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알지만, 나는 한때……

영성과 신심

지금은 알지만, 나는 한때……

야훼이레, 첫영성체 여정에서 만난 기다림의 은총

2025. 12. 15
읽음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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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책: 나는 한때, 지우, 반달

 

  • 첫영성체 여정 속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 하느님의 때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책과 함께 머무는 시간] 마음독립서점의 김태임 마르타가 전하는 한 권의 책을 만나 보세요!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것

 

드디어 끝났다! 아이의 4개월간 교리 교육과 첫영성체 예식을 무사히 마치고 나서야 한시름 놓았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른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애썼던 시간들이었다.

 

올해 우리 본당에서는 평일과 주일 주 2회 교리를 진행하여 작년보다 기간은 단축되었지만, 그만큼 밀도 높은 교육이 이루어졌다. 교리가 있는 평일 저녁에는 자부모들이 식사 준비를 하게 되었다. 직접 성당 주방에서 조리하여 제공하기로 한 것인데, 처음에는 굉장히 부담이 컸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이 식사 준비 덕분에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을 줄은.

 

‘2025년 첫영성체반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했던 시간은 아이가 성체를 모실 수 있는 의미를 배우고 예수님을 알아가는 은총의 첫 번째 선물, 부모가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변화하는 두 번째 선물, ‘우리라는 공동체라는 세 번째 선물까지 제공했다. 이 모든 것은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종합 선물 세트였다.

 

식사 준비와 예식을 함께 준비하며 고운 정이 든 자부모들과 조촐한 자축 뒤풀이 자리를 가졌다. 쳇바퀴 도는 일상에 저녁 마실은 기분 좋은 변주였고 설렘이었다. 동네 치킨집 아담한 다락에 모여,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 속에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다. 서로에게 감동했던 마음, 감사했던 마음, 그리고 이 만남을 쭉 이어가고 싶은 마음들이 모여 책 모임 추진으로 이어졌고, 모임은 우리 책방에서 하기로 정해졌다.

 


 

나의 한때를 나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일지 생각했다. 첫영성체를 마치고 난 뒤의 마음을 정리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분명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그냥 마침표를 찍기엔 아쉬운 마음이 있었을 터이다. 그때 발견했던 반짝이는 순간들, 이 과정에서의 힘듦과 아이와 함께 변화된 것에 대해, 서로를 통해 느꼈던 감사와 사랑에 대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그림책 테라피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인원이 많아서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직 본격적인 질문은 시작도 안 했는데 말이다. ‘도입도 전개도 건너뛰고 바로 절정인 나눔이라니.’ 그건 마음이 급해서가 아니었다. 도입과 전개는 우리 안에 항상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시간과 공간만 마련된다면 우리는 바로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늘 되어 있었고, 그동안 그럴만한 기회가 없어서 늘 찰랑찰랑 차올라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나의 한때를 이야기하며 울고 웃었다.

 

결혼과 출산 전의 나를 떠올리니 전생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에 모두 공감했다. 출산 후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거니와, 현실에서 숨돌릴 틈 없이 다가오는 허들을 넘기에 정신없는 엄마들. ‘저는……하고 입을 떼고도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날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던가. 그사이 생각하고 느낀 것이 너무 많지만, 무엇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주저하고 마는 것이었다.

 

삶에 찌들어 살다 보면 나의 한때를 떠올릴 틈이란 없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 묻는다면, 아득하게 느껴지면서 갑자기 밀려오는 상실과 부재한 것들이 떠올라 그만 슬퍼지고 마는 것이다. 20대의 나, 30대의 나는 어땠는지, 결혼 전, 출산 전, 그러다 추억의 사진 한 장을 보면 갑자기 기억 속 한 장면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면서 움직일 때가 있지 않은가. 누구도 예외 없이 겪은 일이었고 그 느낌, 우린 아니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눈물을 흘렸으며, 서로에게 휴지를 건네주었다.

 


 

나는 한때…….”

 

그림책 《나는 한때》는 한 아이의 성장과 함께해온 머리카락이 자신의 한때를 들려준다. 그 안에는 나의 한때가 있고, 현재 진행 중인 내 아이의 한때도 있었으며,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한때도 그려져 있다. 우리의 기억은 사진 한 장처럼 찰나의 순간이 모여 그때의 감정이 덧입혀진 것. 어떤 기억은 그날의 분위기와 냄새, 소리까지도 고스란히 되살아나기도 하지만 기억하는 나는 그때의 나와는 같지 않아서, 내 추억임에도 낯설어지고 만다.

