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운동을 가까이했다. 다섯 살 무렵부터 운동을 시작했고, 고등학교 진학 후 2학년부터는 체육대학 입시반에 들어갔다. 평발이라는 단점을 안고 있었기에, 애초에 엘리트 선수가 목표는 아니었다. 나는 스포츠 과학이나 스포츠 의학 분야로 진로를 희망했고, 대학 진학을 위해 다분히 노력했다. 그 결과, 내가 희망했던 체육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입학 후 단 한 학기 만에 자퇴를 결심했다. 막상 그 자리에 서 보니 ‘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정은 어렵지 않았지만, 부모님을 설득해야 한다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결국 휴학하기로 부모님과 타협하고 경제적 독립을 하게 됐다.
그 후 1년 반 동안은 오직 나의 힘만으로 스스로를 책임지고 버티는 시간이었다. 대학에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번번이 다음 선택을 하지 못하고 방황했다. 재능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찾지 못한 채, 내 안에는 조급함이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방황의 시간은 뜻밖의 길에서 막을 내렸다. 내 발길이 신학과로 향하던 것이다. 물론 신학과 진학이 완벽한 해답이 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는 이 길이 내 길인지, 내가 어디에 쓰일 수 있을지 여전히 매일 고민한다. 그러나 지금은 하느님께서 부르셨음을 믿으며, 성령께서 나를 어디로 이끄시는지 귀 기울이며 걸어가는 중이다.
MZ 세대의 수호성인,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의 생애
1991년 5월 3일,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은 부모 안드레아와 안토니아가 체류하던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난 지 15일 만에 ‘고통의 성모’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의 삶은 시작부터 성모님의 보호 아래 놓여 있었으며, 이는 훗날 그의 깊은 성모 신심으로 이어졌다.
성인은 온유하고 평화로운 기질을 지닌 아이였다. 또래가 자신을 때려도 맞서지 않았고, “힘으로 친구들을 대하면 주님께서 싫어하실 거예요.”라며 복음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고, 남다른 붙임성과 공감 능력으로 누구와도 쉽게 어울렸다. 다섯 살 무렵에는 가족과 함께한 폼페이의 성모 성지 순례에서 묵주 기도를 바쳤다. 기적의 성모님 앞에서 한 기도는 그의 신앙 여정에 첫 자취를 남겼다.
또 그는 탁월한 지적 능력을 지닌 아이였다. 복잡한 수식을 혼자 풀고, 프로그래밍에 몰두하며 친구들을 도왔다. 그는 단순히 재능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하느님께 받은 은총을 이웃을 위해 봉헌하고자 했다.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세그레타 본당 웹 사이트를 직접 관리하고, 자원봉사 단체를 위한 웹 사이트를 설계했다. 바티칸 웹 사이트 개설에도 이바지했을 만큼, 그의 재능은 이미 교회의 도구로 쓰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영성 중심에는 성체성사가 있었다. 그는 성체를 “살과 뼈를 지닌 예수님께서 참으로 우리 곁에 계시는 현존”이라 고백하며, 매일 미사에 참례했다. 영성체할 때마다 성모님과 성인들과 함께 있는 듯한 감동을 경험했고, 성사 생활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의 삶은 마치 한 대의 미사처럼, 경건하고 충만했다.
하지만 2006년 10월, 열다섯의 나이에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에 그는 “이 고통을 교황님과 교회를 위해 주님께 바칩니다. 연옥이 아니라 천국에 바로 가고 싶어요.”라고 고백했다. 마치 자기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듯, 죽음을 준비하는 담담한 신앙의 모습을 보였다.
그의 사망일은 10월 12일, 파티마 성모님의 마지막 발현 전날이었다. 장례 미사가 끝날 무렵 축제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이것을 천상 생활의 시작이라 여겼다. 이후 수많은 신자가 그의 전구를 통해 은총을 체험하며 시성을 청했다. 그리고 2025년 9월 7일, 마침내 그는 성인품에 올랐다. 교회는 그의 짧고도 충만한 삶을 통해 ‘디지털 시대의 복음 선포자’로서, 모든 청년에게 살아 있는 모범으로 세웠다.
우리 각자의 은총
교회의 친교 안에서 성령께서는 교회의 건설을 위하여 “모든 계층의 신자들에게 특별한 은총도 나누어 주신다.”(CCC 951항)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은 말했다. “누구나 고유한 존재로 태어나지만, 많은 이가 남들을 모방하다 삶을 마감합니다.” 실로 그러하다. 최근 자주 언급되는 ‘7세 고시’처럼, 단 하나의 길만 강요하며 아이들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우리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누군가는 살아가며 복사본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해야만 하는 것 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내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지 고민했지만, 하느님께서 내게 맡기신 ‘소명’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다 내가 찾고 있던 것이 단지 능력이나 기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곧 성령께서 내게 주신 은총이었다.
2024년 11월. 아시시에서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의 어머니 안토니아를 만나 뵈었을 때, 그녀도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겪고 있는 많은 위험 사이에도 은총이 있어요.” 그 짧은 말 속에 담긴 깊은 확신이, 나에게도 은총의 씨앗이 있음을 확신하게 하였다. 그 은총이 무엇인지 여전히 분명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교회 안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이라는 점이다.
교회의 역사와 예술을 탐구하고, 공동체 안에서 봉사할 때마다 내 영혼의 깊은 곳이 채워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충만함 속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금씩 가늠해 간다. 만일 내가 가는 길이 복음을 전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는 통로라면, 그것이야말로 주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은사이기를 기대해 본다.
‘주님,
언제나 당신께서 곁에 계심을 알고 있는 이가 어찌하여 당신의 일을 하는 것이 두렵겠습니까?
매 순간 닥쳐오는 유한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도,
당신의 일을 하는 이에게는 장애가 되지 못합니다.
제게 주신 은총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그 은총이 죽음보다 앞서 저를 이끌게 하소서.’
참고 자료
―《하느님의 인플루언서》, 니콜라 고리 지음, 최용감 옮김, 생활성서
―《그리스도는 살아계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천주교주교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