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을 ‘인문학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신학 칼럼

프란치스코 교황을 ‘인문학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인문학자’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양의 힘(1)

프란치스코 교황을 기리며

지난 421, 가톨릭 신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사랑했던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선종하셨습니다. 교황은 여러 번 위독한 상황을 겨우 넘긴 지치고 쇠약한 몸을 이끌고, 선종 전날인 부활절 낮에 베드로 광장에 모인 이들을 축복하시며, 무엇보다 전쟁에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연대하며, 평화를 호소하였습니다.

 

다음날 교황의 갑작스러운 선종 소식을 들었을 때, 슬픔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의 감정이 더 강렬했습니다. 성령께서 이 시대에 필요한 얼마나 훌륭한 교황을 교회에 선사하셨던가를 새삼 깨달았던 순간이었습니다. 지상의 여정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바오로 사도가 전해 주는 말씀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2티모 4,6-8)

 

죽음에 대한 가장 위대한 철학서이자, 교부들에게도 큰 영향을 준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을 보면,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 제자 파이돈이 스승의 마지막 모습에서 슬픔 가운데서도 정화되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을 들으며, 이러한 파이돈의 심경에 공감하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태도로나 말씀으로나 내게는 행복해 보이셨으니까요. 그분께서는 그렇게 두려움 없이 고상하게 생을 마감하셨어요. 그래서 나는 그분께서 저승으로 가는 동안에도 신의 가호를 받으실 것이고, 저승에 이르러서도 누군가 그런 적이 있다면 잘 지내실 것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나는 그런 슬픈 자리에서 느낄 법한 연민의 정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거예요.”

_플라톤, 《파이돈》, 58e-59a(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2017)

 

인간다움의 참모습을 보여 준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좋은 죽음이 무엇인지도 보여 줬다고 생각합니다. 교황이 더 이상 우리와 이 세상에서 함께하지 못한다는 슬픔 속에서도, 신자들은 그를 회상하며 마음이 깨끗해지고 그 표양을 따르고자 마음이 움직이는 은총의 시간을 체험했습니다.

 

426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가 경건하게 엄수되었습니다. 교황은 생전의 소망대로 성모님을 기리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지하에 마련된, 아무 장식도, 호칭도 없이 라틴어로 프란치스쿠스라고 이름만 새겨진 관에 안장되었습니다. 사목자로서 겸손과 가난을 실천하려 했던 교황의 삶에 참으로 어울리는 묘소입니다.

 

이후 애도 기간을 거쳐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가 열렸습니다. 추기경단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하느님께서 교회에 주신 선물이었음을 인식했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 평화를 위해 애쓰고, 함께 걷고 경청하며, 벽이 아니라 다리를 놓으려 했던 프란치스코의 교황직이 앞으로도 계승해야 할 시대의 징표라는 것에 동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들은 마음을 모아, 예상보다 빠르게 페루 빈민가에서 오랫동안 선교사로서 가난하고 핍박받는 이들과 동고동락한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출신의 로버트 프란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을 베드로의 후계자이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길을 이어 갈 차기 교황으로 선출했습니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최초의 미국 출신 교황이라는 것이 화제가 되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신을 잘 이해하고 진심으로 동감하며, 무엇보다 직접 실천하며 살아온 인물이라는 사실일 것입니다.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존경을 표하는 한편, 사회 교리를 교회 안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게 하고, 급변하는 세상 안에서 노동의 존엄과 인간 존중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을 선포한 레오 13세를 상기시키며, 레오라는 교황명을 선택했습니다.

 

이제 가톨릭 교회는 레오 14세의 시대를 시작합니다. 새로운 교황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관념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 준 자비와 정의와 평화의 여정을 이어 가리라 확신합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교황의 시작을 기대를 가지고 바라보게 됩니다. 이와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을 기억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이 시간이 금방 가시지 않으리라 예감합니다. 그의 말과 글과 삶은 오래 곱씹을 가치가 있고, 많은 이에게 지속적으로 영감과 힘, 위로를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관점에서 그의 유산을 살피고 새기게 되겠지만, 진정한 교양인이자 인문학자로서 교황을 기억하는 것 역시 남아 있는 이들에게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사유의 대가들과 프란치스코 교황

우리 시대의 위대한 교황들은 모두 충실하고 명민한 신앙의 스승들이었지만, 지적 여정에 있어 각기 고유하고 독창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현상학이라는 현대 철학에 정통한 철학 교수로서 현상학적 방법론을 그리스도교적 인격주의에 적용해서 몸의 신학을 제시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철학자라고 부를 만하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의문의 여지 없이 당대 최고 수준의 신학자로서 신앙의 본질을 밝혀 주었습니다.

이에 비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려깊고 교양 가득하며 통찰력이 뛰어난 인문학자라고 불릴 만합니다. 인문학은 무엇보다 교양을 의미합니다. 그를 인문학자로서 조명하는 것은 교양의 참된 의미를 생각하고, 신앙인의 실천에 있어 교양이 갖는 힘에 대해 새롭게 깨닫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고유하고 풍부하게 교양의 의미를 밝혀 준 것은 역대 어떤 교황에게도 보기 어려운 독보적인 기여이자, 오늘의 시대에 긴요하고 적절한 사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는 교양이 단지 지식의 습득이나 개인의 취향이거나, 현학과 과시적 유행에 그쳐서는 안 되는 것을 잘 보여 주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찰나적이고 과시적인 문화 속에서 영혼을 잃어가는 세태 속에서, 깊이 있는 교양이야말로 인간다움의 품위를 지키고 진정한 아름다움을 향유하며 참되고 선한 가치를 지향할 수 있는 원천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에게 교양 개념은 다양한 차원을 담고 있습니다. 예술에 대한 폭넓은 사랑, 개방적이지만 실천적 진리에 확고한 윤리학, 관념이 아닌 삶의 체험에서 온 살아 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양은 신앙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 존재 깊은 곳에 뿌리내린 감정과 정서를 통해 만나고, 초월적 신비에 개방하며, 일상의 삶에서 선한 가치를 지향하고 실천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양이 인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다양한 삶에 장면과 함께하며 스며들 듯이 한 인간의 존재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을 자서전 《희망》(가톨릭출판사, 2025)에서 잘 보여 줍니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던 음악, 학창 시절 탐독하던 책들이 교양의 터전이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를 탁월한 인문학자이자 교양인으로서 설득력 있으면서도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식견을 가지게 한 것은 꾸준히 사유의 대가들을 연구한 시간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러 심오한 신학자, 철학자, 사회학자들의 사상을 탐구하면서 단지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관점을 가지고 자신의 지적 성숙과 사목적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안내자로 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교양이 왜 좋은 인생을 위해 꼭 필요하며, 진정한 교양이란 어떤 것인지를 알려 줍니다.

 

* 다음 화에 계속 이어집니다.

Profile
의정부교구 사제. 독일에서 종교 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에서 <최대환 신부의 음악 서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책과 예술, 산책을 좋아하며,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강의하고 글을 씁니다. 제가 쓰고 말하는 일들이 이웃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복음 선포의 활동이 되기를 희망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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