 

문득 나의 한때가 떠올랐다. 작년, 그러니까 첫째의 첫 번째 첫영성체 교리, 그리고 중도 하차 하기까지의 과정. 그때 나는 전전긍긍하던 엄마였다. 조바심으로 가득했다. 아이는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바라는 내 마음만 있을 뿐이었다. 저마다의 생각이 있고 욕구가 분명했다. 첫째 다르고 둘째는 또 다르고.

 


 

첫 번째 도전, 그리고 실패

 

주일 학교에 왜 가야 하냐고 따지던 아이가 첫영성체 교리를 순순히 따라갈 리 없었다. 매주 교리가 있는 날마다 실랑이했다. 어떤 날은 가야 하나 보다.’ 하고 간 적도 있지만 그건 손에 꼽을 정도로 특별한 날이었고, 대부분은 문제 제기와 반항, 거부로 이어졌다. 교리가 반쯤 진행되던 어느 날, 더 이상 참지 못한 건 나였다.

 

엄마가 이렇게 아이를 억지로 성당에 데려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싶어 강수를 두었다. 첫영성체를 하고 싶지 않다는 아이에게 직접 신부님 수녀님께 말씀드리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기대했다. 설마 그분들 앞에서까지 안 한다고는 말 못하겠지, 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첫째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당당하고 주저함이 없었다. 면담 후 수녀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니,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이었다.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 사라졌다. 수녀님 앞이고 뭐고 나는 속상해서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엄마의 저주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를 어찌해야 할까.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꼬리를 물고 나타난 망령. 나의 냉담과 그때 엄마의 잔소리. 그렇다. 나도 엄마 말 안 듣기로는 첫째에게 뭐라 할 처지가 못 되었다. 뒤따라 메아리치는 지난날 엄마의 저주. “딱 너 같은 딸 낳아 봐!” 엄마의 저주는 반만 맞았다. 딱 나 같은 아들이 태어난 것. 하느님도 너무하시지.

 

그때 엄마가 그랬듯, 나라고 별수 있을까. 그저 아이 마음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냥 지켜봐 주는 것말고는. 성체 조배실에서, 성전에서 나는 첫째와 첫영성체를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났다. 너무나 속상했고 그때 참지 못한 마음을 자책했다. 다른 아이들은 무난히 교리를 마치고 첫영성체 예식까지 하는 동안,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성당에서 겉돌았다.

 


 

때는 기다리는 것

 

그렇게 울고 짜고 하던 시간도 지나가고 아이는 4학년이 되었다. 첫영성체 교리 신청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본당 수녀님의 적극적인 권유와 조카의 도움으로 첫영성체 재수를 하게 되었다. 작년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나는 또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여유를 두고 있었다. 기도는 하겠지만 기대는 내려놓은 이상한 태도로.

 

두 번째 교리를 시작하고 저녁 준비하러 성당 주방에 들어선 순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다들 힘들게 왔을 것이 분명한데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자부모들. 함께 음식을 나누는 힘은 실로 대단했다.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먹는 과정까지 함께하면 힘은 배가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빵과 포도주로 우리에게 오셔서 먹고 마시게 하셨을까 싶었다.

 

식사를 준비하며 감동하는 중에도 첫째는 몇 번이고 가기 싫다. 왜 하는 건지 모르겠다.” 했지만, 두 번째라 그런가 그렇지. 올 것이 왔네. , 그럴 수 있지했다. 그러면서도 오기 싫다고 할 땐 언제고 밥은 제일 많이 먹는 첫째. ‘더 주세요.’는 아이의 몫이었다. 그래, 맛있게 잘 먹어 주니 고맙다 아들아.

 

그렇게 때는, 기다리고 시간이 가면서 저절로 찾아왔다. 무슨 수를 써도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할 수 있는 일에 힘쓰고, 어쩔 수 없는 일에는 힘을 빼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두 번의 첫영성체 여정을 통과한 지금의 나는 그렇다. 수녀님이 말씀하시던 때가 바로 지금이었다는 걸 체험했기에.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 그리고 늘 내가 생각하는 것을 넘어선 더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신다는 것도.

 


 

야훼이레

 

그때를 기억하고 있을 내 머리카락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노심초사 마음 졸였던 나, 좌절하고 속상해하던 나, 조금씩 기다림을 배워가는 내 모습을 담고 있지 않을까. 앞으로도 이런 순간을 수없이 만나겠지만 나는 달라졌으니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으니까 두렵지 않다.

 

《나는 한때》의 마지막 장에는 빈 종이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각자의 한때를 표현해 보세요.”

 

미완의 빈 종이를 채워 가며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아이가 언젠가 자신의 한때를 돌아보며 이야기 나눌 때도 올 것이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기다린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셨다며 야훼이레하고 함께 웃게 될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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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독립서점 대표. 생명, 자연, 치유, 나다움, 기쁨을 나누고 싶어요. 읽고 쓰고,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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