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는 만남의 장

가톨릭 예술

책 읽기는 만남의 장

책, 삶의 기쁨을 전해 주는 동반자

2025. 03. 28
읽음 205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책은 어린 시절 시골에 머물렀을 때, 하교 후 빈 시간을 채워 준 선물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을 때는 외로움을 풀어 주던 열쇠가 바로 도서실의 책이었죠. 도서실에서 책을 보다 보면 같이 책을 읽는 학우들에게 말을 걸게 되고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생겨났습니다.

신학교에 입학 후에도 도서관은 좋은 친구였습니다. 주일 학교 출신도 아니고, 복사 출신도 아니었던 저에게 책은 몰랐던 전례를 배우고 본당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였습니다. 그때 우연히 이냐시오 성인의 전기를 읽다가 발견한 기도는 사제로서 살아갈 길을 비추어 주는 선물이 되었습니다.

사제가 된 이후에도 책은 사목의 동반자가 되어 줍니다. 매일 강론을 쓰다 한계가 부딪치면 책에서 힌트를 얻습니다. 인문학 서적이나 트렌드를 알려 주는 책은 신자들과 대화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죠. 이렇게 책은 저에게 친구이자, 동반자였고,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매달 3~4권 이상의 책을 읽습니다.

 

세계를 알아가는 즐거움

누군가가 저에게 책을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한 사람이 다가오는 건 하나의 세계가 다가오는 것과 같아요. 한 사람이 쓴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사람의 생각이 담긴 세계를 마주하는 기쁨이 있죠. 아무리 어려운 주제도 자주 접하고 쉬운 책부터 차근차근 읽어 나가면 시간이 걸릴 뿐 세계를 탐구하는 즐거움을 얻게 됩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세계를 알아가는 즐거움입니다. 책이라는 무궁무진한 세상 속에서 제각기 색을 입혀 가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몰랐던 부분을 깨닫기도 하고, 또 저 역시 나만의 색깔을 입혀 가는 즐거움을 얻습니다. 책을 한 권 만날 때마다 검은색이 점점 칠흑 같은 색깔이 되기도 하고, 하얀 백지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갯빛으로 채워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만의 주관이 세워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책을 읽지 않아도 주관은 세워질 수 있죠. 하지만 책을 통해 독불장군같이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폐쇄성이 아니라, 나도 잘못 알고 있을 수 있다는 전제로 타인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개방성을 가지게 됩니다. 정해져서 수정할 수 없는 세상이 아닌, 언제든 변화의 생동감을 가진 세상을 만들어 가기에 책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내가 가진 지식을 넓혀 주고

내가 가진 생각을 깊게 해 주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세상 안에서 세상과 함께 호흡하는 통로,

그것이 독서의 즐거움입니다.

 

물론 혼자서 계속 읽다 보면 때때로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누군가와 함께하면 됩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시선이 담긴 안경이 있습니다. 각자의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점점 더 다채로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함께 책을 읽고, 서로 생각을 나눌 때 그 책은 두 세계를 이어 주는 가교 구실을 합니다. 서로가 연결되는 가운데 이야기가 풍성해지면 자신의 세상이 확장되는 기쁨으로 이어집니다

 

독서 모임의 기쁨

저는 이러한 기쁨을 두 차례 경험해 보았습니다. 교회 외부 독서 모임에 참가했을 때가 떠오릅니다. 한 권의 책을 다양한 전공을 가진 이들이 함께 읽고 나누니, 전혀 몰랐던 세상이 열린 느낌이었습니다. 함께 나눔을 해야 하기에 적절한 긴장감과 책임감이 주어져 독서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죠. 덕분에 인문 사회 서적이나 에세이로도 얼마든 신앙적으로 해석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코로나 시기 때, 온라인으로 독서 모임을 진행해 보았는데 덕분에 신앙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신자들에게는 놀랍고 새로운 부분이었고, 내가 생각했던 신자들의 신앙과 질문이 실제와는 다름을 깨달았습니다. 신자들은 삼위일체나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 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신앙 안에서 주어진 희망은 무엇인지 등 실제 삶과 관련된 부분을 찾고 싶어 했습니다. 덕분에 강론하거나 신자들에게 훈화할 때 방향성이 바뀌었습니다. 삶과 관련된 신앙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점점 더 신자들과 거리가 가까워지기도 했습니다. 책을 함께 읽은 덕분에 얻은 소중한 선물입니다.

 

이렇게 책은 어제의 즐거움이고, 오늘의 기쁨이며, 내일의 설렘입니다. 즐거움이 있기에 오늘 기쁨을 누릴 수 있고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할 수 있게 해 주는 소중한 동반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자들과 만남 중에 묻곤 합니다.

 

지금 어떤 책을 보고 계신가요?”

어떤 책을 추천해 줄 수 있으신가요?”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에게도 책이 삶의 기쁨을 전해 주는 동반자가 되어 주길 바랍니다. 책을 통해 서로가 연결되고 서로 성장할 수 있는 기쁨의 동반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교의신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공동체 기도 사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가톨릭 신앙의 보화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배우며, 개인의 성장과 공동체의 도움이 되는 경험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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