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로의 〈천국의 문〉, 평화와 풍요를 말하다

가톨릭 예술

보테로의 〈천국의 문〉, 평화와 풍요를 말하다

풍만한 신체와 부드러운 색채에 담긴 구원의 충만함

2026. 0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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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테로는 풍만한 인물과 부드러운 색채를 통해 천국을 풍요롭고 평온한 공간으로 그려 냅니다.
  • <천국의 문>은 전통적 종교 도상에 현대의 인물과 현실의 장소성을 더한 작품입니다.
  • 구원과 평화를 바라보는 보테로의 독특한 시선을 통해 예술이 전하는 위로를 살펴봅시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살 좀 빼라.”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렇게 건강도 생각하고 날씬한 내 모습을 상상하며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1년이 지난 지금, 13kg을 감량해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물론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애주가였던 내가 술도 끊고, 치킨과 같은 튀김류도 피하고, 저녁에는 소식을 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부모님을 뵈었더니 이제는 두 분 모두 “예전이 훨씬 낫다. 기운 없어 보이니 살 좀 찌워라.” 하셨다.

 

슬픈 마음을 안고 글을 쓰려 하니 갑자기 이 작가가 생각났다. 다이어트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듯 모든 그림을 포동포동하게 그린 보테로(Botero)라는 작가다.

 


 

풍만함의 미학, 보테리스모 양식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1932~2023)는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화가로, 인물과 사물의 형태를 극대화한 독특한 조형 언어를 발전시킨 작가다. 그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인물이나 사물을 매우 풍만하고 육중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양식을 ‘보테리스모(Boterismo)’라고 부른다.

 

그러나 보테로가 표현한 풍만한 형태는 단순히 사람을 뚱뚱하게 묘사하거나 희화화한 것이 아니라, 삶의 풍요로움과 존재의 충만함을 표현하기 위한 조형적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종교, 권력, 일상생활 등 다양한 소재를 자신의 독특한 형태와 유머를 통해 재해석했다. 특히 주교나 신부와 같은 종교적 권위자들을 엄숙한 존재로만 그리지 않고 소풍을 가거나 휴식을 취하는 평범한 사람처럼 표현해 권위와 신성함에 인간적인 시선을 더하기도 했다. 이러한 보테로의 특징은 종교적 주제를 다룬 작품에서도 잘 나타난다.

 


 

〈세계 공의회로 가는 길(Excursion to the Ecumenical Council)〉

페르난도 보테로, 1972년, 바티칸미술관 제26실.

 


 

<천국의 문>, 보테로의 시선으로 천국을 다시 바라보다

 

1993년에 제작된 〈천국의 문〉은 보테로의 종교화 가운데서도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피에트라산타에 있는 미세리코르디아 성당 내부에 그려진 대형 프레스코화다. 

 

 

 

〈천국의 문(La Puerta del Cielo)〉과 〈지옥의 문(La Puerta del Infierno)〉

페르난도 보테로, 1993년, 이탈리아 미세리코르디아 성당.

 

보테로는 이 성당의 서로 마주 보는 벽에 〈천국의 문〉과 〈지옥의 문〉을 그렸다. 이 두 작품은 단순한 종교화라기보다 보테로와 피에트라산타라는 공간 사이의 관계를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천국의 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성모자상이다. 화면 중앙 상단에는 보테로 특유의 풍만한 신체와 의상으로 표현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다.

 

전통적인 가톨릭 종교화에서 성모님은 천상의 여왕으로서 위엄 있고 신성한 존재로 표현하지만, 보테로는 성모님을 보다 온화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로 인해 성모님은 초월적인 존재인 동시에 인간적인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인물로 나타난다.

 

성모님의 발밑에 놓인 뱀은 원죄와 사탄을 상징하며, 성모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죄악을 이겨 냈음을 나타내는 전통적인 도상이다. 또한 성모님의 뒤쪽에는 초록색, 흰색, 빨간색의 이탈리아 국기를 그렸다. 이러한 요소는 작품이 놓인 피에트라산타와 이탈리아라는 현실적인 공간을 종교적 세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즉, 작품 속 천국은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 추상적 공간이 아니라, 보테로가 실제로 생활하고 작업했던 이탈리아의 장소성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천국의 문〉에는 성경과 가톨릭의 전통적인 도상뿐 아니라 작품이 제작된 지역의 문화적·역사적 맥락까지 함께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전통적인 종교적 인물만 배치된 것이 아니라 현대의 인물과 현실적인 상징도 함께 등장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마더 테레사 수녀다. 화면의 왼쪽 부분에 위치한 마더 테레사는 20세기 인물로서 사랑과 봉사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보테로는 고대나 중세의 성인들만을 천국의 인물로 제한하지 않고 현대의 인물을 작품 속에 포함시켜 천국과 구원이라는 종교적 개념을 현재의 인간 사회와 연결하였다. 이는 전통적인 가톨릭 도상을 그대로 반복하기보다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려는 보테로의 태도를 잘 보여 준다.

