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희망을 버려라, 여기에 들어오는 그대들이여!”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문에 적힌 문구입니다. 지옥은 단지 사후 세계의 저 멀리 있는 곳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입니다. 희망이 없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지옥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희망이 존재하는 한, 그곳은 더 이상 지옥이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내일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 없지만, 희망은 좋은 일이 생기리라는 기대와 바람으로 저마다의 마음속에 자리합니다.”(〈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1항)
그러나 우리는 가끔, 혹은 자주, 확고한 신뢰에서 우려로, 평온에서 불안으로, 확신에서 주저와 의심으로 변하고, 아무것도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다는 듯 낙심하여 미래를 비관적이고 냉소적으로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희망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체 어떻게 희망했을까?
그 힌트를 교황에게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교황의 이야기를 담은 책 《인생: 역사 속 나의 이야기Life: My Story Through History》에서는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교황의 어린 시절부터 오늘날의 혼란까지, 세계 역사를 바꾼 중대한 사건들을 회고하며 실낱같은 희망의 빛줄기를 발견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 나치의 유대인 학살, 원자폭탄과 전쟁의 종식, 냉전과 매카시즘, 아르헨티나에서 비델라의 군사 쿠데타, 베를린 장벽 붕괴, 2001년 9.11 테러. 2008년 대공황, 코로나19 팬데믹 등, 세계를 휩쓴 여러 어려움 속에서 교황은 대체 어떻게 희망하며 살아왔을까요?
이 책의 ‘제3장 원자 폭탄과 전쟁의 종식’에서는, 교황이 일본 히로시마 선교사로 파견된 페드로 아루페(Pedro Arrupe) 신부의 이야기를 통해 원자 폭탄의 참상을 듣습니다. 강한 폭발음을 들었고, 도시 전체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거대한 불꽃과 셀 수 없이 그을린 시체들로 가득했습니다. 페드로 신부는 의학을 공부했기에 부상자들을 돕기 위해 야전 병원에서 일했습니다. 신부는 끔찍한 상황을 회복하기 위해 일본 현지에 기부금과 구호품을 요청했고, 그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일본에 사는 많은 이가 기부금과 구호품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교황은 페드로 신부를 통해 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교황은 2019년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을 방문해 무고한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평화를 위한 세 가지 윤리적 명령, “기억하기, 함께 걷기, 보호하기”를 발표했습니다.
고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
과연 우리도 이런 절망 속에서 희망할 수 있을까요? 개인적인 체험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2023년 1년 동안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사목 실습을 하는 신학생들의 지도 신부로 재직할 때, 해외에서 선교 실습을 하던 신학생들을 방문하기 위해 일본 나가사키 교구를 다녀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일본 천주교회의 박해는 정말 끔찍했습니다. 250년간 박해가 이어졌고, 천주교에 대한 사소한 흔적이 드러나면 언제라도 목숨이 위태로워졌습니다. 특히 매년 1월 1일, 작은 목판이나 금속판으로 만든 예수님이나 성모님 성화를 밟는 행위, 일명 ‘에부미’를 행해야 했습니다. 슬픔에 젖은 숨은 그리스도인들, 일명 ‘잠복기리시탄’들은 ‘에부미’ 전날에 발을 깨끗이 씻고, 성상의 얼굴을 피하며 밟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즉시 발을 씻어 그 물을 통회하는 뜻으로 다 마시고 기도를 바쳤습니다. 이렇게 몰래 신앙생활 하던 그들에게도 고통의 시간이 끝나는 줄 알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일본에 원자 폭탄이 두 곳에 떨어졌고, 하나는 히로시마, 다른 하나는 나가사키였습니다.
실습 중이던 한 신학생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무한 거 아닌가요? 하느님께서 250년이라는 고통의 시간도 모자라, 왜 또 나가사키에 핵폭탄이라는 고통을 허락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 역시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왜 고통의 시간이 계속되는지, 그들에게 왜 절망만을 허락하시는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나가사키에서 5년 넘게 선교하는 동창 신부가 우리에게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원자 폭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곳에 떨어졌으나, 고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달랐습니다. 히로시마는 원자폭탄으로 인한 아픔과 고통을 분노와 억울함으로 표출하고 있지만, 나가사키는 고통을 기도하며 인내하며 그리고 속죄하며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무한한 선을 인식하기
사실 원자 폭탄이 나가사키에 떨어질 때 원래 목표 지역은 ‘고쿠라’라는 곳이었습니다. 나가사키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고쿠라는 차로 2시간 거리에 있었습니다. 당시 고쿠라 지역에 구름과 안개로 폭격에 실패하자, 연료가 부족했던 폭격기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구름이 열리면서 포탄을 떨어뜨린 곳이 바로 나가사키였습니다. 그 결과 약 7만 명이 사망했고 7만 명이 부상을 입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일본의 최대 가톨릭 성지인 나가사키의 대성당, 우라카미 성당 근처에 폭탄이 떨어졌기 때문에 천주교인들의 피해가 더 컸습니다.
그러나 나가사키 신자들은 이 비극을 “세상의 죄를 천주교 신자들이 대속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나가사키가 “지형적으로 분지이기 때문에 폭탄이 나가사키에 떨어져 더 많은 피해가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세계를 집어삼킨 끔찍한 욕망은 참담한 현실로 변했지만, 나가사키 신자들은 조금씩 조금씩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라고 참회했습니다. 나가사키 의과 대학 교수였던 나가이 다카시 박사는 그날의 참상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그 활기 넘치던 동네를 거대한 화장터로 만든 것은 누군가? 바로 우리들이다. ‘칼로 일어서는 자는 칼로 망한다’라는 교훈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듣고, 열심히 군함을 만들고, 어뢰를 만들었던 우리 시민들이다.” (나가이 다카시, 《꽃피는 언덕》)
“아름다웠던 나가사키를 잿빛 언덕으로 바꾼 것은 누구인가? 바로 우리들이다. 어리석은 전쟁을 일으킨 것은 우리 자신이다.” (나가이 다카시, 《꽃피는 언덕》)
그리고 박사님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서로 용서하자. 서로 불완전한 사람이니까. 서로 사랑하자. 서로 외로운 사람이니까. 싸움이나 투쟁이나 전쟁이나,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나가이 다카시, 《평화의 탑》)
프란치스코 교황은 칙서를 통해 오늘날 또다시 전쟁의 비극에 휩싸여 있는 지금의 현실에 평화를 이루고자 염원하는 것이 ‘희망의 첫 징표’라 말씀하십니다(〈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8항 참조). 어쩌면 세상 속에 악과 폭력이 가득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우리가 희망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무한한 선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 지옥과 같은 일들은 계속되지 않을까요? 희망은 결코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