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교론자들이 등장하기 전에 교회를 옹호하는 역할을 한 대표적인 사도가 있습니다. 바로 바오로 사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유대인 핏줄을 타고 태어났지만 출생지는 그리스 문화가 발달된 교역 중심지 타르수스라는 곳이기에 그리스-로마 문화에 대해서 정통했습니다. 그러나 엄격한 바리사이 교육을 받았고 태생이 태생인지라 뼛속까지 유대인이었습니다.”
로마의 지식인들이 그리스도교를 체계적으로 논박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들의 비난에 맞서서 이를 반박하는 호교론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이 호교론자들이 등장하기 전에 교회를 옹호하는 역할을 한 대표적인 사도가 있습니다. 바로 바오로 사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유대인 핏줄을 타고 태어났지만 출생지는 그리스 문화가 발달된 교역 중심지 타르수스라는 곳이기에 그리스-로마 문화에 대해서 정통했습니다. 그러나 엄격한 바리사이 교육을 받았고 태생이 태생인지라 뼛속까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유대교 교리에 어긋나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나자렛 예수라는 인물이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라는 풍문과 더 나아가 하느님과 똑같이 여겨진다는 걸 들은 바오로 사도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러다 다마스쿠스로 가던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고 그 후 회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교와 그리스 철학 사이를 전교하는 이방인의 선교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선교로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그러나 그런 바오로 사도가 선교에 실패한 곳이 두 군데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에페소라는 도시로,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의 한복판 같은 곳이었습니다. 에페소에는 은으로 신당 모형을 만들어 부유해진 대장장이들과, 셈에 능한 콧대 높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런 에페소에서 바오로 사도가 설교에서 큰 성공을 거두자 그를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두 번째로 바오로 사도가 선교에 실패한 곳은 아테네였습니다. 철학을 많이 공부한 아테네 사람들은 그들의 문화를 이용해서 이야기하는 바오로 사도의 설교에 회의적이었습니다. 비록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와 아테네에서는 선교에 실패했지만 그 외의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큰 성공을 거뒀고 유대인 중심의 문화를 보편적인 헬레니즘 패러다임으로 바꾸게 됩니다. 신학자 한스 큉은 바오로 사도가 없었다면 그리스도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못하고 팔레스티나의 한 지역 종교로 있다가 사라져 버렸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의 공적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 이 콘텐츠는 《알수록 재미있는 그리스도교 이야기》 일부를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