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 작은 책방을 열었습니다. 처음으로 책방을 생각했던 건 첫째가 18개월, 둘째가 막 태어났을 무렵이었습니다. 17개월 차이 나는 아들 둘 엄마. 출산과 함께 경력 단절, 신발 신고 현관을 나선 날이 손에 꼽힐 정도로 사회와도 단절되었던 때였지요. 그때 유일한 외출이 금요일 저녁 독서 모임이었습니다. 어른의 언어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죠. 돌아가며 첫인사를 나눌 때 “저는…….” 하고 말문을 연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여기 있구나’ 하는 감각. 낯설었습니다. 한동안 들어본 적 없는 내 이름을 말하고,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그 시간이 다시 저를 저로서 살게 했습니다.
아이들을 낳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나니 ‘나’라는 존재에 대한 감각도 시간과 함께 흘려보낸 것만 같았어요. 무서웠습니다. 영영 나라는 사람은 사라지고 이대로 내 인생은 끝날 것만 같았으니까요. 우울하고 무기력하던 나는 내가 알던 내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원하던 모습도 아니었고요. 흐릿한 초점으로 바라본 우울의 끝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끝을 보니 희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뭐라도 해야 살 수 있던 날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아무 말이라도 쓰고, ‘나를 찾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우울의 시작점으로 방향을 돌려 무엇이 힘든 건지, 무얼 원하는지, 지금 뭘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시작점에서 웅크리고 있던 작은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그건 나의 바람이었어요.
아이들을 낮잠 재우면서 자장가처럼 책을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쳇바퀴 굴러가는 일상 가운데 삶의 궤적을 벗어나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는 곳이 책이었고, 감정을 마구 쏟아내도 안전한 곳이 하얀 지면이었습니다. 소설, 에세이, 육아서, 자기계발서 어떤 주제도 가리지 않고 도서관에서 제목만 보고 끌리는 책은 몽땅 빌려와서 틈나는 대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잠든 새벽 4시. 살짝 아이들 머리를 팔에서 빼고 나와 조용히 할 수 있는 일은 읽고 쓰는 일이었습니다.
뭐라도 써야 살 수 있었던 날들이었습니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매일 무언가를 써 내려갔습니다. 알 수 없는 답답함, 말로는 할 수 없는 감정들로 팽팽하게 부푼 마음이란 풍선에 바늘을 찔러 넣듯 내 삶에 확실하고 분명한 자극이 필요했습니다. 종이 위에는 ‘나는’으로 시작하는 내가 있었습니다. 뭔가를 느끼는 나, 생각하는 나,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내가 있었습니다. 전쟁 같은 일상에서 분투하면서도 지금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내가 있었습니다. 일상의 힘듦을 토로하던 일기에 조금씩 작은 바람을 적어 갔습니다. 흐릿했던 그림은 점차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냈는데요. 그것이 마흔 전에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책방이라는 공간이었어요. 그렇게 제가 한 경험을 누군가에게도 전하고 싶고, 책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과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으로 5년 전 책방을 열었습니다.
독서 모임을 통해 얻은 영감
그동안 책방에서는 다양한 독서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책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삶을 나누고, 질문을 통해 삶의 중요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기도 합니다. 나와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보는 프레임을 넓히는 경험. 분명 혼자서 읽는 독서와는 또 다른 기쁨이 있지요.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를 넘어, 책 한 권 너머 함께 하는 이들의 삶을 통한 경험은 모임을 통해서만 가능하니까요.
최근 했던 영적 독서 모임 이야기입니다. 한 달에 한 번, 1년에 12번 영적 성장을 위한 독서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더 넓고 긴 시선을 가지고 다양한 장르의 책을 함께 읽으면서 삶의 영적인 부분을 나눕니다. 영적 성장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진 도반들이 모인 만큼 나눔의 깊이는 성경 모임과 다르지 않아요. 그동안 함께 나눈 책 가운데 기억에 남는 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다섯 번째 산》을 시작으로 공지영의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마이클 싱어의 《상처 받지 않는 영혼》, 법륜 스님의 《지금 여기 깨어있기》, 미치 앨봄의 《신을 구한 라이프 보트》, 그리고 교재처럼 일 년 내내 함께 읽은 《관상과 식별》. 이렇게 신앙 서적뿐만 아니라 소설, 타 종교의 경전, 명상 관련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다양한 철학과 사상을 접하며 신앙에 대한 깊은 성찰뿐만 아니라 나의 삶을 더욱 넓게 바라보는 경험을 했죠. 영적 독서에서는 책 선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질문이 필요했습니다. 읽고 내용 요약하는 것만으로는 성찰하기 어려우니까요. 한 권의 책과 질문으로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 나의 영적 삶에 더 가까이 들어와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연말에는 시를 함께 나누며 모임을 이어 갔어요. 각자 한 달 동안 읽은 시 중에 함께 나누고 싶은 시를 골라와 낭독하고, 시를 선택한 이유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지난 모임에서 나눈 우리의 삶. 몇 달을 나누며 서로 깊이 공감했기에 그가 나눈 시는 마치 시인이 그를 위해 쓴 것 같았어요. 참석자 한 분이 도종환 시인의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의 목소리로 나누는 시는 그의 삶과 닮아 있었습니다. 그의 삶과 닿아 있었어요. 시를 낭송하는 이도 듣는 이도, 모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어요. 앞서 많은 책을 읽고 나누었지만, 다들 연말에 나눈 시 모임이 가장 좋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셨어요. 그건 아마도 짧은 시 안에 우리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었고, 시가 그렇듯 구구절절하지 않아도 정수의 몇 단어만으로도 많은 걸 담고 있기 때문 아닐까 해요. 이렇게 삶을 나누며 나 자신과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방향을 찾아가는 데에는 나누는 이들의 열린 마음, 기꺼이 삶을 끌어안을 용기가 있어 가능했습니다. 모든 독서 모임이 그렇게 된다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꼭 그렇게 진행되지는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독서 모임을 잘 운영하는 방법
지나고 보니, 독서 모임이 잘 운영되려면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모임의 성격과 방향이 분명해야 했죠. 그러기 위해서는 책 선정과 모임의 성격을 충분히 안내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방을 열고 처음 열었던 독서 모임은 토요일 열 시에 만나는 자유 독서 모임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뾰족한 대상보다는 그저 많은 분이 오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누구에게나 열린 모임을 열었었지요. 연령대, 관심사, 직업도 정말 다양한 분들이 모였어요.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공감대가 넓지 못했어요. 그래서인지 이 모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가끔 독서 모임을 100분 토론 분위기로 만드는 분들이 계신데요. 이 부분은 모임 리더가 분위기를 확실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는 분위기를 원한다면, 부담 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작은 규칙을 정해 보는 것도 좋아요. 제가 제안하는 규칙은 이런 거예요.
