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의 원형, 최후의 만찬
미사는 가톨릭 종교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많은 가톨릭 신자가 미사 참례에서 참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의무감에 미사를 드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매주 드리는 주일 미사에 익숙해져서 때로는 관성처럼 미사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준 책 한 권을 만났습니다. 바로 스콧 한 박사의 저서 《네 번째 잔의 비밀》입니다. 이 책은 부제에서 드러나듯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의 신비’를 본격적으로 다룹니다. ‘최후의 만찬’이라니! 미사의 원형인 ‘최후의 만찬’은 그림이나 소설로 자주 표현될 만큼 오랫동안 많은 작가를 매료시킨 주제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마주하는 순간, 정작 나는 최후의 만찬 식탁에 대해 가톨릭 신자로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궁금해졌습니다. ‘최후의 만찬과 네 번째 잔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그리고 거기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다는 것일까?’
두 가지 프레임
《네 번째 잔의 비밀》은 최후의 만찬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신비를 풀기 위한 열쇠로 두 가지 프레임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유다교에 기반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성경과 문헌을 통해 살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자신의 신앙 여정을 그리는 것입니다. 성서학자로서 자신이 품은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이 씨실로, 미사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으며 가톨릭 신앙의 진리를 깨닫는 과정이 날실로 서로 교차되며 한 권의 책이 됩니다.
이 책의 저자인 스콧 한은 미국의 저명한 성서학자입니다. 열렬한 개신교 신자였던 스콧은 어느 날 예배를 드리며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 ‘다 이루었다’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생략된 주어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 그는 최후의 만찬의 유대인 뿌리를 파헤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유대인들의 관습에서는 으레 다 마시게 되는 네 번째 포도주 잔을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드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해방과 구원
책의 핵심적인 주제는 구약과 신약 사이를 연결하는 하느님 구원 계획의 연속성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탈출 사건을 기념하며 유월절을 지냅니다. 자신들을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해방시키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던 예식은 예수님이 살던 시대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저는 작년에 탈출기 성서 모임을 하면서 마지막 시간에 유다인들의 유월절 관습을 당시 모임 담당 신부님과 재현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각자 쓴나물과 빵, 양고기, 와인 등을 준비해서 유월절 관습대로 ‘탈출’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이 책에서 말하는 ‘네 번째 잔’이 무엇인지 더 와닿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번째 잔을 거르기로 택하셨을 때, 파스카 만찬은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에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건네진 포도주를 한 차례 거부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에 이르자 ‘신 포도주’가 예수님께 건네졌다.
《네 번째 잔의 비밀》, 133쪽.
가톨릭 신앙의 풍부한 보화
성서를 비롯한 고대 문헌을 참조하면서 이 책은 예수님이 메시아시며 태초부터 예비 된 하느님의 어린양이심을 섬세하고 꼼꼼하게 증명합니다. 연구 자료들을 바탕으로 신학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기 때문에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우리가 분명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구약과 신약 사이의 연결 고리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이해 줍니다.
예를 들면 율법에 제시된 어린양을 도살하고 꼬챙이에 굽는 방식은 놀라울 만큼 예수님의 십자가 위 처형 장면을 떠올리게 하고, 밀알이 떨어져 ‘죽어야 한다’라는 말씀은 빵의 형상으로 자신을 내어 주신 성찬례의 신비와 연결됩니다. 이 책을 읽은 후 드린 첫 번째 미사에서는 성찬 예식이 예전과는 다른 감동으로 느껴졌습니다. 사랑하면 알고 싶고 아는 만큼 새롭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미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고 새로운 힘을 얻고자 하는 분들께 《네 번째 잔의 비밀》을 추천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_로마 5,8
by Juli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