 


 

양감과 색채로 구현한 풍요와 충만함

 

화면의 하단에는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는 천사와 천국으로 올라가는 영혼들이 등장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는 전통적인 종교화에서 천상의 조화와 평화를 상징하는 요소이며, 보테로 역시 음악을 통해 구원받은 영혼들이 경험하는 평온함과 기쁨을 표현했다.

 

아래쪽의 영혼들은 모두 보테로 특유의 풍만한 신체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표정과 자세는 무겁거나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고 매우 평온하다. 심지어 보테로는 자신의 출생지인 콜롬비아를 비롯한 남미의 원주민을 학살하고 박해했던 유럽의 식민 세력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인물마저도 유머러스한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점은 보테로가 천국은 물론 세상을 엄숙하고 두려운 공간이라기보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안식의 공간으로 재해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천국의 문〉에서 가장 중요한 조형적 특징은 ‘양감’이다. 그러나 몸집이 크고 둥글며 풍만하게 표현되는 이러한 인물들의 형태를 비만을 시각화한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보테로에게 양감은 삶의 기쁨과 풍요로움, 존재의 충만함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조형 언어이다.

 

〈천국의 문〉에서는 이러한 양감이 종교적 의미와 결합한다. 천국으로 향하는 인물들의 풍만한 신체는 구원과 행복, 풍요로운 삶을 상징하며, 육체의 풍성함을 통해 천국이라는 공간이 지닌 충만함을 표현한다. 특히 무거워 보이는 몸을 가진 인물들이 가볍고 평온하게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은 오히려 독특한 시각적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또한 나무와 땅에 수북하게 떨어져 있는 과일에서 아담과 하와를 연상할 수도 있지만, 과실의 풍요로움을 통해 주님의 은총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색채 역시 〈천국의 문〉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맑은 하늘색과 파스텔 계열 분홍색, 연두색, 흰색 등은 작품의 부드럽고 밝은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는 맞은편에 위치한 〈지옥의 문〉의 강렬한 붉은색과 주황색을 비롯한 어두운 색조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천국의 문〉의 부드러운 색채는 구원과 평온, 따뜻함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며, 화면에 등장하는 풍만한 인물들의 형태를 더욱 온화하게 만들어 준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천국의 이미지

 

프레스코라는 제작 방식 또한 작품의 분위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보테로는 이 작품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전통적인 프레스코 기법을 활용했다. 프레스코는 젖은 회벽 위에 안료를 입혀 벽 자체에 색이 스며들게 하는 방식으로, 회화와 건축이 결합된다는 특징을 가진다. 보테로는 이러한 전통적인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자신의 현대적인 조형 언어를 결합했다. 그 결과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화와 연결되는 형식을 갖추면서도 인물의 풍만한 양감과 독특한 색채를 통해 현대적인 종교화로 재탄생시켰다.

 

인물들의 표정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테로의 작품에서 인물들은 극단적인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천국의 문〉의 성모, 천사, 마더 테레사, 구원받은 영혼들 역시 매우 차분하고 담담한 표정을 보여 준다. 이렇게 정적인 표정은 천국이라는 공간의 영원성과 평온함을 강조한다. 종교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극적인 환희나 고통의 표현은 최소화하고, 고요하고 변하지 않는 표정을 사용함으로써 천상의 평정심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페르난도 보테로의 〈천국의 문〉을 성모와 천사, 구원받은 영혼을 그린 종교화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정리하면, 가톨릭의 전통적인 종교 도상, 보테로 특유의 풍만한 양감, 현대적인 인물과 지역적 상징, 르네상스 프레스코 기법이 함께 결합된 이 작품은 성모와 아기 예수, 뱀, 천사와 같은 전통적인 종교적 요소와 함께 마더 테레사와 이탈리아 국기라는 현대적 요소가 더해져 과거와 현재, 신성함과 일상성을 하나의 화면 안에서 연결하고 있다.

 


 

예술,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다

 

〈천국의 문〉의 가장 큰 특징은 전통적인 종교 미술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보테로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천상을 새롭게 해석하여 풍요롭고 따뜻하며 평온한 공간으로 표현했다. 또한 피에트라산타라는 자신의 삶과 작업의 공간을 작품 속에 포함시켜 종교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연결했다. 이러한 점에서 〈천국의 문〉은 서양의 전통적인 종교 미술과 현대 라틴아메리카 미술의 조형 언어가 결합된 작품이며, 보테로가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은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즐거운 오아시스여야 한다.”라는 보테로의 예술관은 권력자들의 횡포와 세상의 아픔을 방관하지 않는다. 예술은 사막과 같은 세상에서 인간이 다시 한번 힘을 낼 수 있도록 쉼터와 생명수가 되어 줄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는 고통과 아픔, 목마름과 같은 빈곤함은 지역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권력자들의 횡포에서 비롯된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는 그저 풍요 속의 세상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고통과 아픔, 권력자들의 만행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주님, 세상을 평화와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하소서. 그 기쁨을 통해 저희는 당신 안에 풍요로워지리이다.”

 


 

<신지철 바오로 신부의 미술을 바라보는 시선> 시리즈를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오랜 시간 정성껏 연재를 이어 오신 신지철 바오로 신부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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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교회문화유산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이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회 문화유산의 보전과 교회 예술의 진흥을 위해 힘쓰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교회 예술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주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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