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관용을 베풀던 로마인들이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또 다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적대감과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로마 제국의 박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네로 황제의 박해입니다. 64년 로마 시내에 대화재가 일어납니다. 로마 시내의 3분의 2가 거의 불타 버렸는데 작은 화재로 시작된 불이 시내로 번지면서 큰 화재로 악화되었습니다. 대화재에 대한 책임은 누군가 져야 했습니다. 자랑스러운 로마가 하루아침에 재가 되어, 그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로마 시민들은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희생양을 찾았습니다. 옛날에는 큰 재해를 겪으면 그에 대한 책임은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짊어져야 했지요. 그래서 당연히 네로 황제에게 책임을 묻게 되고 황제를 죽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이때 네로 황제는 어떻게 했을까요? 황제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았습니다.
황제는 로마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약한 집단에게 화살을 돌리고 죄를 뒤집어씌운다면 자신의 안전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희생양이 바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네로 황제는 거대한 광장에 그리스도인들을 모아 놓고 검투사나 맹수와 싸우게 했습니다. 황제가 로마인에게 피의 향연을 즐기게 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돌리려 한 계획은 성공합니다. 로마인들에게 새로운 유흥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자신에게 겨눠진 화살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린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피해 숨거나 도망갔으며 공적인 장소에는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임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자구책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지형적인 특성을 이용하여 카타콤베라는 지하 동굴에 숨어서 모임을 갖거나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찾았던 것입니다. 당시 로마의 무덤 양식은 땅을 파서 송장이나 유골을 지하에 안치하는 형태였습니다.
로마의 땅은 이암층으로서 손쉽게 파낼 수 있지만 공기와 접촉을 하면 딱딱하게 굳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묻고 땅이 굳으면, 다시 파 내려가 사람을 묻으면서 점점 더 깊게 땅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은 미리 설계를 거친 후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파 내려가다 보면 다른 무덤끼리 서로 맞닿게 되면서 뻥 뚫리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그렇게 지하에 생긴 거대한 공간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모였습니다. 만약 집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 집 지하로 연결된, 그 수가 얼마인지 헤아리지도 못할 카타콤베라는 공간에 모여 미사를 드리거나 모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공간적인 특성 때문에 로마군이 쳐들어와도 쉽게 다른 곳으로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종교에 관용을 베풀던 로마인들이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또 다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적대감과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럼 누가 가장 먼저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했을까요? 애초에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적대감은 로마 제국 곳곳에 있던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이 먼저 갖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유대인들은 하느님이 너무나 초월적인 분이어서 사람들과는 절대 함께할 수 없는 분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당신과 아버지의 완전한 일치를 계속 강조하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를 신성 모독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로 인해 최초의 박해가 바로 유대인들에게 시작됩니다.
* 이 콘텐츠는 《알수록 재미있는 그리스도교 이야기》 일부를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