한 나라는 있다!

영성과 신심

‘텍스트 힙’을 위한 나라는 있다!

도서관, 서점, 서재, 카페, 내 방의 책상이 영혼의 양식인 이유

2025. 0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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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을 시작하며, 가장 주목받은 행사로 아무래도 서울국제도서전을 먼저 꼽아야 할 것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 줄고, 독서 행위 자체가 사회적 관심의 바깥으로 밀리며, 출판 위기라는 우울한 이야기만 들리던 차에, 전적으로 사전 예매로 진행된 이번 도서전 입장권이 일찌감치 매진이었다는 소식이 반가웠습니다.

 

문화와 관련해서는 대개 K-팝이나 해외 스타들의 내한 공연, 화제가 되는 영화나 드라마, 또는 요즘 부쩍 향유하는 사람이 늘어난 클래식 공연에 관심을 두던 언론이 이례적이라 할 만큼 서울 도서전에 대해 소개와 자세한 보도를 쏟아내는 것도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참여자의 대부분이 젊은이들이라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직접 가 보지는 못했지만, 방송이나 여러 영상을 통해 넓은 박람회장이 도서전 내내 방문한 젊은이들로 활기찬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출판사의 편집자들이 인터뷰를 통해 이번 도서전을 위해 기획한 책들을 정성스럽게 소개하는 모습들도 흐뭇했고, 새로 출판사를 설립하고 도서전에 참여한 한 유명 배우가 독자들과 진지하게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는, 도서 문화에 기여하고자 많은 이가 마음을 모으고자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도서전에 열광하는 풍경이 올해만의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더 넓은 계층으로 확대되기를 바라는 바람이 컸습니다.

 

서울국제도서전에 관한 다양한 소식을 찾아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독서와 공간의 관계였습니다. 도서전은 책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적절한 공간을 얻음으로써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독서와 공간의 관계

 

작년, 올해에 걸쳐 책에 관한 신조어가 종종 사람들의 입에 올랐는데, 바로 텍스트 힙이었습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책을 읽는 것이 고루하거나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라 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그러니까 멋있고 시대를 선도하는 모습으로 인식된다는 표현입니다.

 

그 조짐은 언젠가부터 책을 읽는 모습이나 책의 표지를 많은 사람들이 즐겨 SNS에 올리거나, 유튜브에서 책을 소개하는 개인 방송 중에서 광범위한 구독자나 조회수를 지닌 채널들이 등장하는 데서 이미 감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젊은 층에 전폭적인 인기를 얻는 여러 아이돌이 꽤 진지한 책을 팬들에게 소개하고 추천하는 것이 환영받는 요즘에는 이미 이러한 현상이 분명한 실체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언론이 올해 들어 깊은 관심을 가지고 텍스트 힙을 언급하고 문화 현상으로 분석합니다. 이는 책을 사랑하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지적 풍토를 기대하는 많은 사람이 책에 관한 관심으로 본격적인 대중화의 길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지, 아니면 잠깐의 사회적 관심이 물거품처럼 꺼지고 평생에 걸쳐 책을 사고 읽는 것이 소수 애독자의 고급스러운 도락으로 남을지 갈림길에 있다는 절박함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서전이 성황리에 끝났다는 기분 좋은 소식은 텍스트 힙의 물결 속에서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위한 공간을 재발견하도록 초대해야 하는 과제를 고민하게 합니다.

 


 

텍스트 힙이라는 유행 속에서

 

인공 지능의 특이점을 통과하는 이 시대에 여전히 책과 독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두고 토론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책과 독서의 항구한 가치를 전제하고, ‘텍스트 힙이라는 갑작스러운 유행 속에서 책에 대한 관심을 전반적으로 높이고 더 많은 사람이 책을 통해 인생의 즐거움과 지혜를 얻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무엇일지 고민하면서, 책에 대한 애정은 공간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고 권고하고 싶습니다.

 

공간은 시간과 함께 경험의 근간이 됩니다. ‘텍스트 힙이 신기루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실체를 가지고 체화되기 위해서는 책과 독서 행위가 현존하고 기억으로 보존되고 상기되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개 책과 독서를 담고 있는 공간에 대한 소중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책과 독서를 통해 힘과 위로를 얻는 공간을 발견합니다. 그 공간 안에 자리하는 것은 문자적 정보로 대체 할 수 없는 심도 있는 인간학적 체험입니다. 우리에게 도서관이, 서점이, 서재가, 카페가, 그리고 내 방의 책상이 사치가 아니라 영혼의 양식인 이유입니다.

 

많은 사람이 세계의 아름다운 서점, 황홀하게 하는 도서관을 보여 주는 화보집이나 다큐멘터리를 만나면 절로 잠시 잊고 있던 책에 대한 관심이 다시 자라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골목에서 소담한 책방을 발견하고 들어가서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책들을 살펴보다 한 권 사서 가지고 나올 때 느끼는 잔잔한 설렘과 기쁨은 책이 인생의 벗이라는 것을 말없이 알려 줍니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들어가 서가를 거닐며 책들을 만져가며 삼매경에 빠져들 때, 몰입의 경험은 정신과 마음에 활기를 줍니다.

 


 

교회와 텍스트 힙

 

텍스트 힙이 특히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을 위해 책과 독서 행위가 숨 쉬고 자라고 안식처가 되는 공간을 찾고 간직하고 지키고 새롭게 마련하는 사회적 노력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러한 노력에서 교회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여러 공간이 책을 만나고 독서의 즐거움을 체험하게 하는 중요한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성당 교리실에 마련된 책장과 장서들에서 독서의 원체험을 만난 기억을 가진 세대가 있습니다. 교회는 청소년과 젊은 세대들에게도 이러한 경험을 공유할 기회를 줄 의무가 있습니다. 예전에 청소년기에 본당 사제가 추천하는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많은 신앙인이 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전통이 오늘날에도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교회 출판사들이 사회에도 호소력을 갖는 훌륭한 책을 꾸준히 출판하고 널리 알리도록 교회 전체가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책의 소중함을 일찍부터 알았고, 서양 사회의 정신적 깊이는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독서 문화 안에서 가능했습니다. 교회가 책이 있는 공간이자, 독서의 현장이자, 책에 관한 생각과 정서를 함께 나누는 공간이 되도록 깊이 고민하고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하도록 모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책과 독서의 위기를 논하는 시대에, 텍스트 힙을 위한 나라는 있다, 라는 씩씩한 외침이 신앙인에게서 먼저 시작되었으면 합니다.

 

 

Profile
의정부교구 사제. 독일에서 종교 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에서 <최대환 신부의 음악 서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책과 예술, 산책을 좋아하며,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강의하고 글을 씁니다. 제가 쓰고 말하는 일들이 이웃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복음 선포의 활동이 되기를 희망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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