-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과 질문만 한다.
-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은 하지 않는다.
모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충분히 이 부분에 대해 안내를 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또 독서 모임 후 애프터 모임은 되도록 갖지 않고 있는데요, 모임 분위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친분을 나누는 것을 넘어 불필요한 감정이 생길 경우, 본연의 독서 모임에 영향을 주기도 해요. 단, 공식적인 번외 모임을 시즌에 한 번 정도 갖고 있어요. 책과 관련된 영화를 함께 본다거나, 같은 테마의 그림책을 함께 보고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면 분위기 전환도 되고,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모임을 시작할 때 무엇을 위해 시작했는지를 인지하고 있는가입니다. 모임을 하다 보면 중간에 분명 힘든 부분이 있겠지만, 중요한 한 가지가 중심이 된다면 흔들리더라도 모임을 계속 지속할 힘이 생깁니다.
독서 후 감상을 잘 정리하는 방법
모임을 마치고 ‘참 좋은 책과 나눔이었어.’ 하고 기억하려면 기록과 공유를 모임 안에서 하도록 권해 보세요. 모임을 마무리하기 전에 나눈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나누면 좋아요. 집에 가셔서 각자 해 보세요. 해도 잘 안 하게 되거든요. 스스로 의미 부여를 통해 모임에 대한 자발적 동기부여도 되고, 나 자신과 모임 모두에게 좋은 기록과 공유가 됩니다.
가끔 읽었던 책인데도 기억 못 하는 책 있지 않나요? 혹은 집에 있는 책인지 모르고 같은 책을 또 산 일도 있고요. 개인적으로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책은 독서 모임 후 리뷰를 쓴 책이었어요. 읽고 난 후, 모임을 마치고 정리하는 것은 독서를 더 깊이 있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긴 글을 쓰기보다 나에게 와닿은 문장과 간단한 감상을 적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긴 독후감은 쓰기도 전에 의욕을 잃고, 시작도 못 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부담 없이 딱 세 문장만 추려 보자 생각하고 적어 보세요. 아마 세 문장만 쓰려다가 더 많이 남기게 되는 경험을 하실 겁니다.
또 하나는 스스로 질문을 해 보는 것입니다. 작가와는 다른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작가의 생각이 나에게는 질문이 될 수 있거든요. 답은 바로 써도 좋지만, 하나의 화두가 되어 일주일, 혹은 다음 모임까지 품어 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작은 행동 실천 사항을 정해 보는 것인데, 모임 때 다 같이 나눠도 좋습니다. 한 권의 책이 지식과 머리로 앎으로 끝난다면, 삶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머리에만 머무는 독서가 아니라 삶이 바뀌는 경험은 결국 몸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거창한 새벽 기상, 일일 일독 같은 것이 아니라 ‘화요일 점심 식사는 천천히 해 보자’ 같이, 한 번쯤 해 볼 법한데 아직은 해 보지 않은 일을 넣어 보세요. 독서 모임에서 실천 사항을 나누는 것은 서로에게도 좋은 팁이 되니 추천합니다.
마무리하며
독서 모임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서로 다른 삶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시공간입니다. 혼자 읽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들을 발견하고, 책을 통해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지요. 나누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텍스트는 단순한 활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 숨 쉬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경험이 모여, 책과 사람을 잇는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 냅니다.
책과 사람을 이어 주는 마법 같은 시간. 어떤 날은 진지하게, 또 어떤 날은 유쾌하게 웃고 떠들며 각자가 책을 통해 발견한 삶의 조각들을 맞춰 갑니다. 책방에서 시작된 이 소소한 독서 모임이 제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따뜻한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아직 독서 모임 경험이 없는 분이라면 용기를 내어 모임을 시작해 보세요. 나를 잃고 방황하던 순간 나를 일으켜 세워 준 독서 모임입니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찾는 누군가에게 독서 모임을 권합니다.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우리 안에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는 곳. 저는 오늘도 책방 문을 열고 독서 모임을 준비합니다. 지금 계신 곳에서 가까운 책방이나 도서관에 문을 두드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