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만나기

신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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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서 배우는 겸손> 3화

2025. 0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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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은 모든 이의 삶에 꼭 필요한 요소지만 오늘날과 같은 위기의 시대에는 훨씬 그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이 글은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겸손의 개념을 분석한 후 이를 진리와 온유함으로 정의합니다. 우리가 현재의 위기 속에서 어떻게 겸손이라는 미덕을 배울 수 있을까요? ‘겸손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인간이 하느님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살펴봅시다.

 

글 | 마르타 메디나 발게리아스Marta Medina Balguerías (교황청립 코미야스 대학교)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겸손이란 진리 안을 걷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두 가지 측면에서 진리를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인간의 한계입니다. 바이러스는 인간이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우리는 클릭한 번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생활방식에 빠르게 익숙해졌지만, 기술 발전도 팬데믹을 막지는 못했으며, 이로 인해 우리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거나 적어도 원하는 만큼이라도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위기를 통해 우리가 전지전능한 존재라는 꿈에서 깨어나 연약하고 한계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흔히 겸손에 대한 이해는 자신의 한계, 나약함 또는 단점을 인식하는 측면에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하지만 겸손이 자신의 진리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겸손의 두 번째 측면인 인간의 위대함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블레즈 파스칼은 인간은 비참한 존재인 동시에 위대한 존재이며, 인간의 위대함은 자신의 비참함을 인식하는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겸손은 우리의 비참함만이 아니라 위대함도 인정하자는 이 역설에 다가가자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번 팬데믹 시기는 전자뿐만 아니라 후자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헌신한 이들의 노력이 적지 않았고, 봉쇄 기간을 이용해 자기 자신과 자신의 한계, 자신의 강점과 가능성에 대해 성찰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타인과 자신의 선행을 인식하는 능력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겉모습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유행인 이 시대에 팬데믹이 많은 사람의 삶에 불러온 공백은 마스크 뒤에 숨지 않고 겸손을 삶의 미덕으로 삼을 기회가 되었으며, 지금도 그 기회는 계속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즐겁거나 매력적인 것, 가장 싫은 것 등 모든 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겸손을 잘못 이해하면 두 가지 측면 중 하나에만 집중하게 되고, 그 결과 진실을 부정적으로 또는 긍정적으로만 보는 왜곡을 초래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만심이나 교만심이 아니라 소박함을 통해서 긍정적인 힘을 얻으며 살아갑니다. 소박함은 감사하며 은총을 독점하지 않을 때만 얻을 수 있습니다. 스페인의 신학자 버트 다엘레만스Bert Daelemans가 올바로 지적했듯이, "행복은 경배하는 능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경탄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는 신성한 능력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 능력은 종종 왜곡되고, 우회되고, 변질된 나머지 자기 자신을 향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하느님을 향해 회심할 때 인간은 온전하고 완전하며 충만한 행복을 발견합니다. 이 충만한 행복에는 항상 개인적인 사명이 수반됩니다. 소박한 마음으로 헌신하는 이 능력은 자신의 자아를 채우지 않고 겸손하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탈진실이 도래한 것처럼 보이는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위기는 진정한 를 찾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진리를 직시할 기회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희생하면서가 아니라 형제애의 유대를 구축함으로써 진정한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적으로 충만할 수는 없습니다.

 

온화함과 배려로의 초대

 겸손을 정의할 때 진리온유함이라는 두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두 번째 단어의 어감은 이 미덕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진리는 타인을 해치거나 타인의 에 서기 위한 무기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진리를 인정하는 동시에 타인에게 온유하게 행동하여 그들도 자신의 진리를 드러내게 합니다. 겸손한 삶의 진리를 결코 강요하는 법이 없으며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겸손의 진리를 제안합니다.

 

…… 진리를 맛본 사람은 진리에 대해 논쟁조차 하지 않습니다. 진리 때문에 사람들을 질투하는 사람은 아직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그가 실제로 진리를 배운다면 더는 진리를 질투하지 않을 것입니다.”

─ 니네베의 이사악, 《겸손의 선물El don de la humildad, 91.

 

자신의 한계와 미덕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은 결점과 특성을 가진 다른 사람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온유함의 본질입니다. 온유함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의 윤리 또한 발전시키는데, 이는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말하자면 소극적)뿐만 아니라 타인을 발전할 수 있게 하는(적극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위기도 종종 도움이 됩니다. 어떤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더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쉽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우리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참여를 독려한다면 위기는 필요하지 않다고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관심은 오늘날 풍요로운 삶을 사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악 중 하나입니다. 잘 살 때는 세상 문제를 잊고, 고통받을 때만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비윤리적입니다. 이번 팬데믹처럼 우리를 무관심에서 깨어나게 만들어 더 많은 참여를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상황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기회로 삼아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구적인 헌신을 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겸손은 번영이나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방식에 대한 좋은 해독제입니다. 겸손을 삶의 차원으로 삼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임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헌신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되기를 멈춘다거나 자신과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을 뜻하는 상실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서 누군가를 밟고 올라설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다른 사람을 거스르지 않고 힘을 모으려는 계획을 통해 자신의 진정성을 인식하고,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고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이기심과 자만심 때문에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경우는 너무 많습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인류가 겪는 고통은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면서, 홀로 죽어가는 사람들, 의료 자원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 불안정한 일자리를 갖고 있다가 위기 상황에서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 등 여전히 불공정하고 비인간적인 세상을 위해 싸우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주 강조했듯이 헌신과 돌봄에 대한 감수성은 지구 전체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이 글은 스페인 학술지 <Razón y Fe>에서 발췌 및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원문 출처 ■

Medina Balguerías, M. . (2020). La humildad como aprendizaje de la crisis.

<Razón Y Fe> 282(1447), 167-177.

https://revistas.comillas.edu/index.php/razonyfe/article/view/13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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