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사랑함에 대하여

신학 칼럼

하느님을 사랑함에 대하여

나의 사랑의 단계는 어디쯤일까?

2025. 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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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절망에 빠졌을 때, 병마와 죽음과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하느님을 원망해 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본질적인 어려움 앞에서 이렇게 질문하곤 합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내가 필요할 때 나타나지 않으시는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하시는가?”

 

그렇다면 한편으로는 이렇게 질문할 필요도 있을 듯합니다.

 

나는 어떠한 하느님을 믿고 있는가?”

나의 신앙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가?”

 

베르나르도 성인은 이러한 질문들 앞에서 자신의 저서,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De diligendo Deo)을 통해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는 단계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이 안에서, 자신의 신앙에 대한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자신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단계

베르나르도 성인에 따르면 사랑의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지요. 우리는 일상적으로 자신을 위해 먹고 마시며 무언가를 배우고 누군가를 사랑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발전하고 때로는 실패하며 또다시 성장합니다. 이타적인 사랑조차 사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조차도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건강하고 행복할 때 부모 역시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는 모든 사랑의 시작점이며 가장 본능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자신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단계

사랑의 두 번째 단계는, “자신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일상 안에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우리 인간은 신앙을 갖게 되고 체험하며 자연스럽게 하느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데 신앙의 시작은 다른 무엇이 아닌 나를 위한 것에서 기인합니다. 편안한 마음을 느끼기 위해 성당에 나가는 것, 친구를 만나고자 성당 활동을 하는 것, 하느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라는 믿음, 나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바로 이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인생의 어려움 앞에서 하느님을 원망하는 마음은 바로 이 단계에서 대부분 생겨납니다. 물론 이 역시 첫 번째 단계와 마찬가지로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만 머무른다면 그것은 완전하지 않은 사랑, 믿음입니다. 어디까지나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사랑의 단계에서는, 하느님보다 내가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좋은 것이 주어지지 않거나 하느님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는 존재하지 않으시는 분으로 여겨져 원망을 갖게 되고 그대로 신앙이 죽어 버립니다.

 

그러나 베르나르도 성인은 이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하느님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이므로 노력을 기울인다면 분명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비록 당장 하느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분의 뜻과 움직임을 깨닫게 되며 더 좋은 방법으로 더 좋은 시간 안에서 당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드러내시는 하느님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신 하느님,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하느님, 성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를 입으며 인간은 이제 사랑의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3.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단계

세 번째 사랑의 단계는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존재 자체가 너무나도 크고 놀랍다는 것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희생과 사랑을 실천하게 되는 단계입니다. 지속적인 삶의 어려움을 마주하더라도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에 귀를 기울인다면 이제 인간은 하느님께 다가가야 할 또 다른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전능하신 분임을 알아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삶의 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해 주는 작지만, 풍성한 것들을 누리는 인간은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제 인간은 자신의 미소함을 깨달음과 동시에 감사함을 깨닫게 되고 하느님의 전능함에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필요를 느낍니다. 이렇게 인간은 하느님이 존재하심에 대한 기쁨을 드러내게 되며 복음과 성사를 통해 그분이 얼마나 다정하신 분인지 알게 됩니다. 이렇게 입증되는 주님의 사랑과 온유함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넘어 주님을 순수하게 사랑하도록 자극합니다.

 

베르나르도 성인에 따르면, 이 사랑의 단계에 도달한 사람들은 이웃 사랑에 관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진리를 따라 하느님을 사랑하게 된 그는 또한 하느님에게 속한 것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는 순수한 방식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므로 순결한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으며, 사랑에 순종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더욱 깨끗하게 합니다. 인간은 이 사랑을 아무런 대가 없이 무상으로 주님께 드리게 되므로 환영받습니다. 그러므로 이 신앙은 순결합니다. 헛된 말을 흘리지 않고 오직 진리를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께 받은 대로 베풀기 때문에 참으로 옳으며,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사랑받는 방식과 다르게 사랑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익을 추구합니다. 이 단계는 현재의 삶에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잘 실천하면 마침내 네 번째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죽음 이후 하느님을 마주하며 느끼게 되는 가장 고귀한 사랑입니다.

 

4. 하느님을 위해 자기를 사랑하는 단계

, 이제 마지막 단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이 마지막 단계를,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자신을 잃어버리고, 더 이상 자신에 대한 지각없이 스스로를 비우고 자신을 거의 무력화시키는, “하느님을 위해 자기를 사랑하는 단계라고 이야기합니다. , 이 단계에 이른 이들은 하늘에 거주하며 더 이상 인간의 감정을 따르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제 육체의 욕구에서 벗어나 사심 없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순간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창조하셨음을 온전히 깨닫는 단계로, 피조물이 창조주를 따르며 그에 동의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이는 비록 죽음 이후에야 이르는 단계이지만, 우리 신앙인의 삶의 목적은 나의 만족이 아닌 하느님의 만족에 정향 되어야 하므로 일단 우리도 이와 같은 느낌을 갖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어려움의 고비에 부재하시는 주님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제 신앙, 혹은 사랑이 때로는 전능하신 하느님보다 나 자신을 우선시했던, 어리석고 이기적인 것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사랑의 단계는 어디쯤인지요. 우리는 나의 편의나 즐거움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분인 지극히 거룩하고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이렇게 사랑할 때 우리의 믿음은 굳건해지고 삶은 더욱 투명해지며 활력 있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의 뜻과 움직임을 살펴보고 확인하게 되며 구원은 자연스러운 결과로써 주어집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방식보다 더욱 좋은 방식으로 모든 기도를 들어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로마 라테란대학교 알퐁소대학원 윤리신학을 전공했습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윤리신학을 신자들이 흥미롭고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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