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딜레마, 그리고 하느님의 가르침

신학 칼럼

인간의 딜레마, 그리고 하느님의 가르침

선과 악을 식별해 성공한 삶을 살아가려면

2025.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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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발명품, 플라스틱을 생각해 봅니다. 플라스틱은 1860년대, 당구공의 재료로 주로 사용되던비싸고 귀한 아프리카코끼리의 상아를 대체할 물질을 만들려는 노력에서 탄생했습니다. 이에 인간은 녹나무에서 고형분을 얻어 셀룰로이드(celluloid)를 만들었고 이것이 곧 플라스틱의 시작입니다이를 시작으로 영화 산업의 종이 필름을 대체하는 셀룰로이드 필름 롤이 개발되었고, 1900년대에는 리에틸렌 비닐을 대량 생산함으로써 운송과 포장 비용을 줄이게 되었습니다. 1940년대에는 내구성을 갖춘 가정용 플라스틱 용기가 개발되었고 그 이후 일회용 수술 도구나 일회용 마스크, 인체의 인공 기관을 제작하는 데 사용하며, 플라스틱은 유용하고 보편적인 소재로 각광받게 되었습니다.

 

플라스틱 딜레마

플라스틱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봅시다. 코끼리의 상아는 계속 소모되었을 것이고 쇼핑백, 용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종이를 만들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양의 나무를 벌목했을 것입니다. 이는 곧 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만큼의 환경적 소모였겠지요. 결국 플라스틱은 본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대체제였던 것입니다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기술의 남용으로 현재 인간은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고, 결국 생태계가 존립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결국 가진 것이 본래 유용하다 할지라도 이것이 지혜를 완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진 것의 힘과 부작용을 올바로 예측하고 사용할 수 없다면 결국 그것은 자기 파괴적인 힘을 불러옵니다. 이는 곧 인간 존재를 실패로 이끌고 가게 됩니다.

 

윤리 신학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플라스틱 이야기를 한 이유는, ‘지혜에 관해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윤리적 측면에서 지혜란, “감정적인 반응을 통제해 이성과 지식이 올바른 행동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목표는 결국 올바른 행동, 즉 선과 악을 식별해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식별은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플라스틱이 설사 좋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인간을 실패로 몰고 갈 수 있듯 우리의 삶에 주어진 것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양심, 자유와 같은 가치를 어떻게 사용하고 식별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실패의 길로 나아갈 수도, 성공의 길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식별의 기준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혜롭게 살기 위한,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식별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이 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성공을 무엇이라 여기시나요? 성공의 기본 덕목으로 물질적 풍요 혹은 사회적 지위, 학벌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하지만 성공이 단순히 일시적인 것에 그친다면 그것은 진정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 세속적인 것들은 유한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만 인정됩니다. 지금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어도 언제 그것이 사라질지 모르고, 더 많은 풍요를 원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완전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영원한 것은 하느님입니다. 살아가면서 많은 재산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모든 것을 이루는 지혜보다 더 큰 재산이 어디 있겠는가?”(지혜 8,5) 하느님께서는 완전하신 분이며 우리를 진정한 구원으로 이끄시는 분, 영원한 생명을 선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느님의 질서에 맞춰 살아가고 그분이 우리에게 마련하신 좋은 것들을 올바로 사용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완전한 행복,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성공을 위한 식별의 기준은 곧 하느님이어야 합니다.

 

자유 의지와 맡겨진 지도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지혜롭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라십니다. “지혜는 자신을 찬미하고 자신의 백성 한가운데에서 자랑하리라.”(집회 24,1) 하지만 어리석은 인간은 종종 그 길을 벗어나곤 합니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아담과 하와(창세 2,5-3,24), 카인과 아벨(창세 4,1-6), 노아의 방주(창세 6,9-8,17), 바벨탑(창세 11,1-9) 등의 이야기가 바로 이 어리석은 인간의 대표적인 표상입니다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억지로라도 인간을 선으로 이끌면 좋지 않았을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좋은 감정들, 확실한 기준들을 선사하셔서 인간이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끔 만드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렇다면 스스로 악을 저질러 실패할 가능성이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놀랍게도 그렇게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즉 좋은 감정, 사랑, 선의, 기쁨, 연민, 열정을 선사하셨습니다. 확실한 기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계명을 통해서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확실한 지도를 주셨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라는 말씀 또한 선언하셨습니다. 또한 양심을 통해 이것은 행하고 저것은 피하라.”(사목 헌장 16)는 당신의 목소리를 전해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종종 악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유 의지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모상으로 창조하시며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이 자유는 인간만이 지닌 특별한 것입니다. 만약 자유가 없다면 인간은 철창 안에 갇혀서 본성대로 살아가는, 다른 존재를 파괴해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이성이 없는 짐승과 다름없는 신세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자유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함에 따라 더욱 존귀한 존재가 됩니다결국 자유 의지란, 우리에게 있어서 플라스틱과 같습니다. 플라스틱이 인간에게 유용하고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좋은 것이지만 잘못 사용하게 될 경우 치명적인 물질이 될 수 있듯, 자유 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성공 혹은 실패로 나뉘게 됩니다. 그리고 실패에는 자연스럽게 책임이 뒤따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자유 의지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며 성공의 길로 나아가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길을 갈 수 있는 일종의 지도를 선사하셨습니다. 구약의 십계명(탈출 20,1-7), 신약의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 계명(마태 22,34-40)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를 통해 인간은 진정으로 자유롭게,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 성공의 삶을 통해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윤리신학은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길을 보다 더 개인의 삶에 잘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하느님으로부터 맡겨진 지도를 잘 읽을 수 있도록 돕는 학문입니다.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로마 라테란대학교 알퐁소대학원 윤리신학을 전공했습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윤리신학을 신자들이 흥미롭고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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