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①│‘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느님

성경 이야기

주님의 기도①│‘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느님

예수님께서 열어 주신 가장 가까운 ‘기도’의 길

2026. 0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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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기도는 익숙한 만큼 그 깊은 의미를 놓치기 쉬운 기도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첫마디부터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는 청원까지, 짧은 기도 안에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길이 담겨 있습니다.

 


 

짧은 기도 안에 담긴 복음 전체

 

복음서마다 예수님에 대해 다양하게 그리고 있지만, 마치 랍비가 오경을 설명하듯 마태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섯 번의 대설교, 곧 산상 설교(5-7장 참조), 파견 설교(10장 참조), 비유 설교(13장 참조), 공동체 설교(18장 참조), 종말 설교(24-25장 참조)를 통해 제자들이 따라야 할 하느님의 뜻을 가르쳐 주신다. 그중 산상 설교는 모든 설교 가운데 으뜸으로, 예수님이야말로 율법에 대한 참된 새로운 해석가이심을 보여 준다.

 

그런데 산상 설교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산상 설교뿐만 아니라 마태오 복음서 전체의 가르침을 요약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주님의 기도(마태 6,9-13 참조). 주님의 기도를 곰곰이 살펴보면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하지 않고 매우 짧고 담백하게 필요한 내용만 담고 있는데, 그 내용 하나하나를 뜯어 보면 마태오 복음서 전체의 가르침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일은 인간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로 청해야 함을 알려 주신다. 사실 우리는 말을 많이 해야 기도하는 것인 줄 착각하지만(마태 6,5-8 참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께 청해야 할 것은 오직 주님의 기도뿐이라고 말씀하신다.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의 새로운 길

 

예수님 시대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 에세네파는 율법에 대해 각자 나름의 해석 기준과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할라카라고 부른다. 할라카는 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분파마다 나름의 할라카가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전혀 다른 길을 제시하신다. 마태오 복음서 5-7장의 산상 설교를 살펴보면 그 전체가 율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율법을 없애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음을 강조하시며, 당신의 제자들이 지녀야 할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마태 5,17-20 참조).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마태 5,38)

 

그러면서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는 십계명뿐만 아니라 이러한 동태 복수법에 이르기까지 구약의 가르침을 새롭게 설명해 주신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새 길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참으로 아버지 하느님을 닮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신다. 사람들이 하느님 자녀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그들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산상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다(마태 5,16 참조).

 


 

행복 선언에 담긴 하느님 자녀의 얼굴

 

어찌 보면 산상 설교는 전체가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길을 알려 주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가운데 산상 설교를 시작하는 참행복 선언은 아버지의 자녀들이 지니는 특징 전체를 요약해 준다. 오직 하느님께 영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슬퍼하는 사람들, 예수님을 닮아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마태 5,3-10 참조).

 

그런 사람들은 하늘나라를 차지할 것이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상속받을 것이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모두 이런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청하는 기도다. 그러면 지금부터 주님의 기도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기도의 첫마디가 알려 주는 놀라운 관계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시작한다. 마태오 복음서 1127절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알려 주시는 분인데,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이자 모든 이의 아버지로 소개하신다.

 

마태오 복음서는 다른 복음에 비해 아버지라는 표현을 특히 자주 사용하는데, 예수님의 아버지로 25, 사람들의 아버지, 곧 우리 아버지로 21회 사용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우리 아버지로 표현되는 21회 가운데 16회가 산상 설교에 나오며, 그 가운데서도 10가 마태오 복음서 61-18절에 나온다는 점이다.

 

마태오 복음서의 이 대목은 아버지의 자녀들이 행해야 할 올바른 태도, 곧 올바른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다루는데,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그분 마음에 드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 준다. 그것은 사람들이 모르게 오직 하느님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숨어 계신 듯 보이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 세상에 무관심하신 분이 아니라, 언제나 아버지로서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런 믿음이 없는 이들은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들처럼 사람들의 눈에 들기 위해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하는 위선자의 모습을 지닐 수밖에 없다. 눈앞의 보상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특별한 은총

 

유다인들도 장엄한 전례 기도나 집단적 신앙 고백문 등에서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 또는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곤 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기도 중에, 혹은 대화 중에 수시로 서슴없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서슴없이 아바’(אַבָּא abba)라고 부르신다. 이는 아람어로 아버지라는 뜻이다. 이런 점을 볼 때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초월해 계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인격적으로 우리를 보살피시는 따뜻한 아버지이심을 우리에게 알려 주신 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초대 교회는 이러한 예수님의 호칭을 그대로 이어받아 사용했으며, 바오로 사도와 그가 세운 여러 교회의 신자들도 하느님을 감히 아빠라고 불렀다(로마 8,15; 갈라 4,6 참조).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을 거룩한 아버지로 섬기며, 그분께 의탁하고 기도하며 대화하고 있다.

 


 

우리 아버지라는 말에 담긴 사랑

 

주님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우리아버지라 부른다. 이는 주님의 기도가 개인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위한 기도라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그래서일까? 산상 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부르실 때 항상 너희 아버지라고 표현하신다(마태 5,16; 6,8; 7,11 등 참조). 또한 우리라는 표현 속에는 우리가 모두 같은 아버지를 모시는 형제자매라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마다 나만을 위한 청보다 우리 모두를 위한 청을 바치는 것이 언제나 옳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의 기도는 우리 각자의 바람을 청하는 기도라기보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 곧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기도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내 뜻보다 먼저, 아버지의 뜻을 청하는 기도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알고 계신다. 그러기에 당신께서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실 것이다.

 

물론 지금은 하느님께서 숨어 계시는 듯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해야 한다. 지금도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곳이 얼마나 많은가!

 


 

*이어지는 두 번째 글은 다음 주에 공개됩니다.

 


 

🙏 함께 읽는 주님의 기도

 

<주님의 기도, 다시 읽다>는 익숙한 말씀 속에 담긴 예수님의 깊은 뜻을 묵상하는 연재입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님과 함께 주님의 기도가 마태오 복음서 전체의 가르침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기도의 참된 의미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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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부산교구 사제.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를 취득하고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부총장으로 일하며 성서와 언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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