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서울 WYD 지역 조직위원회(L.O.C)에서 봉사한 지도 햇수로 2년이 되어 간다. 처음에는 학교 교수 신부님의 추천으로 시작했는데, 이 활동이 내 삶에 이렇게 깊은 영향을 줄 줄은 몰랐다. 그저 다가올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이 자리는 단순히 '무언가를 돕는 자리'가 아니라, '신앙 안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자리'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나의 믿음과 삶, 공동체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됐고, 그 고민 안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오늘은 내가 함께하는 팀 이야기를 중심으로 지금까지의 여정을 나눠 보려고 한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세계청년대회의 시작점이자 전 세계 젊은이들을 위해 커다란 발걸음을 내디뎠던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가 지금 함께 만들어 가는 이 길은 그분의 작은 ‘호출’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고난 속에서 피어난 성소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은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의 바도비체에서 태어났다. 그는 성당 종소리에 맞춰 하루하루를 보냈고, 아버지와 함께 묵주 기도를 바치며 기도하는 방법을 배웠다.
어머니를 여섯 살에, 형을 열두 살에, 아버지를 스무 살에 여읜 그는 삶의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마음을 잃지 않았다.
복사로 봉사하던 어느 날, 유대인 친구가 성당에 들어오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하지만 그는 미사 후 웃으며 말했다.
“왜 놀랐을까?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녀들이라고 배웠잖아.”
유년기의 단순하면서도 깊은 이 말은, 훗날 다양한 종교 간 대화에 힘썼던 그의 신념으로 이어진다.
1939년 9월 1일, 미사 중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그는 그날 복사로 봉사하고 있었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성체 앞에 머물렀던 기억은 그의 성소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지하 신학교를 다니며 사제직을 준비했다. 훗날 그는 고백했다.
“나의 성소는 사람들과 환경, 그리고 사건들에 의해 섬세하게 설계된 길을 따라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그는 하느님께 자신의 삶 전체를 봉헌했다.
삼촌처럼, 늘 청년 곁에
사제가 된 그는 ‘나들이 사목’이라는 독특한 사목을 시작했다. 학생들과 함께 등산하고, 캠핑하고, 스키를 타며 야외 미사 후 모닥불 곁에 둘러앉아 인간과 사랑, 신앙과 진리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안에서 젊은이들은 복음 속에서 자기 실존을 해석할 수 있는 진리를 발견해 갔다. 이처럼 그는 청년의 사랑과 신앙, 실존과 희망을 함께 나누는 삼촌 같은 사제였다.
그의 사목은 주교품에 오른 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교구의 본당을 일일이 방문하며 강의와 저술, 고해성사와 청년들과의 만남을 이어 갔다. 삶 안에서 끊임없이 신앙을 증언하였고, “자상한 사제가 되고 싶다”던 초심을 잃지 않았다.
1978년, 그는 교황좌에 올랐다. 비(非) 이탈리아계 교황으로는 456년 만의 일이었다. 그는 첫 연설에서 외쳤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문을 활짝 여십시오. 그리스도께 마음을 여십시오!”
그는 청년을 교회의 미래가 아닌 ‘지금’이라 선언했고, 1986년 세계청년대회를 개최했다. 그는 언제나 신뢰와 희망의 언어로 청년들의 마음을 일깨웠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은 삶과 신앙의 순례자입니다. 교회는 여러분을 믿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
2024년 12월, 나는 ‘젊은이 기획단’ 양성 과정을 마치고 기획팀에 배정되었다. 첫 임무는 ‘기본 계획서’ 작성이었다. 자세한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위한 각종 행사와 일정의 큰 틀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2023년 리스본 세계청년대회 경험이 있어 몇 차례 수정을 거쳐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기획이라고 해 봤자 학교 행사가 전부였던 내가 낯선 수치와 자료 더미 앞에서 방향을 잡는 일은 막막함의 연속이었다.
노트북만 켜 둔 채 멍하니 앉아 있던 날도 있었고, 이 자리에 설 능력과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의심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호흡하며 결과를 몸소 경험하고 싶었다. 결국 담당 신부님께 솔직히 말씀드렸고, 추천을 받아 행사 2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 ‘혹시 민폐가 되지 않을까?’, ‘내가 일을 망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이 컸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모두가 나를 ‘막내’라는 이름으로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봉봉(봉사자들의 봉사자)’ 언니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 주었고, 팀원들 역시 각자 바쁜 가운데도 늘 나를 챙겨 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이런 공동체라면 나도 함께할 수 있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답게’ 끝냈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 준비한 첫 행사는 ‘희희희’였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 다뤄 보는 큰 예산과 체력적으로 버거운 일정, 몸이 안 좋아 쓰러지는 일까지 겹쳤다. 그래도 누구도 무심하지 않았고, 먼저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 신부님들도 늘 곁에서 봉사자들의 손을 잡아 주셨다.
그래서일까. ‘잘 끝냈다’라는 뿌듯함을 넘어, ‘우리답게 끝냈다’라는 마음이 더 진하게 남았다.
이후 우리는 두 달가량의 휴식기를 가졌고, 함께 엠티도 다녀왔다. 우리 팀이 자주 하던 말이 있다.
“퇴사 금지 – 이직 금지.”
처음엔 웃으며 던진 농담 같았지만, 그 안에는 서로를 놓지 않겠다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며 놓지 않으며 다시 모였다.
2027년을 향해
지금도 우리는 2027년을 향해 모인다.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서로를 위해 작은 화살기도를 보내고, 서로를 ‘하느님께 부르심받은 사람’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시어 그 한가운데 함께 계심을 깊이 느낀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라는 이름으로 이 길을 함께 걸어간다.
“주님, 당신의 뜻을 따르는 청년들이 모여,
서로의 십자가와 희망을 함께 지고 가는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더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이 기쁨 안에 머물기를 도와주소서. 당신의 사명을 저희가 따르도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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